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정치부는 여의도 정가, 대통령실을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주간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방담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로 정리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투쟁의 연속이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른바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 경쟁이 치열하다. 유력 당권주자로 꼽히는 안철수 의원을 겨냥한 친윤계의 공세가 매섭다. 당 안팎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지나친 '윤심 몰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윤심'을 등에 업은 김기현 의원은 '꽃다발 논란'으로 거짓말쟁이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최근 '식사 정치'를 이어가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던 김 여사가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에 최근 대선 당시 논란이 됐던 역술인 천공이 윤 대통령 부부의 대통령 관저 이전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대통령실은 해당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민주당 등 야권은 진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은 투쟁 모드로 돌입한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제도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을 벼르고 있다. 민주당이 막판 숙고하는 상황이지만,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 '비이재명계(비명)' 의원들이 주축이 된 모임으로 알려진 '민주당의 길'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김건희 여사, '관저 식사 정치' 가속화…'외부 행사' 참여도 활발
-김건희 여사의 '대통령 관저 식사 정치'가 이번 주 주목받았어. 지난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조용한 내조'는 유명무실해졌고, 적극적인 영부인 활동을 하기로 한 거야?
-김 여사는 지난 2일 국무위원 배우자 20여 명을 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고, 그 전날엔 대통령실 선임행정관급 이하 직원 30여 명을 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했어. 1월 27일, 30일엔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을 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지. 최근 일주일 사이에 네 차례 여사 주재로 관저에서 오찬이 열렸어.
-대통령 부인이 주관한 이런 '관저 식사 정치'는 이례적이야. 이와 별개로 김 여사는 이번 주 디자인계 신년 인사회 단독 참석(1월 31일), 윤 대통령과 동반으로 여러 건의 공식 일정을 소화했어.
-이에 지난달 31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와 출입기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한 기자가 '여사의 행보가 앞으로 확대되는 것으로 보면 되냐'는 질문에 "김 여사는 우리 사회의 약자, 어려운 분들, 대통령께서 함께 다 하지 못하는 행사와 격려의 자리를 하는 거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도 공개 행보가 늘어날 것을 시사했어. 다만 이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 폐지한 제2부속실 설치에 대해선 "전해 들은 바 없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어.
-그런데 이번 주 김 여사가 만난 이들 중에선 대통령실 관계자가 설명한 것처럼 사회의 약자나 어려운 분들은 없네? 대통령이 함께하지 못하는 행사와 격려의 자리는 될 수 있겠지만 말이야. 대통령의 부인이 관저에 누군가를 불러 오찬을 함께하고, 외부 행사에 다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본인이 한 약속도 있는 만큼 이런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아. 특히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 여사가 국민의힘의 여성 의원들을 관저로 초청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많았어. 가뜩이나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당무 불개입' 원칙을 어기고 사실상 특정 후보를 전방위로 지지한다는 이야기도 회자되던 차에 여사까지 가세한 셈이 됐기 때문이지.
-김 여사 최근 오찬을 함께한 대상자들 자체에 대한 지적도 나와. 의원들, 국무위원 배우자 등을 만나기 전에 진정한 사회적 약자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 등을 먼저 만났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야.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의 가족에 불과하다"며 "집권하면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을 폐지하고, 영부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고 했어. 윤 대통령의 이 발언 중에서 지금 지켜지고 있는 건 사실상 '제2부속실 폐지' 정도야.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등을 제기하면 대통령실이 나서서 "국익을 훼손한다"며 고발하고, 김 여사는 최근 영부인으로서 활발한 공식 행보를 펼치고 있지.
-김 여사가 여당 여성의원들, 대통령실 직원들, 국무위원 배우자 등과 식사를 하는 모습에서 '부창부수'(남편이 노래부르면 아내가 따른다는 뜻으로 부부 간의 정이 깊고 화목한 것을 일컫는 말)라는 말이 떠올랐어. 윤 대통령도 관저로 주요 인사들과 비공개 오찬이나 만찬을 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야. 김 여사의 식사 정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아. 김 여사의 최근 광폭 행보에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과거 발언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인데, 이런 부분은 당사자나 대통령실이 깔끔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여.
