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성 출장'으로 인식되는 의회외교는 국회의원의 '특권'보다는 '의무'에 가깝다. 정부외교의 손이 닿지 않는 분야, 공식적으로 처리하기 민감한 외교 현안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물론 제대로 했을 때 이야기다. 국회는 출장 사전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출장 비용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호소하지만, 유명 '관광지'를 끼워 넣고, 의전만 받고 온다는 오명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의원들의 해외출장 현황을 살펴보고, 의회외교가 신뢰받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지난해 연말 국회의원 '외유성 출장' 논란이 일었다. 국회의원 5명이 해외출장을 가 카타르 월드컵 경기를 참관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국제 체육대회 유치에 대한 의회 차원의 지원방안을 모색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예산안 처리를 남겨둔 가운데 의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유럽 등으로 출장 간 사실도 뒤늦게 확인돼 지탄받았다.
해외로 출장 간 의원들은 어디로, 어떤 업무를 하고 돌아올까. <더팩트>는 국회 사무처 누리집에 공개된 '국회의원 해외 출장 보고서(2023년 2월 21일 기준 게시 대상)'와 국회 사무처 정보공개 청구(2023년 1월 출장까지 대상)를 통해 21대 국회 해외출장 현황과 적절성을 살펴봤다.
◆21대 의원 10명 중 7명 해외출장 1회 이상...최다 방문국은 미국
분석 결과, 21대 국회의원 299명 중 210명(70.2%)이 1번 이상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파악됐다. 총 143건의 출장 중 방문국은 69개국으로, 국가별 출장 횟수(1회 출장시 다수 국가 방문)는 212건이었다.
이중 국회의원들의 발길이 가장 잦았던 출장지는 유럽이었다. 구체적으로 방문 지역(출장 횟수)을 살펴보면 △서유럽 53 △중유럽 32 △동남아시아 26 △북미 24 △중동 21 △동유럽 및 러시아 19 △동북아시아 15△남부아시아 7 △중남미 7 △아프리카 7 △오세아니아 1 순이다. 단일 국가로는 미국이 2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프랑스 14 △일본 12 △인도네시아 9 △스페인 독일 8 △이탈리아·스위스 UAE 7 △태국·네덜란드 6 △베트남·이집트·벨기에 4 △모로코·캄보디아·오스트리아· 인도·루마니아·포르투갈·영국 3 순이다.
의회외교가 주 업무인 전·현직 국회의장단을 제외하고 해외 출장을 가장 많이 다녀온 의원은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양정숙 무소속 의원(9건)이다. 국회 한일의원연맹 상임간사인 김 의원은 일본을 5회 방문했다. 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논의를 위해 미국을 다녀오는 등 현안 관련 방문이 주를 이뤘다. 양 의원은 제3차 유라시아여성포럼, 제27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의원회의, 제4차 아시아-유럽 정당 포럼 및 제37차 ICAPP 상임위회의 등 국제회의 참석이나 국회의장단 방문에 합류한 경우가 다수였다. 이들을 포함해 △이헌승(8건) △김경협·김병주·양향자·이재정·전혜숙(7건) △강민국·윤호중(6건) 의원 등이 해외출장 상위 그룹이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민주당 의원은 116명, 국민의힘 의원은 81명이 해외 출장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의당 △배진교(4건) △강은미(3건) △심상정(2건) △이은주(2건) △장혜영 (2건) △류호정 (1건), 기본소득당 △용혜인 (1건), 시대전환 △조정훈 (2건) 의원 등 소수정당은 의원 전원이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무소속은 △양정숙(9) △양향자·김진표(7) △김홍걸(5) △박완주(1) 의원 등이었다. 방문단 구성을 특정 교섭단체에 편중되지 않도록 한 규정에 따라 출장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의장단별로 살펴보면 박병석 전 국회의장이 16건, 김진표 현 국회의장이 7건이었다. 김영주·정우택 국회부의장은 각각 5건, 1건이고 정진석·김상희 전 국회부의장은 각각 4건, 3건이었다.
총 129건(결과보고서 비용 누락 건 제외)의 해외 출장에서 지출한 비용은 113억5948만7000원이었다. 지원 인력 경비 포함해 의원 1인당 1회 출장 비용으로 평균 2070만8669원을 쓴 꼴이다. 해외 출장 비용은 비즈니스 클래스 수준의 항공임과 체재비,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른 일비·식비·숙박비가 지급된다. 또 공식 오·만찬 개최비용, 차량임차료 등도 사업추진비 명목으로 쓸 수 있다.
