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성 출장'으로 인식되는 의회외교는 국회의원의 '특권'보다는 '의무'에 가깝다. 정부외교의 손이 닿지 않는 분야, 공식적으로 처리하기 민감한 외교 현안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물론 제대로 했을 때 이야기다. 국회는 출장 사전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출장 비용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호소하지만, 유명 '관광지'를 끼워 넣고, 의전만 받고 온다는 오명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의원들의 해외출장 현황을 살펴보고, 의회외교가 신뢰받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국회는 의원들의 '해외 출장'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외유성 출장을 근절하겠다"며 개혁 의지를 불태웠다. 특히 5년 전 국민권익위원회가 피감기관 지원으로 국외 출장을 다녀온 국회의원 38명을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이후 대대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국회의장 산하에 국회의원 해외 출장이 적절한지 사전에 살펴보는 역할을 하는 '의원외교활동자문위원회'를 두고, 비용이 포함된 출장 결과 보고서를 국회 누리집에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의원들의 해외 출장 업무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고, 뒤늦게 알려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혈세로 외국에 놀러 간다"는 인식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출장 보고서 기한 내 제출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도 여전했다. 출장 정보를 보다 신속하게 공개하고 출장 후 의정활동에도 반영하는 등 성과를 최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해보인다.
◆올림픽 경기 참관부터 하와이 행사 참석까지
국회의원은 국외출장을 가기 전 국회 사무처에 '국외활동 신고서'를 제출해 자문위로부터 사전심사를 받는다. 자문위는 상대측으로부터 초청을 받았거나 일정 협의를 마친 공문 등이 있는지, 출장 현안에 대한 초기 조사를 마쳤는지, 출장 외에 국내 자료조사나 영상회의로 현황 파악이 어려운지, 본회의 일정과 겹치지는 않는지, 하루 2건 이상의 공식 일정이 있는지, 문화 시찰을 앞세워 목적과 상관없는 관광 일정은 없는지 등을 파악하고 출장을 승인한다. 이 기준에 따라 출장의 적절성을 살펴봤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반기 여당 간사였던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같은 당 전용기 의원은 지난해 2월 3일부터 2월 9일까지 6박 7일간 중국 베이징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베이징동계올림픽 한국 선수단을 격려하고 '향후 국제경기대회 개최 관련 비전 공유와 체육계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는 게 방문 목적이었다.
이들의 출장 일정은 동계올림픽 경기 참관이 주를 이뤘다. 두 의원은 3일 목요일 오전 11시 55분께 베이징에 도착해 코로나19 PCR검사를 받고 숙소에서 자가격리했다. 다음 날인 4일에는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올림픽 개회식을 참관했다. 5일부터 8일까지 두 의원은 세계컬링연맹 회장,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과 유승민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등 대한민국 선수단과 면담했다. 이 외에는 컬링 믹스더블 예선전(외국 선수 경기), 아이스하키 여자 예선전(외국 선수 경기), 쇼트트랙 500m와 1000m 예선전과 준준결승, 피겨스케이팅 남자 쇼트 프로그램, 스노보드 준준결승, 스피드스케이팅 경기 등을 참관했다. 또 국가대표 선수단에 도시락을 제공하는 급식지원센터와 미디어센터 등을 방문했다. 9일에는 별다른 일정 없이 오후 3시 55분 비행기로 귀국했다.
이번 출장은 '국제경기대회 개최 관련 비전 공유'가 주된 목적이었지만, 출장 보고서에는 잘 담기지 않았다. 총 64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는 방문개요와 방문활동이 개회식 개요, 각 경기장의 개장일과 규모와 특징, 방문 관련 사진 등으로 44페이지를 채웠다. 나머지 20페이지에는 대회기간과 장소, 참가규모, 개최종목, 대한민국 선수단 파견규모, 대회 로고 및 마스코트, 파견선수단 현황, 경기일정 경기결과 등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현황과 코로나19 관련, 중국 일반정보 등이 담겼다. 두 의원의 출장에는 1580만8000원이 쓰였다.
다만 이들에게 행사 참석을 요청했던 문체위 피감기관 측은 체육계 애로사항을 전달하고 선수단 격려를 위해 필요한 출장이었다고 강조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보통 모든 국제 대회 때마다 초청을 한다. 실제로 의원들이 오면 선수들이 아쉬운 소리를 하는데 그런 의견들을 수렴해서 예산에 반영도 되고 (의원들이) 제도 개선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또 국제 행사를 보게 되면 체육계가 국제대회를 유치할 때도 (의원들이) 긍정적인 인식을 할 수 있다"며 "특히 이번 올림픽 때는 코로나19로 한국 선수 응원단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두 분이 목이 터져라 응원해서 선수들도 고마워했다"고 했다.
