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난관에 봉착하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전 정부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현 정부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모두 문재인 정부 때문"이라고 전 정권 탓을 하다 보니 해명에 논리적 모순이 생기기도 합니다.
최근 일어난 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난방비 폭등'이 국민적 분노를 키울 때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KBS1TV '일요진단 라이브'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분을 제때 반영시키지 못한 것을 현재 국민이 느끼는 난방비 부담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설명했습니다.
이 수석은 '(책임론) 공방은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하고 있으니, 대통령실에선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것 같다'는 진행자 질문엔 "근본적으로는 석유나 가스와 같은 에너지의 가격 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길은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전'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게 저희들의 생각"이라며 "경제성, 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세 가지 측면에서 원전이 큰 역할을 해야 된다고 저희들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난방비 부담 상승은 우크라이나 전쟁(2022년 2월~현재) 등의 여파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고, 이에 따라 가스요금 인상 요인은 불가피했다는 게 지난달 26일 최상목 경제수석의 설명이었습니다. 당시 최 수석도 "각 나라들은 (가스) 요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밟아 왔는데,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이 좀 늦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전 정부 책임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최 수석이 지목한 요인인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현재 2019년 수준으로 돌아온 상태입니다. 인상 요인이 사라졌고, 지난해 가스비를 38%가량 인상한 만큼 시간이 지나면 한국가스공사의 손실은 점차 완화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지난해 3분기까지 1조3454억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증권가의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5226억 원으로 지난해 1조8680억 원가량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올해 2분기 이후 정부가 추가 요금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올해 가스공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더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국민 부담 증가를 이유로 2020년 8월 이후 도시가스 요금을 동결했다가 지난해 4월 요금을 인상했습니다. 이후 5월에 한 차례 더 요금을 올렸고,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7월과 10월에도 요금이 인상됐습니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은 완화되는 국면으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급등으로 국제적인 상황이 바뀐 만큼 진보·보수 어느 정권이었어도 요금은 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발표하면서 가구당 평균 가스요금은 '5400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겨울 한파가 예고돼 있었고, 2022년 네 차례에 걸쳐서 가스비가 38% 인상된 만큼 겨울철 가스를 많이 쓰면 요금 폭탄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은 '예고된 미래'였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요금 인상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식으로 국민이 안심해도 된다는 발표를 내놨고, 언론도 별다른 문제 인식을 갖지 않고 있다가 이번 겨울에 한 번에 누적된 난방비 요금 폭탄 문제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 수석이 난방비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원전 강화를 언급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난방비 폭등 문제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연결해 비판하기 위한 의도로 보이는데,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전 세계적인 추세인 탄소중립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도 않았습니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원전 가동률은 85.9%였는데, 2022년 원전 가동률(81.1%)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북한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했을 때도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지난 수년간 우리 군의 대비 태세와 훈련이 대단히 부족했음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2017년부터 UAV 드론(무인기)에 대한 대응 노력과 훈련, 전력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고, 훈련은 전무했다"고 문재인 정부 탓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을 감시 정찰할 드론부대 창설을 계획하고 있다. (북 무인기) 사건을 계기로 드론부대 설치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창설한다는 드론부대는 2018년 이미 창설이 됐고, 2019년 이스라엘로부터 무인기를 탐지할 2차 감시 레이더 도입 및 자체 개발 국지방공레이더 전력화 등도 이뤄졌습니다. 이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대통령의 훈련이 전무했다'는 발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적 상황을 상정한 실질 훈련이 취약했다는 점, 특히 합동참모본부 주도 하에 모든 자산을 통합해서 운영하는 훈련이 없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런 부분이 부족했다면 윤석열 정부 출범 8개월이 지나는 동안 보강을 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문제가 생기니 지난 8개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들의 문제는 숨기고, 전 정부 탓만 하고 있는 셈입니다.
심지어 지난해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두고도 문재인 정부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국민의힘에서 나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스템을 만들겠다더니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다. 이 사고 자체는 일단 문재인 정권에 책임이 있다"(정미경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는 황당한 남 탓까지 나왔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이제 더 이상은 국제 상황에 대한 핑계나 또 전 정권에서 잘못한 것을 물려받았다는 핑계도 더 이상은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국민들께 국민의힘과 우리 정부가 정말 유능하고 국민들의 가려운 곳, 국민들의 어려운 부분들을 제대로 긁어드리고, 제대로 고쳐드릴 수 있는 그런 유능한 정당과 정부라고 하는 것을 제대로 보여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단합의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전 정권 탓을 하지 말자'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6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문제가 생기면 '전 정권 탓'이라는 변명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부정 평가'가 50%가 넘고, '긍정 평가'는 30%대에 굳어진 것은 기본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통령이 언급한 남 탓을 하지 않는 능력 있는 정부의 모습은 언제 볼 수 있는 것일까요.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시간만 지난다면 국민들의 시선은 더 싸늘해질 것이 자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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