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이탈표' 민주당 후폭풍…친명-비명 충돌 수면 위로


강성 지지자 '배신자 색출' 나서기도…"인민재판인가"
기소 시 '이재명 퇴진론' 커질 듯…리더십 도마

이 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오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은평구 수색초등학교에 학교 급식노동자 폐암 진단 관련 민생현장을 방문하고 있는 이 대표. /뉴시스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단일대오' 전선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오면서 당내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비이재명계는 "사실상 당대표 탄핵"이라며 이 대표에 대한 '자진 사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친이재명계는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도 다시 "내부 결속"을 외치고 있다. 강성 지지자들은 '이탈자 색출'까지 나서면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리더십 타격을 입은 이 대표가 당내 혼란을 수습하고 위기 상황을 반등시킬지 주목된다.

당내에선 이 대표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표결 결과는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였다. 민주당 의원 전원(169명)이 참석했지만 반대표가 138표에 그쳐 당내에서만 최소 31표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

강성 지지자들의 분노의 화살은 비명계로 향했다. 당원들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이탈표'를 던진 의원들 색출에 나섰다. 의원이나 의원실에 직접 전화나 문자로 '가부'를 묻는 방식이다. 온라인상에서는 40여 명 의원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낙선 명단'도 공유되고 있다. 민주당 내 이탈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내년 총선에서 낙선 운동을 벌이자는 것이다. 앞서 지난달 15일 이 대표는 유튜브 생방송에서 당원들에게 "제가 문자 폭탄 같은 거 보내지 말자고 몇 번 했는데 어느 순간 이게 사라져버린 것 같다. 억압이 중심이 된 것 같다"면서 문자 폭탄 등 과격 행위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지만 호소가 무색해진 셈이다.

일부 강성 지지자들은 이탈표 색출에 나섰다. 부정확한 정보가 공유돼 일부 의원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지목당한 의원들은 부랴부랴 해명에 나서고 있다. 오영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상식 밖 구속영장청구 체포동의안을 국회에서 부결시켰다"고 밝혔다. 권칠승 의원은 "갑자기 찬성표를 던진 의원 명단이라는 게 돌아다닌다. 그 안에 제 이름이 있어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며 "억울한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런 일은 없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른바 '반란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민주당 A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황당하다"며 난감해했다. 그는 전날(27일)부터 항의성 문자와 전화를 10여 개 받았다고 한다. A 의원은 "당하니까 (투표용지를) 찍어둘 걸 그랬나 싶다가도 사실 올리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다. 무기명 투표라는 제도를 만든 취지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인민재판도 아니고"라고 했다.

이어 "지지자들의 태도도 갈수록 격앙되고 극렬한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내부 갈등 구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우려했다.

'이탈표 사태' 향후 대응을 두고도 친명과 비명계가 갈렸다. 당 지도부와 친명계 의원들은 거듭 '내부 결속'을 호소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표결 결과가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모은 총의에 부합한다고 보기엔 어렵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당의 단일한 대오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어제의 일로 당이 더 혼란이나 분열로 가서는 안 된다"며 "표결 결과가 주는 의미를 당 지도부와 함께 깊이 살피겠다"고 했다. 정청래 최고위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 더 잘 치밀하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박범계 의원은 추가 구속영장 청구에 철저하게 대비하기 위해 '부결 당론 채택'을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어떤 경우에도 분열은 막아야 한다"며 "검찰의 폭주하는, 소위 건건이 쪼개기, 비 오는 날 먼지 털이와 같은 재청구 사태가 예견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당론을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비명계는 '무더기 이탈표'는 이 대표 체제에 대한 당내 우려가 표출된 것이라며, 이 대표 결단이 필요하다고 압박했다. 대표적인 비명계 중진인 이상민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 정도 숫자가 나온 건 우연은 아니다"라며 "어느 정도 삼삼오오 교감이 이루어진 것은 맞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기권‧무효표 역시 사실상 이 대표 체포에 찬성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많은 의원들이 이 대표의 리더십을 따라가기는 하지만, 이렇게 가면 당도 다 송두리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걱정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며 '선당후사'를 강조했다.

비명계는 당장의 공개 행보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이날 예정됐던 당내 쓴소리 모임 '민주당의 길' 정기 토론회를 취소했다. 강성 지지층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체포동의안 반대표로 존재감을 각인시킨 비명계가 검찰 기소를 기점으로 당 지도부와 정면충돌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든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는 '당헌 80조'를 명분으로 이 대표 사퇴론을 조직적으로 주장하는 움직임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는 이 대표 수사는 명백한 야당탄압이기 때문에 관련 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기소 후에도 정치 탄압이라고 한다면 직을 유지할 수 있게끔 길은 열어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소 시점에 본격적으로 한번 붙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어 "이번에 비명계들은 본인들의 지분을 확인하는 셈이 됐다. 본격적으로 결집도를 높여갈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무더기 이탈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등 주도권 다툼에서 비주류가 세력을 과시한 것이란 분석이 다수다. 박 의원은 이탈표 사태에 대해 "불체포 특권에 대한 생각, 총선을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겠느냐에 대한 생각, 선거 제도 개편, 공천권 등이 엮인 결과"라고 해석했다. 민주당 B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갈등이 안 생길 수 없다. 지금 이탈표가 있는 곳들은 다들 친명 대 비명이 대결하는 지역들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생길 수밖에 없는 갈등"이라며 "이제 비명계가 확실하게 커밍아웃(정체성 공개)을 했기 때문에 이판사판으로 더 세게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무더기 이탈표는 내년 총선 공천에 대한 우려가 기저에 깔린 만큼 이 문제를 해소한다면 단일대오 전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27일 오후 본회의에서 자신의 체포동의안 감표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이 대표. /이새롬 기자

이 때문에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 공세 속에서 총선 승리 전략을 분명히 세우고, 공천 과정에서 비명계를 보듬는 행보를 보인다면 '방탄 단일대오' 전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대표는 최근에도 공천과 관련해 제도 개선을 최소화하겠다고 '비명계 달래기' 메시지를 낸 바 있다.

A 의원은 "지도부 입장에서는 다 끌어안고 수습을 하는 걸로 문제를 해결해야지, 이걸(무더기 이탈표 사태) 확대하면 더 치명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B 관계자도 "2015년 문재인 대표 때도 리더십이 엄청 흔들렸다. 하지만 총선에서 이기고 대선까지 간 것을 보면 (이번 표결로) 리더십 치명타라고 보기엔 이르고 총선 결과가 알려줄 것이다. 이 대표가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앞으로 리더십을 보여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당분간 '민생' 행보에 집중하며 거취를 포함해 향후 대응 방식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서울 은평구 수색초등학교에서 '급식 노동자 폐암 진단 관련 민생현장 방문'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이재명을 잡느냐 못 잡느냐 이런 문제보다는 물가도 잡고 경제도 개선하고 사람의 삶도 더 낫게 만드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향후 거취 표명할 생각이 있느냐' '당내 소통을 어떻게 할 건가' 등의 질문에는 침묵한 채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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