눈길을 끄는 출장지는 또 있었다. 김홍걸 무소속 의원과 양기대 민주당 의원,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지난해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4박 6일간 '하와이'로 출장을 다녀왔다. 한미 수교 140년 한인 미주 이민 120년을 맞아 하와이에서 개최되는 '세계코리아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28일 오전 10시 30분 하와이에 도착해 오후 2시 국립 태평양 기념묘지에 헌화하고 오후 7시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직원 격려 만찬을 가졌다. 29일부터 30일까지는 포럼 행사에 참석해 의원들이 각자 기조 발제를 발표했다. 1일에는 하와이주 상원의장 면담, 동포 단체 오찬, 주호놀룰루 총영사 주최 관저 만찬 일정을 소화했다. 2일에는 별다른 일정 없이 오후 1시 출국했다. 이들 출장에 소요된 비용은 5093만9000원가량(지원 인력 1명 포함)이었다.
◆일정마다 관저 오·만찬...자체 일정 소화하기도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이 해외 출장의 주 목적 중 하나이지만 대사관 오·만찬이 주 일정을 이루거나, 외유성으로 보이는 자체 일정을 소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일의원연맹 여성위원회 소속 전혜숙·이재정·이수진(비례) 민주당 의원, 서정숙·이인선·조명희·최영희·국민의힘 의원, 양정숙·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지난해 12월 11일부터 13일까지 2박 3일간 일본을 다녀왔다. 11일 오후 6시 35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별다른 일정은 없었다. 12일에는 도쿄로 이동해 주일한국대사 주최 오찬에 참석하고 일본 저출산특명대신과 면담을 가졌다. 13일에는 한일양국 여성위 간담회에 참석한 후 한인타운 시찰, 연맹 주최 교포 오찬간담회, 국립근대미술관 견학 일정을 소화하고 오후 7시 35분 하네다 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김태흠·정점식 국민의힘 의원과 이개호 민주당 의원은 2021년 11월 10일부터 17일까지 6박 8일 일정으로 프랑스, 스페인으로 출장갔다. 이들은 10일 현지에 도착해 오후 8시 주OECD대사와 만찬 간담회를 갖고 11일에는 현지 농장 방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파리지사와 관담회, 주프랑스대사 만찬간담회를 가졌다. 이날은 프랑스 전승기념일로 현지 공휴일이었다. 12일에는 국제항로표지협회 사무총장과 면담한 후 피감기관인 한국선급 파리지사 간담회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13일에는 오후 1시 30분부터 약 2시간 마르세유항 터미널을 시찰한 후 스페인 마드리드로 이동했다. 14일에는 한국선급 마드리드지사 간담회 일정만 있었다. 15일은 스페인 농업식품기술연구원을 방문해 스페인 하원 농업수산식품위원장과 면담했다. 이어 주스페인대사 주최 만찬 간담회에 참석하고 16일 오전 10시 20분께 공항에서 출발했다.
의원들이 해외 출장 중 대사관이나 피감기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명분으로 의전을 요구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외교부 직원임을 인증해야만 쓸 수 있는 익명 게시판에 국회의원 해외출장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외교부 직원으로 추정되는 작성자는 "국회의원들 연말 해외출장 너무 심하다. 억지로 공식일정 짜내라 하고, 놀러 와서 공관 차량에 기사들 붙여 관광지 공짜로 놀러 가려 하고, 공관 직원들 주말에 불러낸다"고 토로했다.
전·현직 국회의장 배우자의 잦은 해외 출장 동행도 눈길을 끈다. 박병석 전 의장은 총 16번의 해외 출장 중 배우자와 11번, 김진표 의장은 4번의 출장 모두 배우자와 동행했다. 이에 대해 사무처 관계자는 "외교 관례와 초청에 따른 사안"이라며 "오히려 (의장님) 배우자가 안 가면 외국 의회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사전 심사 까다로워졌지만...사후 조치 미흡
국회 사무처와 의원실 측은 자문위가 설치된 이후 해외출장 승인 사전심사가 까다로워졌다고 입을 모은다. 출장 계획서가 반려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진표 의장 산하 자문위의 A 위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보통 한 달에 4~5건 씩 (심사)하는데 준비를 잘해가지고 오는 분도 있고 사안에 따라 급조하는 분들도 있고 거기에 대해서 '너무 급하게 추진하는 것 같다. 더 준비해서 와라'고 반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로 현지와의 연계를 본다. 의원외교라는 게 현지하고도 미리 연락이 돼야 하는데 그런 게 좀 미흡하면 좀 더 정확히 (일정을) 만들어 오라고 한다"고 했다. 이어 "옛날에는 외유성 출장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요새는 외유성이나 동포사회 방문만 하고 돌아온다든지 이런 건 거의 없다. 국회의원들도 그런 걸 되게 신경 쓰는 것 같다"고 했다.
