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채원 기자] 한일 과거사 갈등의 가장 뜨거운 현안 중 하나는 강제동원 피해 문제다. 그런데 이 사안을 규정하는 용어가 한국 내에서도 각기 다르다.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강제징용, 법원은 강제동원이라고 쓴다. 강제동원 피해와 관련한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는 행정안전부 산하 재단 이름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강제동원'으로 바꾸어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안을 지칭하는 데 '강제징용'이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 각종 언론보도에서는 '강제동원'과 '강제징용'이 혼용되거나 '강제동원(징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 강제동원과 강제징용의 의미…차이점은
재단 누리집에 나온 강제동원의 정의는 일제가 아시아태평양전쟁(1931-1945)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권력에 의해 제국영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적·물적·자금 동원 정책이다. 강제동원 피해 유형은 군인, 군무원, 노무자, 위안부로 나뉜다. 재단 설립의 근거가 되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를 만주사변 이후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시기(1931-1945년)에 일제에 의하여 강제동원되어 군인·군무원·노무자·위안부 등의 생활을 강요당한 자가 입은 생명·신체·재산 등의 피해로 규정하고 있다. 즉, 인적·물적 자원이 대상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제작·운영하는 한국 역사 콘텐츠 누리집(이하 우리역사넷)에 나온 징용의 정의는 강제동원보다는 좁다. 우리역사넷에는 징용을 '일제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제정한 국가총동원법(1938) 시행 이후 인적 자원의 동원 중 병역에 복무시키는 징병을 제외한 나머지'로 총칭한다. 사실 징용(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 국가의 권력으로 국민을 강제적으로 일정한 업무에 종사시키는 일)엔 강제 의미가 들어있다. '강제징용'은 징용의 강제성을 좀 더 강조한 표현인 것이다.
◆ 어떻게 쓰는게 맞나요? 외교부·전문가 의견 달라
외교부 관계자는 3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학계에서 용어 정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강제동원은 인적·물적 자원 동원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이 군수산업 등에 강제로 동원돼 발생한 피해 문제를 다루는 것이니 '강제징용'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법적용어는 강제동원"이라면서도 "대법원에서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 받은 대상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중공업이니 '강제징용'이란 표현이 현안에는 더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강제징용보단 강제동원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다. 징용은 일제시기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이뤄졌고, 거부하면 수감이나 노역으로 처벌했다는 역사적 배경에서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홍보실장은 이날 통화에서 "강제적 동원은 모집, 관 알선, 징용 세 단계로 이뤄졌다"며 "일본은 모집과 관 알선은 강제성이 없었으며 징용도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강제징용엔 일본이 주장하는 합법성이 내포돼있다는 점과 모집·관 알선에서도 강제성이 있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선 '강제동원'이라고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실장은 "현안에 맞는 대상을 특정하기 위해 외교부가 '강제징용'이라고 쓰는 것이라면 그보다 '강제동원 노무'로 쓰는 게 맞는다"고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일본 측 논리에 동의하는 뜻으로 '강제징용'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일관계가 워낙 민감하다보니 갈등을 빚는 현안에서 용어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통화에서 "사실 문제는 용어보다 맥락"이라며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일 간 협상에서 자주적이기보다는 일본 쪽으로 끌려가는 느낌을 주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