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소환 조사는 정치 검찰이 파놓은 함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권을 바란 바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고, 피할 이유도 없으니 당당하게 맞서겠습니다."(2023년 1월 10일 이재명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성남지청 앞 포토라인 앞에 섰다. 헌정사상 최초의 제1야당 대표 검찰 출석에 정치권 이목이 쏠렸다. 민주당 지도부와 친이재명(친명)계는 '윤석열 검찰의 야당 탄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 소환에 응한 것은 오히려 사법 리스크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라는 입장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엄호에 "이 대표는 일개 연쇄범죄 혐의자일 뿐"이라고 공세를 퍼부었다. 당내에선 검찰의 과도한 표적 수사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방탄 프레임에 갇혔다"는 우려가 표출되고 있다. 향후 이 대표에 대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나 체포동의안 국회 제출 등 구체적인 사법 조치가 나올 경우 적극적인 출구 전략이 없다면 '당 대표 퇴진론'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취임 135일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혐의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이날 오전 10시 30분께 성남지청에 출석한 것이다. 이 대표의 소환 조사는 정치권에선 오래전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성남FC 후원금' 사건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2014~2018년 두산건설, 네이버 등 6개 기업들로부터 부지 용도 변경, 용적률 상향 등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이 대표가 구단주로 있는 성남FC에 180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내게 했다는 의혹이다. 지난해 9월 관련자 기소 당시 공소장에 이 대표가 공모했다는 내용이 담긴 바 있다.
이 대표는 이날 검찰의 소환 조사를 두고 "무혐의 처분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서 없는 죄를 조작하는 사법 쿠데타"라며 '결백'을 호소했다. 성남FC가 기업들로 후원금을 받은 것은 '적극행정의 일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리 준비한 A4용지 8장 분량의 원고를 9분가량 읽으면서 발언 내내 검찰을 향해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검찰의 논리는 정적 제거 수사, 조작 수사, 표적 수사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면서 자신의 상황을 검찰 수사를 받았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빗대기도 했다. 최고위원들을 비롯한 당 지도부 등 30명이 넘는 민주당 의원들도 이 대표의 검찰 출석에 앞서 배웅하며 단일대오로 엄호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준비하는 미래 정당, 유능하고 강한 정당, 국민 속에서 혁신하는 민주당, 통합된 민주당을 만들겠습니다."(8·28 전당대회 당대표 수락연설문 中)
'유능한 정당'을 만들겠다던 약속과 달리 이 대표와 민주당은 여권의 '방탄 프레임' 공세에 갇힌 모양새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경제', '민생', '안보' 위기를 부르짖던 민주당이 성남지청 앞에 집결했다"며 "제1야당 대표라는 방탄으로 국회를 뒤흔들며 정부를 공격하고, 거대 의석이라는 무기로 자신에 대한 수사 방어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이 대표는 사법적 관점에서 '성남FC 비리', '대장동 비리', '변호사비 대납 비리' 혐의 등을 받는 '일개 연쇄범죄 혐의자'일 뿐"이라며 "거대 야당의 위세와 지지자들의 위력을 이재명 방탄에 쏟아부으면서 검찰 수사를 압박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민주당의 무도한 '범죄 방탄 정치', '범죄 비호 정치'는 국민적 심판이 뒤따를 것"이라고 공세를 퍼부었다.
당내에서도 '방탄 프레임'이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표출됐다. '소장파' 조응천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계양에 출마할 때부터 여당의 방탄 프레임이 작동이 되기 시작해 이제 1년이 다 돼 간다"며 "지금 임시국회를 열어도 방탄, 뭘 해도 방탄"이라고 했다. 실제 민주당은 단독으로 1월 임시국회를 소집한 뒤 안전운임제 등 일몰법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 종료에 따른 후속 조치, 북한 무인기 침범 관련 본회의 긴급현안질의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한 '방탄용'이라며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조응천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아무리 헛발질을 하고, 여당이 전당대회 앞두고 참 볼썽사나운 일을 해도 그 과실이 우리한테 돌아오지 않는 것은 방탄 프레임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방탄 프레임'은 정치권 시각일 뿐, 오히려 검찰의 강공 드라이브는 야권 내부 결속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민주당 입장에서 '방탄 프레임'이 곤혹스럽긴 하다. 이 대표는 부도덕하고 민주당은 뻔뻔하고 범죄자를 비호한다는 프레임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데, 야당 대표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판단할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에서도 총선이 걸려 있기 때문에 예전에는 '방탄' 때문에 손해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똘똘 뭉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렇게 강하게 밀어붙이는 데 대한 역풍이 분명 있을 것으로 본다. 오늘 포토라인을 보고 마음 바뀐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 구심력을 강화해주는 모양"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현재로선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대여 투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 측은 이번 검찰 출석에 따른 사법 리스크 우려를 잠재우는 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검찰 조사 다음 날인 11일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을 찾을 예정이다. 이어 12일엔 대표 취임 후 두 번째로 기자회견을 연다. 그동안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 관련 현안에 줄곧 침묵해왔다. 이날 회견에서는 검찰 출석 등에 대해 부당함을 지적하고 결백을 거듭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그칠 게 아니라 당 지도부가 보다 적극적인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성남FC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 소환 조사에 이어 구속영장 청구, 국회 체포동의안 제출이 자연스레 뒤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사건에 대해 검찰이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민주당은 169석 의석을 앞세워 부결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성남FC 사건' 외에도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 특혜 및 대선자금 수수 의혹, 쌍방울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에 연루돼 있다고 보고 집중 수사를 진행 중이다. 내년 4월 22대 총선에서 중도층을 겨냥해야 하는 상황에 '방탄 국회' 프레임에 대한 부담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조 의원은 이 대표 사법리스크를 바라보는 당내 분위기에 대해 "당내에서 '똘똘 뭉쳐야 한다' 혹은 '분리 대응해야 한다'고 명확히 자기 입장을 밝히는 사람은 소수"라며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명확한 증거가 나오거나 사법적인 절차가 획기적으로 진전이 될 때 그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고 전망했다.
정치권에선 당장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이 강해 야권발 정계개편을 예상하기 어렵지만, 검찰 수사 상황에 따라 '이재명 퇴진론'이 비명계 중심으로 다시 불거질 수도 있는 시나리오도 고개를 든다.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하거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극복하고 당을 뭉친다면 총선 승리를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지만 '방탄 프레임'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내부 균열로 당이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최근 이 대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친문' 정태호 의원을 민주연구원장에 임명한 것 역시 계파 갈등을 사전 봉쇄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라는 평가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 대응과 관련해 당과 개인 문제를 분리해 두 갈래로 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이날 라디오에서 "지금부터 철저하게 투트랙으로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고단한 삶을 사는 국민의 민생 문제를 어루만져주는 민주당, 개혁의 선봉에 서는, 혁신의 선봉에 서는 민주당이 돼서 개혁 어젠다와 혁신 어젠다를 선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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