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정치부는 여의도 정가, 대통령실을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주간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방담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로 정리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허주열 기자] -검찰이 지난 1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사실상 예고됐던 검찰 행보에 민주당은 총력전을 예고했다.
-이번 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면서 '네 탓'에 집중했다. 일부 취재진 사이에선 '도긴개긴', '블랙코미디', '오류(誤謬) 정치'라는 혹평이 나왔다.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공금 횡령·배임 등의 혐의가 있다고 검찰이 기소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1심 재판에서 8개 혐의 중 '업무상 횡령'만 유죄로 인정돼 15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를 시작으로 윤 의원을 향한 공개 사과 릴레이가 펼쳐졌다.
-고물가와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겨울철 난방비 폭탄까지 더해지면서 민심이 악화하자 정부는 말을 바꿔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전기·가스요금 인상 속도 조절'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전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판했는데, 민심 악화에 전 정부와 비슷한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13일 제주 합동연설회를 시작으로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본경선의 막이 오른 가운데 당 지도부와 일부 후보는 '제주 4·3 사건'을 대하는 엇박자를 내 질타를 받았다. 또 국민의힘 내 최대 공부 모임인 '국민공감' 모임에서도 참석한 의원들의 태도는 엇갈렸다.
◆"올 게 왔다" 檢, 이재명 구속영장 청구에 민주당 총력전 예고
-지난 16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3부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 공여, 이해충돌방지법·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이 대표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어.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야.
-검찰은 이번 주께 이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할 거라는 정보를 일부 언론에 흘리면서 예고(?)한 바 있어. 이에 민주당도 구속영장 청구에 "올 게 왔다"는 반응이었지. 당 지도부는 구속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진 직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오후 2시에 열겠다고 공지했어. 이 대표는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경로당을 방문해 난방비 지원 관련 행사를 이어가던 중이었는데, 기자들이 구속영장에 대한 입장을 묻자 "오후에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도록 하겠다"며 현장을 떠났어.
-이 대표는 오후 긴급 최고위 모두발언에서 검찰의 '정치 탄압'을 규탄한다고 밝혔어. 이 대표는 독재 정권 당시 탄압받았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을 소환하며 "독재 권력은 진실을 조작하고 정적을 탄압했지만, 결국 독재자는 단죄됐고, 역사는 전진했다"고 떳떳하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지.
-긴급 최고위에서 기자들이 놀란 순간이 있었다고?
-이날 모두 발언 순서는 박홍근 원내대표-최고위원들-이 대표 순이었어. 근데 정청래 최고위원이 발언하던 도중 이 대표가 기침을 하며 얼굴이 빨개지더라고. 정 최고위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내란음모 조작 사건' 당시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진을 꺼내 보이며 이 대표를 향한 검찰의 정치 탄압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중이었어. 순간 취재진들은 이 대표가 '눈물'을 보이는 줄 알았어. 카메라 셔터 소리도 엄청났고. 이 대표는 계속 목을 가다듬더니 보좌진이 물을 가져다주자 진정한 것 같았어. 이 대표는 본인 순서에 눈물을 보이는 기색 없이 모두 발언을 마쳤어. 공개 발언 이후 대표실에선 "이 대표가 눈물을 보인 게 아니라 사레가 들린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어.
-당 지도부는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17일 오전 11시 30분에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윤석열 정권 검사 독재 규탄 대회'를 진행한다고 밝혔어. 윤석열 정권 검찰의 편파 수사에 대한 부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 17개 시·도당위원장을 비롯해 보좌진, 당원들에게 규탄 대회 참석령이 떨어졌지. 이 대표의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계정도 규탄 대회 일정을 알리며 "내일, 국회로 모여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겼어.
-지역구 의원들과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어. 금요일이면 지역 행사를 위해 지방 일정을 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동원령에 울며 겨자 먹기로 국회에 남아 있어야 했거든. 한 민주당 관계자는 "아직 날도 춥고 오전 일정을 미뤄두고 규탄 대회에 참석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라며 불만을 표출했어.
-체포동의안 가부를 두고 민주당이 당론으로 정할지, 자유 투표를 진행할지는 다음 주 의원총회 이후로 결정 날 것으로 보여. 지금으로선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한 번 더 총의를 모을 것 같네.
◆여야 원내대표 연설의 유일한 한목소리 '네 탓'
-이번 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각각 13일과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했어. 서로 '네 탓'만 했다지?
-맞아. 먼저 박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어. 또 민주당이 제안한 30조 원 긴급 민생 프로젝트를 신속하게 검토해달라고 주문했어.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두고 야당 탄압과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면서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에 관한 '특검'을 관철하겠다고 압박했어.
-여당도 마찬가지였어. 주 원내대표 연설의 핵심 키워드는 '내로남불'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이른바 조국 사태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여론 조작 사건 등을 거론하며 공정을 표방했던 문재인 정권의 부정을 거론했고,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등에 휩싸인 이 대표와 그를 비호하는 민주당이 정치 탄압으로 규정한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서로 반발했겠네.
-물론(?)이지. 박 원내대표와 주 원내대표가 연설할 때, 상대 당 진영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어. 같은 소속 의원들은 동지애를 발휘해 "옳소"라며 힘을 실어줬지. 흥미로운 장면도 연출됐어. 주 원내대표는 연설 도중 언성을 높인 김경협 민주당 의원의 실명을 언급하며 "잘 들어봐 달라"고 부탁했어. 자당 의원들을 향해선 "박수치지 마시라"고 했어. 이례적인 장면이었어. 본회의장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보였어.
