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여의도=박숙현·이상빈 기자]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이 북적였습니다. 민주당의 이재명 지지자와 유튜버 등 수십 명이 한데 모여 특정 퍼포먼스를 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구호에 맞춰 수박 모양 풍선을 짓밟은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준비한 풍선이 왜 수박 모양이어야 했고, 무엇 때문에 그런 퍼포먼스를 했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른 과일입니다. 초록 바탕에 검은 줄기를 한 단단한 껍질 안엔 아삭한 맛이 나는 빨간 속살이 들어차 있습니다. 이런 형태를 띤 과일이 한둘이 아닐 테지만 유독 수박만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 '두 얼굴의 국회의원'을 비유할 때 콕 집어 쓰입니다.
지난달 27일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찬성 139·반대 138·무효 11·기권 9를 기록, 투표에 참여한 여야 의원 297표 중 찬성이 과반(149표)을 넘지 못해 최종 부결되면서 수박 솎아내기 논쟁이 더 뜨거워졌습니다.
무기명 투표라 신원을 확인할 수 없지만 민주당 의원 169명 중 약 30명이 이탈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지자들의 분노가 민주당 소속으로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향했습니다. 이 대표와 거리가 먼, 이른바 '비명계'가 그들의 표적이 됐습니다.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대장동 의혹을 제기한 이낙연 전 대표와 이 대표 사이 마찰이 생겼고, 현재 개딸(개혁의 딸), 양아들(양심의 아들)로 불리는 이 대표의 열성 지지자들이 당시 이 전 대표를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란 뜻에서 수박으로 지칭한 게 이 프레임의 시작입니다. 당의 어른이 오히려 당에 피해만 주는 행동을 했다며 이 전 대표를 수박으로 몰아갔습니다. 대선 이후엔 비명계가 강제로 그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이날 행사 진행자의 "(제가) '수박들' 하면 (여러분이) '꺼져' 하면서 수박을 터트리는 거로 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얼마 뒤 구호에 맞춰 여기저기서 '펑' 소리가 나며 풍선이 터졌습니다. 따라서 수박 풍선을 짓밟아 터트린 이 대표 지지자 단체 퍼포먼스는 비명계의 완전한 퇴장을 의미합니다.
무력 충돌 없이 소품을 활용한 퍼포먼스로 분노 표출을 대체한 점은 민주 시민다웠습니다. 하지만 다수와 의견이 다른 소수를 찍어내고 그들의 퇴출을 외치는 게 과연 민주적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민주당 안에서 비주류라는 이유로 멸시 및 외면당하는 환경은 오히려 생각의 확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이 대표 지지자가 수박 풍선을 짓밟아 터트리는 모습이 썩 유쾌해 보이지 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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