143건 중 국제회의 참석 또는 개최를 위한 해외 출장은 29건에 그쳤다. 주체별로 상임위 차원의 방문은 26건, 의장단 방문 23건, 의원친선협회 방문 11건, 의회외교포럼 방문은 2건이었다. 특정 현안 관련 방문은 ESG 생태계확립 제도나 덴마크형 방역 해제 모델 도입,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및 방사성폐기물 처분 선진사례 조사 등 선진 제도를 현지에서 직접 파악하고 입법 방향을 살펴본다는 이유가 주를 이뤘다.
◆본회의 불참 의원 104명...대표발의 법안 표결도 놓쳐
국회 차원에서 의회외교활동은 권장하고 있지만 회기 중인 경우는 예외다. 국회의원의 외교활동 규정에 따르면 국제회의 등 부득이한 사유가 아니면 개회 중 해외출장에 대해선 여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행정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국회의장 산하 의회외교활동자문위원회의 해외 출장 사전 검토 과정에서도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될 만큼 중요한 사안인가'라고 물을 정도로 해외 출장으로 인한 본회의 불참을 최소화하도록 권하고 있다.
분석 결과, 140건(정보위원회 제외) 중 국회 비회기 기간 진행된 해외출장은 21건에 불과했다. 특히 '해외 출장'을 이유로 본회의에 불참한 의원은 총 104명이었다.
국제회의 참석을 제외하고 해외출장 간 의원은 93명이다. 이들 중 본회의 불참 횟수가 가장 많은 의원은 김경협·강훈식 민주당 의원,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으로 각 5회였다. 2021년 6월 22일부터 24일까지 대정부 질문이 있던 날, 2022년도 예산안 정부 시정연설을 위한 본회의가 열린 날 김 의원은 국회평화외교포럼 대표단으로 미국과 프랑스, 스웨덴을 찾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던 지난해 12월 11일, 이 의원은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을 목적으로 헝가리,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를 방문했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준공식 겸 헌정식에 국회 국방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하면서 본회의에 불참했다.
상위 3명에 이어 해외출장으로 본회의에 불참한 의원은 △이재정·이학영·엄태영·윤재옥·윤호중·양정숙(4회) △남인순·박덕흠·이양수·송기헌·허은아·김태호·조정훈·양이원영·김홍걸·김상희·김민철·박찬대·이은주·조승래·박병석(3회) △김형동·김한정·김석기·배현진·정진석·조명희·윤관석·박성준·김태흠·김영주·김영식·양향자·윤영찬·홍익표·강민국·어기구·박대출·인재근·이명수·강은미·김성원(2회) △황보승희·윤창현·강선우·소병훈·강준현·배준영·정춘숙·백혜련·전해철·최인호·윤두현·이종배·김윤덕·민홍철·허영·정점식·서삼석·이원택·류호정·최형두·김병욱(국)·박성중·송언석·이인선·장동혁·전봉민·김태년·주호영·최강욱·박대수·신동근·양기대·이철규·김종민·설훈·박광온·우원식·주철현·김승남·임종성·김웅·이개호·이용빈·문진석·이장섭·서영교·이형석·류성걸 (1회) 의원 등이다.
이들 중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이나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안건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날 '해외 출장'으로 표결에 참여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출장 시기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헌승 의원은 2021년 11월 7일부터 15일까지 한-중남미 의회외교포럼 차원에서 멕시코·코스타리카를 방문하면서 11일 본회의에서 자신이 대표발의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표결 기회를 날렸다. 무면허자의 불법 자동차 대여 및 운전을 차단하기 위해 운전자격을 확인하도록 근거를 마련한 해당 개정안은 찬성 195인으로 가결됐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도 국회부의장 자격으로 지난 2021년 5월 12일부터 20일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다녀온 후 코로나19 방역 권고에 따라 자가격리 하면서 5월 21일 정보보호산업 진흥법 개정안 본회의 표결에 참여하지 못했다. 김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당 개정안은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은 이용자 정보보호를 위해 정보보호 현황을 공시화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0월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한-스위스·오스트리아 의원친선협회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로 출장을 가 10월 27일 '건축법 개정안' 본회의 표결에 불참했다. 건축물 용도를 교정시설과 국방·군사시설로 나눠 규정하는 내용으로 이 대표가 대표발의한 해당 개정안은 200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용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계획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던 지난해 11월 24일, 해외 출장 중이었던 홍익표·김윤덕민주당 의원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카타르 월드컵 경기를 참관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차원에서 농업해양산림분야 식견을 높인다며 영국과 네덜란드를 방문 중이던 소병훈·이원택 민주당 의원도 이날 본회의에 불참했다.