-공식 논평으로 2라운드가 벌어지기도 했어. 국민의힘(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에서 박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남 탓으로 시작해 남 탓으로 끝났다'고 총평했고, 그다음 날 민주당(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주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자가당착에 유체이탈'이라고 평가절하했어. 또 "정치의 신뢰 회복은 남 탓이 아닌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라고도 했어. 두 당이 서로 '남 탓'만 한다고 지적한 것이 유일한 한목소리였어.
-두 원내대표의 연설을 들은 취재진의 반응은 어땠어?
-몇몇 기자들의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도긴개긴'으로 정리할 수 있어. 한 기자는 "블랙코미디인 줄 알았다"며 "이 정도면 쌍방 폭행 수준"이라고 꼬집었어. 거대 양당이 서로 잘한 게 없다고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읽혀. 또 다른 기자는 "5류 정치 아닌가"라고 비꼬았어. "우리 정치가 여전히 4류임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주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을 인용한 것인데, 이 기자는 중의적 표현이라고 설명했어. 4류보다 낮은 5류인데, 한글로 '오류(誤謬)의 정치'도 된다고.(웃음)
◆"윤미향을 악마로 만든 검찰"...이재명 시작으로 민주당 '사과' 릴레이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윤미향 무소속 의원에게 잇따라 사과하고 있다고?
-윤 의원은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공금 횡령·배임 등의 혐의가 있다고 기소됐었는데 지난 10일 1심 재판에서 8개 혐의 중 '업무상 횡령'만 유죄로 인정돼 15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았어. 그래서 민주당 내에선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고, 검찰이 완패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어.
-특히 이 대표가 가장 먼저 공개 사과에 나섰어. 판결 직후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윤미향 의원을 악마로 만든 검찰'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하고 악마가 된 그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검찰과 가짜 뉴스에 똑같이 당하는 저조차 의심했으니"라며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 정신 바짝 차리겠습니다"라고 했어.
-이 대표는 원래 어떤 입장이었는데?
-2020년 5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는 윤 의원 논란에 대해 "분명히 하는 게 좋겠다.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그들의(윤미향, 정의연) 대의·헌신은 다 인정하되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은 '법과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고 했었어.
-이 대표뿐만이 아니었어. 민주당은 논란이 확산하자 약 4개월 만인 2020년 9월 윤 의원의 당직과 당원권을 모두 정지했어. 이후 2021년 6월에는 부동산 명의 신탁 의혹을 이유로 제명했어.
-그런데 이제는 절절한 사과문을 쓰고 있어. 김두관 의원은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조차 보수 언론의 윤미향 마녀사냥에 침묵했다. 부끄럽게도, 저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했어. 4선의 우원식 의원도 "전(全) 생애가 부정당하는 고통을 겪어왔을 윤 의원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면서 "당이 이제 윤 의원을 지켜줘야 한다"라고도 했어. 1심 판결이 있던 날 민주당 의원들이 모인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서도 위로와 사과의 뜻을 전하는 메시지가 다수 올라왔다고 해.
-당 지도부가 윤 의원 복당도 검토할까.
-그럴 기류는 아직 안 보여.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윤 의원실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후 복당 문제에 대해 "그런 얘기가 벌써 되나. 전혀 제가 당내에서 들은 바가 없다"고 일축했어. 이 대표 '사법 리스크' 대응으로 당이 어수선한 데다, 앞으로 2심, 3심도 남아 있으니 신중한 모습이야. 검찰은 곧바로 항소했어.
-단체 돈 1700만 원 횡령에 대한 혐의를 1심에서 인정한 점도 부담이겠지.
-아마도 그런 듯해. 국회 직원 익명 게시판 '여의도 대나무숲'에는 민주당 의원들의 사과가 부적절하다는 글도 올라왔어. 한 게시자는 "구속 면했다고 실실 쪼개는 정신상태가 경악스럽다. 더러운 잡범들이 개선장군이 되는 희한한 세상"이라고 지적했어. 또 다른 게시자는 "이걸 두고 무슨 완전무결한 사법 피해자인 양 우쭈쭈 해주는 거 진심 역겹다"고 했어. '위안부' 가족협의회 측도 지난 11일 입장문에서 "윤 의원은 피해자 어머니들의 후원금을 횡령한 것만으로도 도덕적으로 큰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비판했어.
-그런데 왜 굳이 이 시점에 민주당 인사들은 공개 사과한 걸까.
-검찰이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씌우는 마녀사냥을 자행하고 있다고 호소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해. 김두관 의원이 윤 의원 판결을 언급하면서 "정치 검찰의 이런 범죄행위는 지금, 이 대표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혀. 윤 의원 '무죄 판결'과 연계해 이 대표 수사에 대해서도 언론과 검찰 압박에 굴하지 않고 싸우자는 메시지를 지지층에 전달하려는 듯해.
-윤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에서 '일본의 강제동원 사죄와 전범기업 직접배상 이행을 촉구하는 의원 모임' 출범식에 참석했어.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의견에 반하는 굴욕적 '병존적 채무인수'가 아닌 진정으로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올바른 외교적 해법을 내놓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어. 윤 의원이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국회에 입성한 후에도 해법 논의는 제자리걸음이야. 1심 판결로 부담을 좀 덜어낸 윤 의원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지켜봐야겠어.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허주열 기자, 신진환 기자, 박숙현 기자, 조채은 기자, 김정수 기자, 조성은 기자, 송다영 기자
☞<하>편에 계속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