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가 19일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경선 규칙을 변경하기로 했다. 권리당원투표 비중 100%로 비대위 의견이 모임에 따라 현행 국민여론조사(30%)는 반영되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비윤(비윤석열)계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당내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민심' 배제는 중도 외연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비대위는 이날 당헌 개정안 및 당 대표·최고위원 선출 규정안을 비대위원 만장일치로 의결해 상임전국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당헌 개정안에는 100% 당원선거인단 투표로 당 지도부를 선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04년 당 지도부 선출을 위해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를 7대3으로 반영하는 경선 방식을 준용한 지 18년 만이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겼다. 결선투표제는 최다 득표자의 득표율이 50%를 넘지 않으면 1·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해 당선인을 선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행 당헌·당규상 당 대표 당선인 결정은 최다득표한 자를 당 대표로 결정하며, 동수의 최다 득표자가 2인 이상이면 선거인단투표 결과, 여론조사결과 순으로 최다 득표자를 당 대표로 결정하고 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결선투표제 도입에 대해 "당원의 총의를 확인하고 당 대표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당원의 자발적 투표로 당 대표 선출이 가능하므로 비당원에 대한 여론조사를 병행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유권자의 자격이 아니라 오히려 후보의 자격, 대표의 자격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상임전국위원회(20일)와 전국위원회·상임전국위(23일) 의결 및 인준 등을 거쳐 당헌 개정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정진석 비대위' 구성을 두고 잡음이 새어 나오긴 했지만, 결국 상임위와 전국위에서 새 비대위 설치안을 의결한 바 있다. 지난주 초·재선 의원 대다수가 지도부의 '당심 100% 확대' 방침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원이 당 대표를 뽑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부각하고 있다. 책임당원이 80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40~50만 명 이상 규모가 커진 데다 국민여론조사의 경우 '역선택'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상 내년 3월 개최가 유력한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심'의 향배에 따라 새 지도부가 꾸려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당대회 룰 개정에 대해 뒷말이 나온다. 2024년 치러질 총선을 염두에 두고 2030세대와 중도층 유입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여권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차기 당 대표는 필연적으로 여소야대 국면을 바꿔야 하는 과제를 떠안는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직결된 문제"라면서 "지도부의 원칙론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민심을 배제한다면 향후 당이 중도층 등 외연 확장에 어려움을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지난해 이준석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키며 당권을 잡은 이후 당원 가입자 수가 급증한 것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원 표심은 '조직력'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민의힘이 매번 강조하는 '국민 정당'이라면 중도층과 청년층 등 여러 민의를 수렴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새 지도부 출범 이후 빠르게 총선 체제로 전환될 텐데, 당원과 국민에게 고루 선택받은 당 대표가 지휘봉을 잡는 모양새가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용태 전 청년최고위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차기 전당대회 룰 변경과 관련해 지도부가 내세운 당원민주주의라는 명분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혹시 말로만 윤석열 대통령을 외치지만, 내심 당권을 장악하고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수월하게 공천을 받아 일단 나만 배지를 달면 된다는 흑심을 품고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정당은 이념과 철학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권 획득과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목적으로 모인 집합체"라며 "이념과 철학, 목표가 같은 당원들이 당 대표를 뽑는 것은 당연하다. 당 대표는 당원이 뽑고, 당원이 당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원칙을 부정하거나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 지도부가 전당대회 룰 개정에 드라이브를 걸자 일부 당권주자와 비윤계의 반발이 거세다. 친윤계의 농간이라는 취지의 비난과 특정인을 떨어뜨리기 위한 작업 아니냐는 의심이 짙게 깔렸다. 여러 여론조사상 당 적합도 지지도에서 초강세를 보이는 유승민 전 의원의 당선을 막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유 전 의원은 윤 대통령과 정부, 당을 가리지 않고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당원 투표 100%가 낫지 않나"라고 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경선 개입은 심각한 불법"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때문에 친윤계 처지에선 유 전 의원이 당권을 잡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