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여의도=조채원 기자] "조금 더 버티지, 대체 왜 서둘렀나 왜?"
강창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7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가진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사법주권조차 부정한 백기투항"이라며 "결국 우리가 얻어낸 게 하나도 없다. 무엇이 그렇게 급해 이런 망동을 하느냐"고 성토했다. '일본 전범기업의 기금 참여와 사죄, 일본 정부의 사죄가 마지노선'이라고 역설해왔던 강 교수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주일대사를 역임한 일본사 전공자로, 정치권의 대표적인 지일파(知日派)다.
정부는 지난 6일 2018년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전범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최종 확정했다. 재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본이 지급한 돈으로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의 기부로 마련할 계획이다. 결국 일본 정부와 기업의 강제동원에 대한 직접적 사과도, 전범 기업의 배상 참여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반쪽짜리'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먼저 일본에 손을 내민 건 한일관계의 정상화와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다. 국익과 미래를 향한 대승적 결단이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수출 규제 문제는 이미 껍데기만 남았다. 역사문제를 제외하고 민간 교류 다 잘 돌아가는데 대체 어떤 국익이 있단 거냐"며 "정상회담 한번 해보려고 국민과 민족을 팔아먹어도 되느냐"고 비판했다. 정부에 "대사 시절 일본 정치인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내 주장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씨를 잘 뿌려 놓았으니 열매를 잘 맺으시라고 충언했다"는 그의 표정엔 실망감과 분노가 착찹하게 얽혀 있었다.
다음은 강 교수와의 일문일답.
-정부는 한일관계 정상화, 국익을 우선해 내린 결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무슨 국익이 있나. 한일정상 간 못 만나고 셔틀 외교 없는 거 빼고 한일관계 잘 돌아가고 있다. 수출 규제 조치는 이미 껍데기만 남아 았다. 정부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고 기술 개발과 수입국 다변화에도 성공했다. 일본은 WTO 제소를 취소하면 수출 규제를 풀겠다고 하는데 이건 우리가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대사 시절부터 역사문제는 계속 논의하고, 지소미아와 수출규제 문제는 동시에 풀어버리자는 데 일본 정치인들과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스가 전 총리와 기시다 총리도 실용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들도 처음엔 중의원·참의원 아베파 눈치를 보느라 과감하게 방향을 틀지 못했지만, 수출 규제를 풀려는 의지는 분명히 있었다. 결국 시간 싸움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 풀릴 거라는 분위기였다.
-한미일 삼각공조 강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고령이라는 점 등도 조속한 해법 마련 필요성으로 언급됐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어떻게 했어야 했나.
한일관계 정상화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성과 내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 안됐다는 얘기다. 4월 한미정상회담, 5월 한미일 정상회담 일정을 미리 만들어놓고 쫒기듯이 했다는 인상을 준다. 한일관계 정상화는 우리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일본도 필요하다. 왜 일본 요구만 고스란히 다 들어주나.
한국은 이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나라가 됐다. G7회의도 일본이 우리를 필요로 하면 초청받는거지 과거사 해결 안 되면 못 가고 그런 거 아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오랜 '역사 전쟁'이 있었지만 경제교류, 민간교류 할거 다 했다. 경제는 경제대로 안보는 안보대로 역사는 역사대로 '멀티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 간 외교에 그랜드바겐(일괄타결)은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뭔가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대위변제안을 반대하진 않는다. 예전부터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먼저 배상금을 지급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에 행사해 돈을 받아내는 방안을 주장해왔다. 정부가 돈을 받아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공감을 얻을 만한 방식이었다고 본다.
일본기업들, 특히 전범기업이 자발적인 성금을 내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었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 참여 의지가 있었다. 2012년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은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를 의사를 밝힌 적 있지 않았나. 결국 아베 전 총리가 하지 못하게 했지만. 한국 정부가 전범기업의 국내자산을 현금화하지 않는 대신 일본 기업도 기업이 배상에 참여하겠다는 걸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일이 서로서로 명분을 주면서 해결해 나가자는데는 양국 실무선에서도 상당히 공감대를 이뤘다.
-강제동원 배상안 발표 이후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역대 내각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일본 정부 반응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일본 기업이 돈을 내놓고 피해자에 사죄한다는 대전제에서 '과거 내각 계승'은 일본 정부의 사과로 용납할 수 있다. 그런데 둘 다 이뤄내지 못했다. 과거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하는 건 국가 계속성의 원칙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다. 같은 자민당인데 계승해야지 그럼 부정하나.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 없는 태도'를 갖는 근본적 이유를 무엇으로 보나.
1945년 일제가 패망했음에도 이후 사법부, 행정부에 대한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 탓이다. 재벌 해체, 군대 해산이라는 체제 변화가 있었지만 일본 제국주의 시대 관리들은 그대로 남았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일으킨 데 반성 없는 역사교육이 그대로 이뤄졌다. 일본의 역사인식은 보편성을 잃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일본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한다. 1910년 양국이 합의 하에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다면서다. 그런데 이후 3·1운동이라는 대대적이고 민족적 저항이 있었지 않나. 또 일본인들은 '일본의 식민지배는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철도도 만들어주고 항만도 지어주지 않았냐는 거다. 식민지배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뽑아내는 정치 구조다. 물적·인적 수탈이 목적이기에 식민지에서의 발전은 비정상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일제 때 철도는 일본이 만주로 진출하기 위한 군사용이었던 경부선, 수탈한 물자를 본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수송용인 호남선 위주로 개발됐다.
-앞으로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하나.
한일 과거사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일본의 불법 강점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감이라는 국민적 정서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걸 '반일몰이'로만 치부할 게 아닌데 정부가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상안이 이 정도에 그치면 국민들이 입은 자존심의 상처가 앞으로 어떻게 터져나올지 모른다. 아베 전 총리가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보복조치로 수출규제를 발표하니 한국에서 대대적인 일본 불매운동이 일지 않았나. 과거사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면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했고, 일본 측과 계속 논의하겠다고 한 만큼 일말의 기대는 있다. 정부는 반드시 일본 기업의, 특히 전범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우리가 대폭 양보한 안을 내놨으니 일본 정부도 기업 참여에 왈가왈부 하지 않겠다, 훼방 놓지 않겠다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앞으로도 재단 기금 참여에 전범 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데, 조금만 더 버텼으면 우리가 얻어낼 수도 있었다.
☞강창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누구? 제주 출신으로 17·18·19·20대 4선 국회의원과 주일본대사를 역임했다. 근·현대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교수 출신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배재대학 교수 시절에도 일본학과를 만들어, 한·일 학생들의 교류에 힘쓰며 경력적으로 연구했다. 그 경력을 바탕으로 국회의원이 된 후한·일의원연맹 간사장과 회장을 역임하였고, 한·일 관계가 어려울 때 주일대사로 재직하며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