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먹구름이 꼈다. 일본 기업 참여 없는 강제동원 해법에 이어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의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취지의 발언, 일본의 호응 없는 한일정상회담 결과 등으로 국내 반발 여론이 거센 상황에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가 더해지면서다.
특히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과거사 갈등 현안을 두고 '통큰 양보'로 손을 내민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나온 발표다. 정부의 대일외교 비판 여론이 더 거세질 전망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8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서술에서 '강제성'을 덜어내고,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란 내용이 추가된 초등교과서 검정을 승인했다. 역사 왜곡의 대상과 정도가 확대·강화된 조치다. 문부과학성은 매년 3월쯤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고 초·중·고 교과서에 대한 검정 결과를 정례적으로 발표한다. 이날 검정 내용은 2017년 개정된 학습지도요령의 지침과 강제동원에서 '강제'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2021년 4월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한 정부 견해가 반영됐다. 사실상 '예고된 악재'에 가깝다.
정부는 이날 일본의 발표 즉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본국으로 일시 귀국한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 대신 구마가이 나오키 총괄공사를 대리대사 자격으로 초치해 항의했다.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 "역사·지리·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이 담긴 교과서를 일본 정부가 또다시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떠한 주장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초치는 통상 어떤 사안에 대해 항의하거나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 메시지를 지닌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정부도 국내 여론의 강한 반발을 예상하고 무마하기 위해 높은 강도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하면서도 일본의 진정성 있는 호응을 기대한 국내 여론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의견을 내놨다. 양 교수는 "강제성을 덜어내는 서술을 나중으로 미루는 정도는 일본 정부가 개입해 관철할 수 있었던 사안"이라며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에서 일본의 부담을 덜어내는 방식을 먼저 제시한 우리로서는 불쾌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강제동원 해법을 내놓은 직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기시다 총리 발언에 의미를 둬 왔던 정부 입장도 무색해졌다. 이날 발표 내용은 과거를 직시하고 반성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취지보다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없는, 아베 내각의 인식과 가깝기 때문이다. 과연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대일외교를 향한 비판 여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일대사를 역임했던 강창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통화에서 "국민들을 설득하겠다면서 매년 2, 3월마다 이런 내용들이 나오는 것조차 계산하지 못했다면 더욱 졸속외교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도 "한일정상회담에서도 나타난 '과거는 묻고 미래로 가자'는 미래지향과 이날 발표한 교과서 내용은 다르지 않다. 우리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면 일본에게 '또 말이 달라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며 "한일관계 개선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선 항의하되 역사 왜곡이 더 확대·강화되지 않도록 계속 관리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