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정부가 6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으로 공식화한 '제3자 변제' 방안에 여론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해법이 일본 전범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의 직접 참여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직접적 사죄도 이끌어내지 못한 '반쪽짜리'라는 점에서다.
정부는 이날 2018년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전범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최종 확정했다. 재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본이 지급한 돈으로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의 기부로 마련할 계획이다.
정치·외교 전문가들도 대체로 아쉽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날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외교는 보통 51대 49 정도로 이기거나 지거나 해야 하는데, 한국이 일방적인 양보를 했다"며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양국이 4~5년 협상해 온 내용조차 전혀 반영되지 못한 결과"라 혹평했다. "일본 전범기업이 재단 기금 조성에 참여한다 해도 엄밀히 말하면 '기부금'이지 '배상금'은 아닌데, 우리 정부는 그마저도 관철해내지 못했다"면서다.
양 교수는 "정부가 민간에 '자발적인 참여'를 촉구했지만 전범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한국 정부 배상안 발표 이후 일본이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과거 역사인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서도 "일본은 전향적 태도 변화를 하나도 보여주지 않은 채 지금까지 해온 것을 계승한다고만 한 것"이라고 했다.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얘기다.
강창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통화에서 "대한민국의 사법주권을 스스로 부정한 처사"라며 "한국의 완전한 백기 투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범 기업의 직접 참여, 강제동원 피해 사죄에 공감하는 일본 외교부 관리들도 적지 않다. 협상 공간이 있는 만큼 조금 더 밀고당기기를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주일대사를 역임했다.
그는 "정부가 한일정상회담이나 오는 5월 G7 회의 참석 등 성과를 내려는 데 급급해 국격과 국민의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고 성급히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 역시 전범기업 등이 재단 기금조성에 참여할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았다. 한국의 전경련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롄)가 청년들을 위한 기금을 공동 조성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데 대해서도 "그건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결과 전혀 상관 없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 해법이 불완전하지만 현실적으론 차선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엄중한 동북아 정세를 고려하면 한미일 간 협력은 불가피한 데다 언제까지 한일관계를 긴장 상태에 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정부 배상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우리 국민들이 요구하는 일본 기업의 전면적인 배상과 사죄는 '불가능한 현실', 제3자 변제안과 일본 정부의 조금 진전된 사죄 언급은 '가능한 차선'이었다고 본다"며 "일본에 자발적 참여라는 공을 넘기면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너무 서둘러 해결하려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사실 이 사안은 길게 보면 10년이 넘었고, 짧게 보면 4년 전에 불거져 나와 아직도 미해결인 상태"라며 "피해자들이 이미 90대 고령인 점 등을 감안하면 과연 언제 해결해야 조급하지 않은 것인지 되물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강제동원 피해 배상엔 일본의 긍정적인 회답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오늘 발표가 안보나 경제·문화교류 등에서 경색됐던 한일관계를 협력태세로 전환하는 데에는 큰 기여를 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에 계속 재단 기금 참여를 압박하고, 정부와 국회 등 정치권이 보훈 정책이나 특별 입법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보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반발 여론을 설득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