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3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제주 4.3 추념식에 불참하자 이준석 전 대표가 "이런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꼬집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전당대회에 출마한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과 함께 추념식에 참석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제주에서 열린 4.3 추념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김종인-이준석 지도부 때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도 그렇고, 여순사건도 그렇고, 4.3사건도 그렇고 이런 역사의 아픔 속에 함께 하겠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참석 여부를)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김기현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에 여러 가지 복잡한 고민을 하는 것 같다"면서 "그런데 이런 지역의 아픔을 다루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당이 그리고 책임 있는 여당으로서 언제나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에 앞장서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지도부가) 이런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기본"이라면서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도 여기 같이 와 있지만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주 4.3사건에 대한 불미스러운 발언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당의 모든 사람의 생각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이렇게 오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전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태영호 최고위원의 4.3사건 왜곡 발언 논란에 대해서도 "저는 정치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며 "그분들이 일시적으로 본인이 선거하는 지역구에서 이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라고 했다.
그는 "이 때문에 제주도에서 열심히 정치를 하는 우리 국민의힘의 다른 당원들이나 아니면 지지자들도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이것을 꼭 윤리위나 징계로 규정하기 이전에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야 하고, 만일 이것이 교정되지 않는다면 국민들께서 선거로서 따끔하게 교정을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 대표가 불참한 점에 대해서도 "김종인-이준석 체제에서 과거 역사와의 진실한 대화를 시도했던 것이, 이번에 새로운 지도부에서 계속되기를 바랐으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저라면 당연히 (참석)했을 텐데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를 붙이는 것이 참 궁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4.3 추념식이라고 하는 것은 올해가 75주년 아닌가? 5주년, 10주년이라고 할 때는 각별하게 챙기는 것이 당연한데 이번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서 "특히나 전당대회 과정에서 4.3사건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발언으로 제주도민들에게 상처를 줬던 태영호 최고위원의 경우 반성하고 새로운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앞으로 더 이상 이러한 이념논쟁으로 도민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득을 보려고 하는 정치인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 위원장도 "저는 4.3과 여순의 아픔을 같이 간직한 순천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역사문제를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접근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특히나 우리가 지금 제주도민들과 전남도민들의 경우 보수정당의 신뢰가 기본적으로 낮은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는 "그 과정에서 김종인-이준석 체제를 거치며 나름대로 진정성 있는 사죄와 지역의 고민을 해왔다고 여겨진다. 지금 새롭게 시작하는 김기현 지도부에서도 이준석 개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준석 전 대표 때 우리가 해왔던 전남과 제주를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거기에 대해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하는 것이 당의 공식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명확히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천 위원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도 "대통령께서 이번에 순천을 시작으로 해서 남해안권, 대구까지 가셨기 때문에 오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대통령께서 못 오신다고 하면 최소한 당 대표께서 오셔서 이런 어떤 제주도민들께서 뭔가 제주 4·3에 대해서 우리 정부 여당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갖지 않도록 해야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 보면 우리 지지층만을 보면서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그런 지점들이, 단순히 서문시장 가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지도부의 행보나 인적 구성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많이 나온다"며 "그런데 이런 부분은 방향성을 바꿔서 확장적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압도적인 우세 지역을 빼고는 다음 총선은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이날(3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4.3 추념식 불참에 대해 "민생 현안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 대표를 비롯해 주호영 원내대표 등은 당내 일정을 이유로 추념식에 불참했다. 대신 김병민 최고위원·박대출 정책위의장·이철규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그러나 태영호 최고위원의 발언 이후 4.3사건을 왜곡·폄훼하는 극우단체의 주장이 커지는 가운데 대통령과 김 대표가 4.3 추념식에 참석해 이를 잠재웠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 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은 4.3 추념식이 열리는 4.3 평화공원에 대규모 집회신고를 열었다. 이들은 유족들의 항의로 집회를 열지 못하고 돌아갔으나 극우단체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최근 제주 전역에는 "4.3은 김일성의 공산폭동"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도내 곳곳 수십 개가 걸려 공분을 샀다. 현수막을 내건 주체는 우리공화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등 4개 정당과 자유논객연합 등 극우 진영의 단체들이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윤 대통령과 김 대표의 불참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 지사는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최근에는 현수막 등 4.3을 폄훼하는 극우단체나 보수정당의 메시지가 계속 나오고 있어 매우 걱정스럽다"며 "윤 대통령께서 오늘 참석하셨으면 이런 문제들이 해소가 됐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당대표나 원내대표 또한 참석하지 않고 있는 점은 이러한 부분에 오히려 그쪽에 보수주의적인 자들의 4·3에 대한 접근이 옳다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라고 했다.
오 지사는 이런 주장을 촉발한 배경으로 '태 최고위원'을 지목하며 "태 최고위원이 전당대회 과정에서 촉발했던 것"이라며 "과거사 문제 해결 전반에 대한 보수진영의 새로운 공격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앞서 태 최고위원은 지난 2월 13일 제주에서 열린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4.3사건은 명백히 김일성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주장해 비판받았다. 4.3사건 관련 단체들은 태 최고위원의 사과와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으나 태 최고위원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당에서는 선관위 차원의 경고만 있었을 뿐 당 차원의 징계 여부는 논의되지 않았다.
한편 윤 대통령은 지난해 제74회 4.3 추념식에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참석했다. 보수 정당 출신으로는 처음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생존 희생자와 힘든 시간을 이겨내 온 유가족들의 삶과 아픔도 국가가 책임 있게 어루만질 것"이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