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이슈] '수박 풍선'이 여의도에서 짓밟히던 날(영상)


이재명 대표 표결 이탈표에 분노한 지지자
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수박 풍선 퍼포먼스
'비명계 솎아내기' 빛과 어둠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이 수박 풍선 터뜨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박숙현 기자

[더팩트|여의도=박숙현·이상빈 기자]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이 북적였습니다. 민주당의 이재명 지지자와 유튜버 등 수십 명이 한데 모여 특정 퍼포먼스를 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구호에 맞춰 수박 모양 풍선을 짓밟은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준비한 풍선이 왜 수박 모양이어야 했고, 무엇 때문에 그런 퍼포먼스를 했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른 과일입니다. 초록 바탕에 검은 줄기를 한 단단한 껍질 안엔 아삭한 맛이 나는 빨간 속살이 들어차 있습니다. 이런 형태를 띤 과일이 한둘이 아닐 테지만 유독 수박만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 '두 얼굴의 국회의원'을 비유할 때 콕 집어 쓰입니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부결되는 가운데, 이 대표가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지난달 27일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찬성 139·반대 138·무효 11·기권 9를 기록, 투표에 참여한 여야 의원 297표 중 찬성이 과반(149표)을 넘지 못해 최종 부결되면서 수박 솎아내기 논쟁이 더 뜨거워졌습니다.

무기명 투표라 신원을 확인할 수 없지만 민주당 의원 169명 중 약 30명이 이탈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지자들의 분노가 민주당 소속으로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향했습니다. 이 대표와 거리가 먼, 이른바 '비명계'가 그들의 표적이 됐습니다.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대장동 의혹을 제기한 이낙연 전 대표와 이 대표 사이 마찰이 생겼고, 현재 개딸(개혁의 딸), 양아들(양심의 아들)로 불리는 이 대표의 열성 지지자들이 당시 이 전 대표를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란 뜻에서 수박으로 지칭한 게 이 프레임의 시작입니다. 당의 어른이 오히려 당에 피해만 주는 행동을 했다며 이 전 대표를 수박으로 몰아갔습니다. 대선 이후엔 비명계가 강제로 그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짓밟혀 터져 널브러진 수박 풍선. /박숙현 기자

이날 행사 진행자의 "(제가) '수박들' 하면 (여러분이) '꺼져' 하면서 수박을 터트리는 거로 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얼마 뒤 구호에 맞춰 여기저기서 '펑' 소리가 나며 풍선이 터졌습니다. 따라서 수박 풍선을 짓밟아 터트린 이 대표 지지자 단체 퍼포먼스는 비명계의 완전한 퇴장을 의미합니다.

무력 충돌 없이 소품을 활용한 퍼포먼스로 분노 표출을 대체한 점은 민주 시민다웠습니다. 하지만 다수와 의견이 다른 소수를 찍어내고 그들의 퇴출을 외치는 게 과연 민주적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민주당 안에서 비주류라는 이유로 멸시 및 외면당하는 환경은 오히려 생각의 확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이 대표 지지자가 수박 풍선을 짓밟아 터트리는 모습이 썩 유쾌해 보이지 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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