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윤석열 대통령이 중국 사례에서 진짜 배워야 할 것


국무회의 모두 발언서 저우언라이 총리 결단 언급
중일공동협정은 개인 손해배상 청구권 부정 안 해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국의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결단을 예로 들며 이번 한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설득에 나섰다. / 대통령실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 이후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자 직접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지난 21일 이례적으로 23분에 걸쳐 진행된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서다. 윤 대통령은 "양국 간 불행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본과 새로운 지향점을 도출하고자 한 노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의 결단을 사례로 들며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 말대로 "양국 간 불행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본과 새로운 지향점을 도출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제 반식민지로 천문학적 인적·물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던 중국의 사례까지 든 것은 한국은 더이상 약소국 피해자가 아닌 일본에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대범하고 성숙한 국가가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의도일 테다. 저우 총리처럼 통 크게 양보하는 모양새로 챙길 것은 챙기겠다는 취지도 엿보인다. 중국은 일본에 대한 청구권 포기를 선언하는 대신 더 많은 공적개발원조(ODA)를 일본으로부터 받았다. 일본과 대만의 단교를 이끌어내 장제스(蔣介石) 정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실익도 얻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간과한 점이 있다. 중국이 자국민의 '불행한 과거의 아픔'을 다룬 태도는 우리 정부와 사뭇 달랐다는 것이다. 1972년 9월 29일 중국과 일본 정부는 태평양 전쟁 이래 단절돼 있던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중일공동성명을 체결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과 비슷한 성격의 것이다. 중일공동성명 제5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일 양국 국민의 우호를 도모하기 위해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청구권을 포기할 것을 선포한다'고 돼 있다.

일본은 이를 개인의 손해배상 등을 포함, 전쟁 중에 발생한 모든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반면 중국은 '정부'의 대일본 청구권은 포기됐지만 '개별 민간인'의 청구권이 포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분명히 밝혀 왔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민간인 청구권은 다 해결됐다는 자세를 취한 우리 정부와 상반된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 입장하는 모습. /뉴시스

윤 대통령 말대로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하니까 중국 정부의 입장을 소환해본다. 1995년 3월 7일 첸치천(钱其琛) 당시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은 "중일공동성명이 결코 중국 국민 개인이 일본 정부에 손배해상을 요구하는 권리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후에도 전쟁 배상의 주체는 국가(정부)와 국민으로 구분된다는 게 국제법의 기본 원칙이고 관례라는 주장은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2007년 4월 26일 류젠차오(刘建超)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기자회견에서 "중국 노동자에 대한 강제연행은 일본 군국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저지른 중대한 범죄행위로, 일본 정부는 성실한 태도로 책임을 다하고 강제연행 문제에 진지하게 대처함으로써 적절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대변인 발언은 중국인 강제동원(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 니시마츠 건설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제기한 민사 소송 판결을 앞두고 나왔다. 중국 정부가 개인의 청구권 행사를 넘어 피해자 편에 서 직설적으로 일본 사법부를 압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결국 소송은 졌지만 중국인 피해자들은 니시마츠 건설의 공개 사과와 배상금을 받는 등 극적인 화해를 이뤘다. 니시마츠 건설 건 외에도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한 사례는 다수인데, 여기에는 중국 정부와 언론의 적극적 움직임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한일관계가 상호호혜적, 발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건 누구나 동의하는 바다. 그리고 그런 밝은 미래는 불행한 과거를 성찰하고 청산해야 만들어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중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낸 저우 총리가 국민 개인의 대일본 배상 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새겨야한다. 정부가 공식화한 강제동원 해법은 피해자들의 청구권과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 채 반성 없는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도 겸허히 수용하길 바란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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