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vs 입법조사처, '노조 회계 장부' 공개 미묘한 엇박자


노동부 "회계 장부 제출하지 않은 207개 노조에 엄정 대응"
입법조사처 "행정관청, '회계 장부' 제한·소극적 보고받아야"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노동 개혁의 출발은 노동조합 회계의 투명성 강화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노동 개혁의 출발은 노동조합(이하 노조) 회계의 투명성 강화입니다. (중략) 회계 투명성을 거부하는 노조에 대해 재정 지원을 계속하는 것은 혈세를 부담하는 국민들께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노동 개혁을 뒷받침할 만한 입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길 바랍니다."(윤석열 대통령 21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

"행정관청은 노조의 자주·독립성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노조가 최소한의 민주성을 보장하고 있는지, 해당 법률을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이므로, 대상은 그 취지에 부합하는 범위로 '제한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대한 국회 입법조사처 답변)

대통령실과 정부가 노동 개혁 및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강조하면서, 노조에 회계 장부의 비치·보존 결과를 제출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미제출 노조에 대한 무관용 원칙에 입각한 엄정 대응까지 예고한 가운데 국회 입법조사처는 정부 방침과 다소 결이 다른 유권해석을 내놔 눈길을 끈다.

◆정부, 노조 회계 자료 제출 압박

입법조사처는 21일 '노조법의 문언, 입법 연혁 및 입법자의 입법 취지, 회의록 등을 고려했을 때 노조가 회계연도마다 공표하고, 행정관청에 보고하는 대상인 법 제26조, 제27조의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법 제14조에 비치 의무가 있는 서류인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이 당연히 포함되는 것인지 여부'를 묻는 우원식 민주당 의원 질의에 "노조법 27조의 '결산결과 운영상황'에 노조법 14조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노조법 14조(서류비치 등)에는 '노조는 조합설립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조합원 명부 △규약 △임원의 성명·주소록 △회의록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을 작성해 그 주된 사무소에 비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노조법 26조(운영상황의 공개)에는 '노조 대표자는 회계연도마다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공표해야 하며 조합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이를 열람하게 해야 한다'고, 27조(자료의 제출)에는 '노조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건설현장의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 행위 실태와 대책을 보고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와 관련 노동부는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의 노조를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지난 1월 31일까지 자율점검을 한 후 그 결과서와 증빙자료를 관할 행정관청(노동부 본부 및 지방노동관서)에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노동부가 제출 마감일로 제시한 지난 15일까지 유효한 점검 대상 노조 327개 중 120개(36.7%)만이 정부 요구에 따라 자료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에서 "현장의 노사법치 확립을 위한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대책으로서 먼저 회계 장부의 비치·보존 결과를 제출하지 않은 207개 노조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할 계획"이라며 "즉시 14일간의 시정 기간을 부여하고, 미이행 시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럼에도 계속 보고하지 않는 노조에 대해서는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이 근거는 질서위반행위규제법이 되겠다. 이를 거부하거나 방해, 기피하는 경우 과태료를 추가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장관은 "노동단체 지원사업의 경우 올해부터 회계 관련 법령상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노동단체를 지원에서 배제하고, 그간의 지원된 전체 보조금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조사해 부정 적발 시 환수하는 등 엄정 조치할 계획"이라며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해 노조 회계 공지 시스템 구축 등도 차질 없이 추진하고, 국제 기준에 맞춰 조합원 열람권 보장, 회계 감사 사유 확대 등 전반적인 법 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 기자가 '노조는 (회계 장부) 내지는 정부가 열람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이 장관은 "저희가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 아니고, 핵심은 노조법 14조에 나와 있는 대로 주요한 서류를 비치하고 보존해서 조합원한테 알려줘야 될 의무가 있는데, 그것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내지를 한 장이라도 붙이면 된다"며 "이는 법에 나와 있는 대로 집행을 하면서 노조의 자율적인 점검 기간 동안에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인데, 내지를 한 장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이 제도의 취지나 정부 정책에 반하는 행위"라고 답했다.

