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손과 발' 그리고 그림자인 보좌진. 이들에겐 의원 심기보좌도 하나의 업무다. 특히 보좌진의 임면권을 가진 의원은 이들에게 절대적이다. 면직예고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하루아침에 해임되는 일도 있었다. 별정직 공무원으로 근로기준법도 적용이 안 된다. <더팩트>는 법을 만드는 곳에서 일어나는 '법 밖의 노동'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전·현직 보좌직원들을 통해 국회 안에서 경험한 각종 '갑질' 이야기와 함께,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일해야 하는 보좌진들의 고충을 짚어보았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최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태원 참사 당시 닥터카에 탑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현장엔 신 의원의 수행비서관이 있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그는 자정이 넘은 시각 신 의원의 호출을 받고 택시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신 의원은 참사 현장에 15분 가량 머물고는 보건복지부 장관 차를 타고 상황실로 이동했다. 신 의원의 페이스북에 참사 현장에서 찍힌 6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새벽의 호출. 업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면서도 일각에서는 "(새벽에 부른 것 자체는) 아주 없는 일은 아니"라는 반응이 나왔다. 긴급한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다는 것. 참사는 1분1초가 귀한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신 의원 또한 '의사'로서 현장을 찾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앞뒤 상황은 의사가 아닌 국회의원으로서의 행보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의전이 주 업무인 국회의원의 수행비서관이 현장에서 어떤 구조활동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국회의원 보좌진의 업무 환경이 가혹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의원을 따라다녀야 하는 수행비서관만의 얘기가 아니다. 의원실 보좌진은 4급 보좌관 2명, 5급 선임비서관 2명, 6·7·8·9급 비서관 각 1명, 인턴 1명으로 최대 9명이다. 이들의 업무는 정무·정책·수행·홍보 등 의정활동 전반이다. 국회가 열리면 밤낮이 없어지고 새벽에 퇴근하는 일도 잦다. 국회의원의 동선, 질의 내용, 말 한마디 모두 그들의 손 끝에서 탄생한다. 의원의 소셜미디어를 관리하는 일도 보좌진의 역할이다.
#. 모 의원실의 전 보좌직원 A 씨는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씁쓸하다. 관심있는 사회분야의 정책을 만든다는 사명감과 기대감으로 온 국회였다. 그러나 A 씨의 역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A 씨는 "사적인 업무에 대동하는 일이 잦았다"며 "한번은 자녀가 분실한 택배를 찾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 다른 의원실의 전 보좌직원 B 씨도 비슷했다. B 씨는 "변덕이 심한 의원의 심기를 맞추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면으로 보고하지 말라고 해서 메신저로 보고했더니, 어느 날엔 '메신저 보고는 보고가 아니다'라고 면박을 줬다"며 "(의원이) 직접 잡은 일정을 직전에 취소해 난감했던 적도 잦았다"고 전했다.
일상생활이 의정활동과 밀접한 국회의원 특성상 보좌진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심기보좌'다. B 씨는 "(모시던 의원이) 새 보좌직원을 채용해야 할 때, '궁핍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면서 "보좌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의원이 그런 건 아니다. 모 의원실 현 보좌직원 C 씨는 "모든 의원이 그런 건 아니다. 보좌진을 잘 챙기고 배려하는 의원들도 있다"면서도 "보좌진의 노동환경은 전적으로 의원 개인에게 달린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힘들기로) 유명한 곳들이 있긴 하다. 보좌진이 자주 바뀌는 의원실은 요주의 대상"이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떠도는 이야기는 많다. C 씨는 "가장 많은 건 의정활동과 상관없는 개인적인 일에 보좌진을 동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C 씨는 "과거 모 의원이 보좌직원에게 반려견 먹이까지 챙기게 했다는 '썰'은 유명하다"며 "셔츠를 다림질해놓게 하거나 구두를 닦게 하는 의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배우자의 일정에 수행차량을 동원하거나, 가족행사에 보좌직원을 대동하는 일들은 종종 들린다. 의원의 연말정산을 보좌직원이 대신 처리한다는 일들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실 현 보좌직원인 D 씨는 "'아니다' 싶은 광경을 목격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 의원이 자기 의원실 인턴을 가리키며 '허드렛 일은 쟤 시켜라'라고 말해 놀란 적이 있다"며 "한번은 자전거 타고 가는 의원의 뒤를 쫓아 뛰어가는 보좌직원을 봤다. '저게 뭔가' 싶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예전보다는 나아진 것"이라는 씁쓸한 반응도 있었다. 모 의원실 현 보좌직원 E 씨는 "예전엔 보좌진의 월급 일부를 걷어 정치자금으로 쓰는 의원실도 종종 있었다"고 전했다.
전 보좌직원 F 씨는 "의원실은 9명으로 구성된 하나의 사무실"이라고 비유하며 "임면권이 전적으로 의원에게 있다는 점도 보좌직원을 취약하게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F 씨는 "선거철이면 원래 있던 보좌진을 면직시키고 지역 유지나 지역구 전·현직 기초 광역의원의 자녀를 임명하는 경우도 있다. 업무 능력과는 별개"라며 "그 보좌직원의 업무 능력이 떨어지면 그가 해야 할 일들은 고스란히 다른 보좌진의 몫"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 숲'에는 지난 9월에 "아직도 의원님들에게 '보좌직원'이라는 자리가 주머니 쌈짓돈 정도 되는가보다. 일자리 잃은 전직 기초 광역의원도 막 갖다 꽂고 말이야"라며 "밥벌이 못하는 자기 친구한테 인심쓰기도 하고요. 선거 때 도와줬던 사람들한테 돌아가면서 신세 갚은 데 쓰고요"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한 의원이 둘 수 있는 보좌진은 총 9명. 이들은 국회사무처 소속의 별정직 공무원이지만 임면권은 전적으로 의원에게 있다. 면직예고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일들도 있었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소속인 국회사무처는 의원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하기 어렵다.
보좌직원의 노동환경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며 올해 국회 인권센터가 출범했다. 직원은 총 3명. 박숙미 인권센터장이 9월에 임명되고 직원이 모두 채워진 게 11월이다. 관련 규정도 현재 만들고 있는 중이다.
박 센터장은 "사건 조사에 관한 규정을 만들고 있다. 조사 결과 사안이 경미하면 인권교육을 권고하고 징계가 필요하다 판단하면 감사실로 보낸다. 감사담당관이 징계여부 및 징계양정을 판단해 인사과에 징계요구서를 보내면 인사위를 개최해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여느 기관에 똑같이 적용하는 방식"이라며 "센터 차원에서는 사안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거나 경찰 수사 등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절차는 보좌진 내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을 뿐, 국회의원과 보좌직원 사이의 문제에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직 제대로 활동을 하기 전이지만 한계는 선명하다. 박 센터장은 "인권센터는 임의조사권을 가지고 있다. 의원 본인이 조사에 임하지 않으면 조사할 수 없다"며 "의원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의회가 국회법 등에 반영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