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안녕합니까. 계묘년 새해가 되니 날이 좀 풀리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서 전하고 싶은 소식이 있어 이렇게 글 남깁니다.
정치 개혁. 1월부터 뜨겁습니다.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그래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윤석열 대통령)
"내년 총선을 진영정치, 팬덤정치를 종식하는 일대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3월 안에 선거법 개정을 끝내자."(김진표 국회의장)
"이미 수명을 다한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책임 정치의 실현과 국정의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다양한 민주적 공론을 모아 법정시한 내에 반드시 선거법을 개혁하고, 여야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대한민국과 국민의 이해관계를 만들어 내는 진정한 정치개혁을 이뤄내자."(여야 중진 의원 모임)
아래에서 외칠 때는 잠잠하더니 의전서열 1위의 '중대선거구제 검토' 발언에 의전서열 2위, 제1야당 대표, 여야 중진 의원들이 이에 질세라 '정치개혁'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모두 참여하는 국회 전원위원회 토론에서 선거제 개혁안을 심의하자는 방법론부터, 권역별 비례대표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로드맵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저 역시 '더 이상 승자독식 정치, 지역주의, 진영 간 극단 대결의 정치를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때보다 뚜렷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대하는 만큼 실망도 클까 걱정됩니다. 벌써 조짐이 보입니다. 정치 원로들은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실현 불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습니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다선 의원이 수명 연장하려는 수단으로 선거 때마다 나오는 것", "정치개혁이 아니고 정치를 낙후시키려는 것이고 실제로 실현도 안 된다"는 말까지 하며 반대합니다. 1명을 뽑다가 지역구를 넓히고 2~5명을 뽑으면 신인 진출이 더 어려워지고 선거비용도 더 많아진다는 게 이유입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때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국회의원 선거는 또 다른 문제인가 봅니다. 내년 총선 셈법이 깔린 정략적 판단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현재 121석의 서울·수도권은 민주당이 100석, 국민의힘이 19석입니다. 득표 순서대로 각 정당이 의석을 가져가는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지난 선거 때처럼 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수를 얻을 순 없게 되겠지요.
여당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입니다. 국민의힘은 "'당내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 외에 별 움직임이 없습니다. 이럴 때 대통령이 한 번 더 목소리를 내주면 좋으련만 잠잠하네요. 야당의 비판대로 "집권 2년차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한번 던져 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하긴 당장 3월 당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권력투쟁이 한창인데 1년 뒤 선거, 그것도 '밥그릇 내놓자'는 주장에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겠습니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생대책위원장은 "(중대선거구제는) 지금 현역 의원들이 선거구가 줄어드는 것에 결사반대를 하기 때문에 성공하기는 굉장히 힘들 것이다. 초선이랑 재선 의원들은 자기 선거구가 없어지니까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1월 임시국회 소집도 합의하지 못하는 판국에 여야가 복잡한 '정치개혁'에 머리를 맞댈지도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들에게 "지금껏 뭐하고 이제와서 '정치개혁'을 줄줄이 이야기하냐"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정치적 득실만 따지는 게 아니라고 굳게 믿고 싶습니다. 정치개혁을 염원해온 많은 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인연이 닿은 봉한나 민주당 그린벨트(청년출마자연대) 공동위원장에게 물었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개혁, 이번엔 기대해도 될까요?"
"아주 기대감이 있습니다. 원래 문제가 1차 방정식이면 무너지는 확률도 높거든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야 오히려 쉽게 좌절되지 않는 것 같아요.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여소야대) 구조가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민주당에선 전통적으로 약세인 지역에서 좀 더 얻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계산이 있을 수 있어요. 그에 맞춰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들이 등장할 준비가 돼 있는 상황입니다. 이 동력들이 어디든 연쇄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중대선거구제에 대해서도 정치권 어르신들의 우려와 달리 환영했습니다. 그는 "현재 우리가 처한 정치권 상황은 '중진 의원을 이길 수 있냐'가 아니라 '총선이라는 경쟁 판에 들어갈 순 있나' 하는 수준의 논의입니다. (현재로선) 인지도를 쌓고 정치력을 기르고 경쟁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 자체가 힘듭니다. '인지도와 돈'은 오히려 2순위, 3순위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비례대표제 확대' 방안은 "신인 정치인들에게 가슴 뛰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비례대표는 당에서 선발 과정을 어떻게 하느냐로 결정되기 때문에 공천받기 위해 국민이 바라는 문제 해결에 도전하기보다 지역 행사나 집회에 모습을 더 드러내게 된다는 겁니다.
정치라면 진절머리가 난다고 하는 이가 많지만 우리는 정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배제와 혐오가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정치개혁'의 동력이 가장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개혁은 곧 민생개혁일 수 있습니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권력다툼이 아니라 국민이 먹고사는 민생문제 해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정치개혁'의 실타래를 푸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기득권 포기'라는 원칙으로 단칼에 잘라내는 겁니다. '중대선거구제'든 '권역별 비래대표제'든 가장 중요한 건 국민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느냐 입니다. 정치권의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정치개혁. 이번엔 정말 기대해도 되겠지요? 부디 많이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