◆입법조사처, 정부와 미묘하게 다른 유권해석

입법조사처의 유권해석은 정부와 미묘하게 달랐다. 입법조사처는 우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노조법) 26조 및 27조의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의 범위에 제14조에 규정된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포함되는지 여부는 현행 노조법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며 대법원 판례와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를 근거로 "조합비 운영 (회계 장부를) 조합원에게 공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행정관청은 노조의 자주·독립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조가 최소한의 민주성을 보장하고 있는지, 해당 법률을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이므로, 대상은 그 취지에 부합하는 범위로 제한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노조 회계 투명성 관련 내용을 브리핑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면서 입법조사처는 "행정관청이 노조에 요구하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대해서 노조 규약으로 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사유와 범위를 법률에서 명시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국회 입법을 통한 법률적 보완 방안을 제시한 뒤 "현행법 체계상 노조법에 행정관청이 노조에 요구하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 범위에 대해 위임한 바 없으므로 '위임명령'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행정사항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집행명령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1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입법조사처에서 노조 회계 투명성과 관련한 유권해석을 내놨다. 대법원 판례와 ILO 협약 등을 근거로 들어서 정부가 회계 장부, 재정 장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근거가 없다라고 해석을 했는데, 어떻게 보면 정부의 정책과는 반대되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대통령실 입장이 어떤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어제 노동부 장관도 잘 설명하셨던 것 같고, 기존에 노동부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설명을 했던 것 같다"며 "일단 노조원 스스로도 지금 노조 지도부가 제대로 회계를 투명하게 하는 건가에 대한 의구심은 굉장히 많이 있지 않나. 그런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법적으로, 또 관련된 '시행령'이라든지 보면서 이 부분은 처리해 나간다고 보면 되겠다"고 답했다.

◆양대노총 "정부 월권…위법한 노조 운영 개입"

양대 노총은 입법조사처의 유권해석 쪽에 무게를 실으면서 정부가 월권 행위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부의 추가 회계 자료 제출을 거부한 한국노총은 "정부가 노조 내부 운영에 법 위반 등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노조가 보관하거나 비치한 자료의 내지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현행 노조법상 노동부 권한을 넘어선 부당한 요구에 해당한다"며 "이미 노조법 14조에 의한 보관 및 비치서류에 대한 자율점검결과서를 제출하고, 증빙사진을 제출했음에도, 보관자료의 '내지'가 누락됐다는 이유로 자료 보완 및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월권적이고 위법한 노조 운영에 대한 개입 행위"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이미 자주적 민주적 운영원칙에 따라 노조 규약, 재정, 총회 등을 운영하며 조합원에 노조의 결산과 운영현황을 보고해왔다. 반기별 회계감사를 장기간 진행하고 결과를 공포한다.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예산과 결산, 사업계획 설명을 위한 순회설명회, 안내 영상, 교육 자료 등을 제작해왔으며, 대의원대회 현장은 언론과 인터넷에 공개해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공표하고 있다"며 "노동부가 요구한 자율점검 기간, 민주노총은 내부 운영현황을 재점검했고, 자율점검 결과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앞다투어 비난했던 '3대 부패' 운운은 허위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노동부는 노조 내부에 법 위반이 발생하지 않는 한 노조가 비치한 자료를 제출받을 이유도, 조사할 권한도 없다"며 "진정이나 민원이 제기되지도 않았는데, 일정 규모 이상 노조에 비치 자료 한 장씩을 내라며 엄포를 놓은 것은 명백한 권한 남용이다. 위법 월권적 노동부 요구는 따를 이유 없으므로 자주성 침해 위협이 있는 노동부의 자료 제출 보완 요구는 거부할 것이며, 과태료 부과 등 부당한 행정조치도 거부한다. 이미 밝혔듯 양대 노총은 폐기된 법률로 현행법을 해석하는 노동부의 월권을 법률투쟁으로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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