이태원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기간 연장 건이 통과됐던 지난 1월 6일 박성중·조승래·윤영찬·허은아·강훈식·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CES 2030 참석을 위해 미국 출장 중이었다. 윤호중·민홍철 민주당 의원과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도 '오사카민단 신년회 참석'을 이유로 본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윤호중 의원은 이로부터 일주일 뒤 전국적 규모의 '재일민단 신년회' 참석을 위해 다시 일본을 찾기도 했다.
◆같은 정당 의원끼리·나 홀로 출장도
국회의원 외교활동 규정에는 '국회의원 방문단이 특정 교섭단체에 편중된 경우'나 '1인으로 구성하는 경우'에도 여비 지급이나 행정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초당적 의회외교 활동이 아닌 소속 의원 친목용이나 외유성 출장으로 변질할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분석 결과, 같은 당 소속 의원들끼리 출장 간 경우는 19건 있었다.
위성곤·이원택·이수진(동작을)·유정주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해 6월 10일부터 18일까지 6박 9일간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유럽의회의 ESG 입법 동향 점검'이 목적이었다. 출장 기간 AUDI 전기차 공장 시찰, 기업인 오찬, 연금투자회사 APG임원 면담, 회계법인 PWC임원 면담 등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일정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7월 이틀간 전혜숙·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한-몽골 보건의료체계 관련 교류 협의' 목적으로 몽골을 찾았다. 이들은 몽골국립의과대학교를 방문해 의료장비 전달식에 참석하고 몽골 보건부 장관과 몽골제2국립병원장 면담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2021년 10월 국회평화외교포럼 차원에서 프랑스,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도 김경협·김홍걸·허영 민주당 의원으로 방문단이 구성됐다. 이들은 결과 보고서에 "당초 국민의힘 의원 포함해 방문단을 구성하고자 했으나 야당 의원 측이 국회 일정 등을 이유로 합류가 불가하다고 고사해 여당 위주 방문단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출장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22일 파리에서 하원 프-한 의원친선협회장과 하원 외교위원장, 상원 외교국방군사위원장을 면담했고, 25일 스톡홀름에서 세계코리아포럼에 참석했다. 26일에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장 면담 일정만 있었다.
지난 1월 5일부터 12일간 송언석·장동혁·전봉민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 운영위원회 차원에서 중동지역 의회인사 면담, 현지 진출기업 시찰을 이유로 요르단, 이집트, UAE를 다녀왔다. 국회 사무처, 대통령실 등을 소관 부처로 두고 있는 상임위 성격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관련 일정으로는 8일 요르단 상원의장 예방, 요르단 하원 아태친선협회장 면담, 10일 이집트 하원 사무총장 면담, 11일 JAFZA(경제자유구역) CEO 면담, 주두바이 중소기업인 간담회 등이 있었다.
의원들의 '나 홀로 출장'은 총 7건이었다.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지난해 11월 라오스를 홀로 공식 방문했고,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홍범도장군 유해봉환 후속사업을 위해 카자흐스탄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6월 미 타임지 초청으로 미국을 홀로 다녀왔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국회평회외교포럼 차원에서 미주민주참여포럼을 다녀왔다.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이었던 이광재 의원은 지난해 4월 폴란드를 방문해 바르샤바 난민 수용시설을 시찰하고 관계자를 면담했다.
전반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낸 윤재옥 의원은 홀로 해외출장을 2번 다녀왔다. 지난해 9월 23일부터 9월 28일까지 프랑스와 스위스를 방문했다. 업무보고가 일정의 다수를 차지했다. 24일 유네스코(UNESCO)를 방문하고 주UN대표부와 주OECD 대표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25일에는 주프랑스대사관 업무보고를 받고 스위스 제네바로 이동했다. 26일에는 오전 11시 국제의원연맹(IPU) 사무총장 면담 일정만 있었다. 27일에는 오전 11시경 주제네바대표부 업무보고를 받고 오후 5시 15분 비행기로 귀국했다. 총 3102만6000원가량(지원 인력 1명 경비 포함)이 소요됐다.
지난해 12월 3일부터 5일까지는 '정계 주요 인사 면담'차 일본을 방문했다. 윤 의원은 3일 12시 30분경 도쿄에 도착해 주일본대사관 업무보고를 받고, 다음 날인 4일 오후 6시 일한협력위원회 부회장을 면담하는 일정만 있었다. 이 출장에는 항공임 214만7000원, 숙박비 106만1000원을 포함해 총 531만8000원 예산(지원 인력 1인 경비 포함)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