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를 고심 중인 나경원 전 의원에게 대형 변수가 터졌다. 대통령실이 나 전 의원을 '해임'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임을 거듭 확인했기 때문이다. '친윤' 주자임을 자임하는 나 전 의원은 공식 출마를 선언하기 전부터 악재를 만난 셈이다. 차기 당권을 거머쥐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꼽히는 이른바 '윤심'에서 멀어지게 된 모양새다. 나 전 의원의 당권 행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전당대회 출마를 숙고 중인 나 전 의원은 최근 부쩍 '윤심'에 공을 들이고 있다. 17일 대구 동화사와 지난 13일 충북 단양군에 있는 구인사를 방문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방문했던 사찰들이다. 3·8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 대표가 당원투표 100% 방식으로 선출되는 것을 의식해 자신이 '친윤'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당심'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윤 대통령이 자신의 공직(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기후대사)에 대해 '해임'한 것을 두고도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출산 시 대출 탕감' 정책을 두고 일부 대통령실 참모, 친윤계 진영과 충돌한 여파로 자신의 진의가 왜곡됐다는 견해도 내비쳤다. 이 역시 당원 표심을 고려한 것으로 읽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나 전 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출입기자단 공지에서 "먼저 대통령께서는 누구보다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대통령께서는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서 공적 의사결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나 전 의원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며 "국익을 위해 분초를 아껴가며 경제외교 활동을 하고 계시는 대통령께서 나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직격했다.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에 대해 강하게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사실상 '반윤' 낙인을 찍은 셈이다.
이에 따라 나 전 의원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당 안팎에서 불출마 압박이 거세다. 국민의힘 초선의원 40여 명은 입장문을 내고 나 전 의원을 향해 윤 대통령에 대한 공식 사과를 촉구하면서 "대통령을 흔들고 당내 분란을 더 이상 야기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당과 대통령을 분열시키는 잘못된 길로 가지 말아 달라"고 했다.
친윤계의 지원을 받는 당권주자 김기현 의원도 "대통령께서 먼 나라까지 가셔서 세일즈 외교를 펼치시는데, 국내에서 대통령의 해임 결정의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왜곡·해석한다면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페이스북에 "아직 임기가 4년도 더 남은 대통령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이제 그만 자중하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과 당내에서 거듭된 압박에 나 전 의원은 고심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당대표 선호도 조사에서 단독 선두를 달렸지만, 최근 김기현·안철수 의원과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다. 나 전 의원은 동화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만간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윤 대통령의 의중이 선명해지면서 변동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나 전 의원 측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이 불출마로 선회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언근 부경대 전 초빙교수는 통화에서 "나 전 의원은 정치 활동을 하면서 주류 쪽에 가까운 성향을 보여 왔다는 점과 현재 상황을 볼 때 출마하기가 어려워졌다"면서 "부당하다 싶은 것들을 맞받아치며 해쳐나가는 당위성과 현실론이 부딪히는데, 불출마 가능성이 약간 더 우세하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이 전 교수는 대통령실과 당내에서의 불출마 압박에 대해 "나 전 의원을 주저앉히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모습으로 국민 눈에 비칠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소폭 떨어질 수 있고, 나 전 의원이 출마한다면 자기 또는 안 의원이 반작용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