[더팩트ㅣ신진환 기자]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이 연일 '친정'을 향해 쓴소리하고 있다. 특히 극우 성향 전광훈 목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김기현 지도부를 겨냥한 작심 발언을 쏟아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당 중진들도 지도부를 직격하면서 홍 시장의 의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홍 시장은 최근 지도부와 설전을 벌이고 있다. 1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집행부를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한 한 사람으로서 논란의 당사자가 되었으면 스스로 자숙해야 하거늘 화살을 어디에다가 겨누고 있는지 참 어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제가 귀하처럼 근거 없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인가"라고 되물었다.
제주 4·3사건을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하며 망언 논란에 휩싸였던 태영호 최고위원을 겨냥한 발언이다. 태 최고위원은 이날 지도부-중진 연석회의에서 "우리 당 안에서 원외에 계시는 중진 분들이 김기현 대표를 아무런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잇단 실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재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와 전 목사와 '절연'을 요구하며 김 대표를 압박한 홍 시장을 에둘러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 대표와 홍 시장의 신경전은 지속되고 있다. 홍 시장은 전날 김 대표를 겨냥해 "(전 목사에게) 도대체 무슨 약점을 잡혔느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국민의힘이 전광훈 목사와 선을 그어야 할 만큼의 그 어떠한 관계도 아님을 제가 수차례 말씀드린 바 있다"며 "전 목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당과 결부시켜 당과 당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체의 언행에 대해 당 대표로서 엄중히 경고한다"고 받아쳤다.
지난 3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김 대표는 홍 시장이 전 목사와 관계 단절을 주장하는 데 대해 "우리 당 공천권을 가지고 제3자(전 목사)가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지만, 지방자치 행정을 맡은 사람도 그 일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홍 시장은 "어이없는 당 대표의 발언"이라며 "(전 목사가) 선지자라고 스스로 추켜세웠으니 그 밑에서 잘해보라"고 발끈했다. 그러면서 "유일한 현역 당 상임 고문이다. 중앙정치에 관여할 권한과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 시장은 '내년 총선 승리'를 강조하며 당 지도부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두 차례 당을 이끌었던 그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셈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와 마찰하는 모습으로도 비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정상회담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에 대해서도 옹호하는 등 현 정부를 지원 사격하는 모습과 대조된다.
홍 시장의 연속된 비판 행보는 차기 대권을 노리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방편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앙정치 현안과 국민적 관심사인 정치 이슈에 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면서 역량과 자질을 어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소셜 바이럴 마케팅'으로도 보인다. 홍 시장은 지난 9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 차기 대선 출마 여부에 관해 "3년 뒤에 답하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당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는 홍 시장의 행보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한 초선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홍 시장은) 풍부한 정치 경험을 갖춘 분 아닌가. 당을 위한 충정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한 원외 인사는 문자 메시지로 "당 고문으로서 중앙정치 현안에 의견 개진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며 홍 시장을 감쌌다. 반대로 또 다른 초선 의원은 "홍 시장의 메시지가 분명한데, 반복하면 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당 중진들도 지도부를 비판했다. 연석회의에서 국회 부의장인 5선 정우택 의원은 설화 논란에 휩싸였던 김재원·태영호·조수진 최고위원을 겨냥해 "우리 당에 중심적인 분들이 우리 집권 여당의 품격에 맞는 언행을 해야 한다"면서 엄격한 조치를 촉구했다. 조 최고위원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비우기' 캠페인을 제안해 논란이 일었다.
김기현 체제 직전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었던 5선 정진석 의원도 "해야 할 일은 적재적소에, 적시 적소에 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신상필벌을 하는 건 이건 지도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만일 읍참마속 해야 할 일이 발생했다면 주저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홍 시장이 김 대표의 단호한 결단과 김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의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