해외 출장 경험이 있는 한 의원실 B 관계자도 "저희 출장의 경우만 보면 사전 심사가 상대적으로 매우 까다롭게 진행됐다. 실제로 한 번 거절 당해 1달 동안 잘 준비해서 다시 신청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까다로워진 사전 심사에 비해 사후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장 결과보고서를 적절하게 작성해 출장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의정활동에 반영하는 부분은 적고 여전히 '의무'로서의 보고서 제출에 그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외교활동 등에 관한 규정'에는 국회의원이 해외출장을 다녀온 후 30일 이내(부득이한 경우 45일 이내) 활동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결과보고서에 목적과 대상국가, 국회의원 대표단의 구성, 주요일정, 활동내용 및 성과와 소요예산 등을 포함해야 한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시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출장 후 즉시 한 장짜리 보고서를 국회 누리집에 공지하도록 하고, 결과보고서에 후속조치 필요사항까지 포함토록 하고 있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 1월 1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매번 반복되는 외유성 출장 논란에 대해 이같이 밝히면서 "실질적으로 의회 외교가 공공외교의 핵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21대 국회 해외출장 중 결과보고서를 기한 내 제출하지 않거나 보고서에 비용을 누락한 경우는 여전히 있었다.
모두 상임위원회 출장 건이었다. 결과보고서는 게시했지만 비용을 누락한 경우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4건, 정무위 2건, 행정안전위 2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2건, 운영위 1건 등 총 11건이었다. 상임위는 보고서 내 비용 포함 규정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운영위 관계자는 비용 누락 이유를 묻자 "결과보고서 내 비용 포함이 의무사항은 아닌 것으로 안다. 사무처에서 출장 관련해 공통적인 지침이 내려오면 따를 것"이라고 했다. 결과보고서를 제출 시한 내 게시하지 않은 출장도 예산결산 특위 3건, 법제사법위원회 1건, 문화체육관광위 1건, 기획재정위 1건, 국토교통위 1건 등 7건 있었다. 귀국 즉시 제출토록 한 출장 약식 보고서도 국회 누리집에 게시되지 않은 건이 더 많았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출장 보고서 미제출과 관련해 "상임위의 경우 1년에 한두 번씩만 출장을 나가다 보니 잘 안 지켜지는 게 있다. 국회 차원에서 더 알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국회는 최근 '외유성 출장'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의회외교 활동 종료 후 사후 조치나 홍보 등 성과평가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김 의장은 의회외교활동자문위원회에 더해 경제외교자문위원회를 추가로 구성했다. 하지만 실무진 차원에선 국회의원을 상대로 하는 만큼 평가가 유명무실한 모양새다. 출장 성과평가는 의장 산하 자문위원회가 반기마다 작성해야 하지만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성과평가 보고서는 나오지 않았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 임기가 끝나면서 자문위는 보고서 제출 없이 해산했다.
A 자문위원은 "자문위는 (출장이) 정확하게 정확히 절차에 의해 이뤄졌는지를 본다. 성과는 계획서에 있는 것에 의해서 국회에서 해야지, 자문위가 성과까지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성과 평가를) 협의할 때 절차에 다 맞게 되면 성과가 기대되는 거니까 (국회로부터 결과를) 보고받는 정도"라고 했다.
또 국회의 출장 규정을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지급을 안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있지만 부적절한) 출장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결국은 국회에 대한 신뢰도와 맞물려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워낙 강하다 보니 (해외 출장에 대해서도)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의원실 B 관계자는 의회외교 신뢰 회복 방안을 묻자 "국민들이 의회외교에 부정적이시기 때문에, 의회외교를 갈 때 그 일정을 국민께 투명하게 공개하고 결과보고서도 형식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KPI(핵심성과지표)를 확실히 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는지 보여드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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