◆역술인 천공 관저 개입 의혹 일파만파…대통령실 "모독이자 악의적 프레임"
-윤 대통령 부부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역술인 천공의 관저 개입 의혹이 제기됐다고?
-맞아. 지난 2일 뉴스토마토는 "윤 대통령의 관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천공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어.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은 이 매체에 "남영신 전 육군 참모총장이 (현역이었던) 3월께 천공과 김 경호처장이 참모총장 공관과 서울사무소를 사전 답사했다는 보고를 공관 관리관으로부터 받았다고 이야기했다"고 주장했지. 다만 남 전 총장은 해당 매체에 "소설 그만 쓰고, 그만 물어보시라"며 "저는 잘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경호처도 "가짜 뉴스고, 따로 말씀드릴 게 없다"고 일축했어.
-대통령실 반응은 어때?
-대통령경호처는 일부 언론과 더불어민주당의 의혹 제기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2일 반박했어. 경호처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공지에서 "천공이 한남동 공관을 방문했다는 의혹 제기와 관련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려드린다"며 "김용현 경호처장은 천공과 일면식도 없으며, 천공이 한남동 공관을 둘러본 사실도 전혀 없음을 거듭 밝힌다"고 반박했어. 그러면서 "사실과 다른 '전언'을 토대로, 민주당이 앞장서 '가짜 뉴스'를 확산하는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지.
-민주당에서는 천공이 방문했다고 알려진 날의 CCTV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고?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은 "무엇보다도 대통령 부부와 특수 관계로 보이는 천공의 당시 행적을, 알리바이를 조사해서 공개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며 "고소와 고발로 진실을 덮으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라며 CCTV 공개를 요구했어. 그러자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CCTV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응답을 하지 않은 채 "또 지난 역술인 의혹까지 들고나왔다.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 시즌2'라도 시작하려는 건가"라고 반박했지. 민주당은 이번 천공의 관저 개입 의혹 규명을 위해 국회 운영위원회, 국방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밝혔지만, 상임위 개최 권한을 지닌 위원장이 모두 국민의힘 의원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천공 파문이 확산하자 대통령실도 추가 대응에 나섰다고?
-대통령실은 3일 "대통령실 및 관저 이전은 국민과의 약속인 대선 공약을 이행한 것으로, 수많은 공무원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실행한 것"이라며 "'역술인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였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가짜 의혹을 제기한 것은 공무원들과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악의적 프레임"이라며 "'천공이 왔다고 들은 것을 들은 것을 들었다'는 식의 '떠도는 풍문' 수준의 천공 의혹을 책으로 발간한 전직 국방부 직원과 객관적인 추가 사실 확인도 없이 이를 최초 보도한 두 매체(뉴스토마토·한국일보) 기자들을 형사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어.
-대통령실이 강경 대응에 나섰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또다시 불거진 무속인 논란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야. 민주당에서는 한동안 이 사안을 집요하게 따질 것으로 전망돼. 정치권에 다시 한번 무속인을 둘러싼 정쟁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어.
-민주당의 주장의 허위라면 CCTV를 공개해서 소모적 정쟁을 막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텐데. CCTV 안에 보안사항이 있다면 국방위에서 비공개로 해도 될텐데 말이야. 하여튼 참 바람 잘 날이 없네.
◆'비명계' 토론회 참석한 이재명...체포동의안 내부 단속?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의 길' 토론회에 참석했다고? 비명계(非이재명) 모임이라 주목받은 거지?
-맞아. 당대표가 자당 의원들 토론회나 세미나에 가서 축사하는 건 통상 있는 일이야. 다만 '민주당의 길'은 '비이재명계(비명)' 의원들이 주축이 된 모임이라고 알려져 있어. 이들 중 일부는 사법 리스크 분리를 위해 이 대표 퇴진론도 요구하고 있지. 원래 정권창출 실패와 지방선거 패배 원인을 분석하고 논의했던 '반성과 혁신' 모임이 확대 개편된 것이기도 해. 그래서 이번 토론회 참석은 이 대표 입장에선 '적진'으로 들어간 셈이야(웃음).
-분위기가 어색하진 않았어?
