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6박 8일간의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을 마치고 21일 귀국했다. 출국 전부터 '경제 외교'에 방점을 찍고 떠난 이번 순방에서 윤 대통령은 UAE로부터 300억 달러(약 37조 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양국 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시켰다.
스위스에서도 글로벌 기업 CEO들을 만나 한국의 투자 환경과 기술 경쟁력을 소개하며 협력 방안을 강구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포럼) 특별연설을 통해 글로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과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만 UAE 아크부대에서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 논란, UAE 국가 연주 때 김건희 여사와 함께 유이하게 가슴에 손을 얹는 이른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 외교 의전에 실수가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UAE서 300억 달러 투자 유치…"UAE 적은 이란" 논란
윤 대통령은 집권 2년 차 첫 순방지로 UAE 국빈 방문을 선택했다. 1980년 양국 수교 이래 국빈으로 정상이 상대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순방 전 브리핑에서 "UAE를 선택한 것은 우리 외교의 초점을 경제 활성화와 수출 확대에 맞추고자 하는 윤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며 "이번 방문을 통해 형제의 나라인 UAE와 전략적 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다수의 MOU 체결을 통해 한·UAE 간 협력의 폭과 깊이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실제 UAE는 3박 4일간 최고의 예우로 윤 대통령 부부를 맞이했다. 윤 대통령 부부가 탑승한 대통령전용기가 UAE 영공을 진입할 때 UAE 전투기 4대가 에스코트했고, 국빈의 격식에 맞게 의전, 경호 인력, 차량(공식수행원에게 현대 제네시스 G90 차량 신규 구입해 의전 차량으로 제공)을 지원했다. 또한 UAE 영빈호텔인 에미리트 팰리스 호텔에 다수의 숙소 제공했으며, 대통령 공식행사궁인 알와탄궁 중 메인 궁궐에서 윤 대통령 부부 초청 행사를 개최했다.
양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UAE 국부펀드는 300억 달러를 우리나라에 투자하기로 했고, 양국 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심화·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특히 양 정상은 전통적 에너지 및 청정에너지, 평화적 원자력에너지, 경제와 투자, 국방·국방기술 등 4대 핵심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이 밖에 우주, 신산업, 문화 등 양국 공동의 관심 분야에 있어서의 협력도 더욱 증진해 나가기로 했다.
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UAE 비즈니스 포럼'에선 한국 기업들이 UAE 바이어들과 최소 61억 달러(약 7조5400억 원) 규모의 양해각서(23건)와 계약(1건)이 체결됐다. 에너지, 방산 등 전통적인 협력 분야와 함께 수소 생산 및 활용, 바이오, 디지털전환, 메타버스 등 신산업 분야에서도 MOU가 체결돼 한·UAE 간 경제 협력이 고도화 및 다변화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게 정부의 자평이다.
이와 관련 김성한 안보실장은 16일 현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UAE 방문에서 에너지, 원자력, 투자, 방산과 같은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의 핵심 분야를 넘어서 수소, 우주,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산업 분야를 포괄하여 정상 임석 하에 체결된 MOU 13건을 포함, 50건에 가까운 약정과 계약이 체결되어서 양국 간 미래 협력의 틀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후엔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기업인 130여 명과 만찬 간담회를 갖고 "저는 대한민국의 영업사원이다. 공직에 있다는 생각보단 기업 영업부서나 기획부서의 직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임하고 있다"며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라는 각오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경제 중심 국정운영을 강조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늘 도전과 투지로 기업을 키워온 여러분들께서 공무원들을 좀 많이 가르쳐 주시고, 공무원들을 상대하실 때 '갑질이다' 싶은 사안은 제게 직접 전화해 달라"며 "여기 우리 용산에도 알려주시면 저희가 즉각 조치하겠다"고 기업 중심의 국정운영도 예고했다.
윤 대통령 17일 아부다비에서 두바이로 이동해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 UAE 부통령 겸 총리(두바이 통치자)와 면담을 갖고 "그간 한국 기업이 두바이의 건설, 인프라 사업에 적극 참여해 두바이의 발전에 기여해온 만큼 앞으로도 두바이의 주요 경제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모하메드 부통령 겸 총리가 관심을 갖고 지원해 달라"고 세일즈 외교를 이어갔다.
두바이 통치자와의 면담을 마지막으로 UAE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 대통령은 스위스 취리히로 이동하기 전 페이스북을 통해 "UAE에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과 UAE 국민들의 따듯한 환대를 받았다"며 "영원히 잊지 않고 신뢰와 신의로 보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양국의 투자와 산업 역량은 서로 시너지를 이루어 세계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우리의 협력에는 한계가 없고, 우정의 지평은 더 넓어질 것이다. 정부는 실질적인 성과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9년 만의 다보스포럼 특별연설…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도
윤 대통령은 스위스 순방에선 '동포간담회', '글로벌 CEO와 오찬', '베스타스 투자신고식', '한국의 밤', '다보스포럼 특별연설', '취리히 연방공대 방문 및 석학과의 대화' 등 6건의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UAE 순방과 마찬가지로 '경제 외교'에 방점이 찍혔으며,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에도 공을 들였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CEO와의 오찬에서 "저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며 "오늘 여러분을 이렇게 뵙게 돼서 제 개인적으로는 아주 큰 영광이고, 앞으로 한국 시장도 열려 있고, 제 사무실도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 주시기를 부탁드리겠다"고 말했다.
19일 다보스포럼 특별연설에선 글로벌 리더들을 대상으로 범세계적인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선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다보스포럼에서 대면 특별연설을 한 것은 이명박(2010년)·박근혜(2014년) 전 대통령에 이어 9년 만이다.
마지막 일정인 취리히 연방공대 방문에선 양자 분야 석학과 간담회를 갖고 한·스위스 수교 60주년을 맞는 올해를 양자 과학기술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보다 많은 국내 연구자를 양성하고, 스위스와 같은 선도국가와 연구 및 인적 교류 등 국제 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이번 순방 일정을 마친 후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스위스 현지 브리핑에서 "이번 순방은 정부와 민간이 원팀으로 함께 협업해 수출 계약, MOU 체결, 투자 유치 등 많은 성과를 창출했다"며 "정부는 원스톱 수출, 수주지원단, 투자 협력 포럼을 통해 순방 성과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밀한 후속 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尹 돌발 발언에 대통령실·외교부 수습 '진땀'
논란의 장면도 있었다. 먼저 윤 대통령이 15일 UAE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방문, 장병들과의 간담회에서 "형제국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다.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언급한 게 국내외에서 파장이 일었다.
UAE와 이란은 역사적으로 영유권 분쟁을 겪은 사이이지만, 1972년 외교 관계를 맺은 후 51년간 외교·경제·문화적 교류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북한의 상황과는 다르다.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충돌 때 UAE가 사우디의 편을 들면서,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기존 대사급에서 대리 대사(공사)급으로 격하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8월 대사급 외교도 재개했다.
또한 우리나라와 이란은 1962년 수교를 맺은 이후 문화·경제 교류를 지속한 '우호국' 사이로, 불필요하게 이란을 자극하는 발언을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장 이란 정부는 "한국 대통령의 간섭 발언은 이란과 UAE를 포함한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의 역사적이고 우호적 관계와 이들 사이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긍정적인 발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의 '비외교적' 발언을 심각하게 지켜보고 검토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답변을 기다린다"고 했다.
이후 양국 외교부가 자국에 거주하는 상대국 대사를 '맞초치' 하는 일도 발생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취지의 발언"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은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가 UAE 국빈 방문 중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이 주최한 공식 환영식에서 '실수' 또는 '과한 존중'의 경례를 한 것도 논란이 됐다. 애국가가 연주될 때 김건희 여사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 대목이 연주될 때에야 가슴에 손을 올렸고, 윤 대통령은 우리 애국가 연주가 끝나고, UAE 국가가 연주될 때 동석한 참모들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일제히 손을 내린 것과 달리 끝까지 가슴에 손을 올린 동작을 유지했다.
UAE의 경우 국가 정상 환영 행사와 같은 국가적 의례에서 자국 국가가 연주될 때 대통령과 참모들이 별도의 경례를 하지 않는다. UAE 대통령과 참모도 하지 않는 UAE 국가에 대한 경례를 윤 대통령이 한 것이다. 애국가가 나올 때 뒤늦게 경례를 했던 김 여사는 UAE 국가 연주 초반 때까지 자세를 유지하다가, 중간에 손을 내렸다.
앞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때는 미국 국가가 흘러나올 때, 9월 캐나다 순방 때는 오타와 전쟁기념비 참배 일정을 소화하면서 캐나다 국가가 나올 때 경례를 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경례가 '상대국에 대한 존중'을 표시한 것으로 의전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의전비서관을 지낸 탁현민 전 비서관은 16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 방한 환영식에서 미국 국가가 나올 때 가슴에 손을 얹는 실수를 했는데, 용산 (대통령실에선) 미국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얹은 것이라고 발표해 해 버리니 그다음부터는 손을 안 올릴 수가 없게 됐다"며 "전 세계 국빈 환영식 중에 상대 국가에 손을 올린 유일한 정상이 되어 있는 것이고, UAE에서 그 모습을 연출했다"고 지적했다.
탁 전 비서관은 이어 "UAE는 국가 의전 관례상 (국가에) 손을 올리지 않는 나라"라며 "윤 대통령은 UAE 국가가 연주될 때 유일하게 손을 올린 정상이고, 그 옆에 김건희 여사는 또 (우리나라) 애국가가 올릴 때 손을 늦게 올린다거나 이런 자잘한 실수를 했다"고 꼬집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상대국 국가 정상을 만났을 때 일관되게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첫 국빈으로 지난달 초 베트남 응우옌 쑤언 푹 국가주석이 국빈 방한했을 때는 환영식에서 상대국 국가가 나올 때 경례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의 해명대로면, 일관되지 않은 윤 대통령의 경례는 베트남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취지로도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어서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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