-우선 취재진 관심이 뜨거웠어. 저번 '반성과 혁신' 토론회에 갔을 땐 취재진이 거의 안 보였는데, 이번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어. 모임 소속 의원들도 하나둘 등장했는데 '이낙연계'로 분류되는 윤영찬 의원이 가장 먼저 도착했어. 뒤이어 이원욱 의원이 등장했는데, 언론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무서워서 들어가질 못하겠네"라고 농담을 건네면서 취재진에게 인사하더라고. 또 서로 앞쪽 자리에 앉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였어. 이 대표와 나란히 사진이나 영상이 찍히는 게 부담스러운 듯했어.
-이 대표는 토론회 시작 시각에 딱 맞춰 행사장에 도착했어.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인사했는데, 확실히 어색한 서로 분위기가 옆에서 지켜보는 취재진에게까지 느껴졌어. 이 대표 오른편에 김종민 의원이 앉았는데 간격이 너무 떨어져 있더라고.
-토론회 참석은 이 대표가 먼저 제안했다고?
-정확히 말하면 절반만 맞아. 이원욱 의원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의원총회에서 김종민 의원이 이 대표에게 모임 참석을 제안했는데, 마침 이 대표 측도 축사하겠다고 주최 측에 전달했다고 해.
-텔레파시가 통한 건가(웃음).
-다만 세부 일정은 조율을 안 한 것 같아. 이 대표 측은 1차 토론회가 아니라 출범식인 줄 알았다고 해. 그래서 취재진에게 보낸 공지도 처음에는 '출범식'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수정됐어. 서로 그만큼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다는 걸 보여주는 거 같아.
-미묘한 기 싸움도 느껴졌어. 이 의원은 "원래는 오늘 완전히 비공개였다"면서 "당대표가 왔는데 일정까지 오늘 공개했더라. 그런데 모든 걸 비공개로 하면 당대표님의 (체면을) 너무 깎아내리는 거 아니냐 그런 것 때문에 이 자리는 공개를 갑자기 하게 됐다"고 했어. 이 대표 역시 "저는 민주당의 길이라는 모임을 창립하신 것으로 알고 창립을 축하하러 왔는데 모임은 아니고 토론이라고 하니까 약간 좀 당황스럽기는 하다"고 했어.
-'원조 친문' 홍영표 의원은 의미심장한 말도 했던데?
-맞아. 홍 의원은 "지금만큼 당이 안정돼있고 단결돼 있는 때가 없었다. 과거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당이 굉장히 갈등과 대립 혼란 속에 있었는데 참 이게 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심화하는 가운데 당 지도부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강조하고 소수 의견은 위축되게 만드는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됐어. 홍 의원은 간담회 후 취재진과 만나 "당이 단일한 목소리로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것이 좋아 보일 수 있다"면서도 "지금 상황을 다르게 판단하고 있고 다른 모색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했어.
-'민주당의 길' 측은 비명계 모임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어. 김종민 의원은 "이건 비전 모임이다. 딱 한 글자 틀린데 엄청나게 다른 것"이라며 취재진에게 앞으로 비전모임이라고 써달라고 당부했어.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이 떠오르더라고(웃음). 이 대표도 '이번 참석은 비명계에 손을 내민 것이냐'라는 물음에 "비명계가 아니라는데요?"라며 질문을 웃어넘겼어.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도 이번 일정을 생중계했는데, 이를 본 지지자들은 대체로 이 대표가 조직 보스처럼 비명계들을 제압했다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어.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으로 비명계를 가리키는 은어)의 길"이라거나 "낙천 리스트"라며 모임 참여자 명단을 공유하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어.
-이 대표가 토론회에 참석한 건 내부 단속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조만간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보이는데,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려면 민주당과 정의당, 무소속 의원 중 35명이 이탈하면 가능해. 당 지도부에서도 "부결을 단언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비명계를 달래고 끌어안는 모습이 필요해 보이긴 해. 또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당원 평가'를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물론 당은 "전혀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도 내부 단속 차원이 아닌가 싶어. 비명계는 장외투쟁 등 당의 강경 노선에 대해서도 최근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 사실상 '열쇠'를 쥔 비명계에 이 대표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 주목돼.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허주열 기자, 신진환 기자, 박숙현 기자, 김정수 기자, 조성은 기자, 송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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