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파면' 尹 대통령에 공 넘긴 민주당


해임건의안 9일 본회의서 처리…속도조절론
'국정조사 후 탄핵' 카드 남겨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9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7일 의원총회에서 대화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박홍근 원내대표. /뉴시스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오는 9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에 이어 두 번째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장관 파면' 공을 넘긴 것이다. 국정조사 전 탄핵소추안을 밀어붙이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속도조절론'으로 뜻을 모았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거부할 경우 국정조사 결과를 앞세워 '탄핵' 절차도 강행하겠다고 예고했다. 본격적인 국정조사 국면에 돌입하면 여야의 '정부 책임' 공방이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7일 의원총회를 열고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8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고 9일 의결하기로 뜻을 모았다. 해임건의안은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어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민주당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하면 윤석열정부 출범 후 두 번째 장관 해임건의안이 된다.

앞서 당 지도부는 지난 1일과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해임건의안을 처리하고,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8일과 9일 탄핵소추안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김진표 국회의장이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우선"이라며 본회의를 일주일 순연하면서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기 위해선 해임건의안과 탄핵소추안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날(6일)까지만 하더라도 "어느 쪽으로 판단의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지 않다"는 분위기였지만 결국 당내 '속도조절론'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뒤 기자들과 만나 "의견을 수렴을 했는데 압도적 다수가 뜻을 같이해서 의원총회에서는 이견 없이 바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 앞서 전임 원내대표단 등 다양한 차원의 목소리를 수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은 탄핵안을 곧바로 추진할 경우 내년도 예산안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국회 파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설득력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내년도 예산안 심사 법정시한을 넘긴 책임을 민주당의 '이 장관 파면 요구'로 돌리고 있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처리된다고 해도 헌법재판소의 법적 판단이 남아있는데, 헌재가 기각하거나 각하할 경우 역풍도 부담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거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달 4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헌화하는 윤 대통령. /뉴시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임시국회에서 탄핵소추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경 카드를 남겨둔 것도 속도조절론이 당내 다수의 찬성을 얻게 된 배경으로 보인다. 박 원내대표는 "해임건의안을 처리하고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통해 여러 문제점이 제기될 것을 감안해 국정조사를 내실 있게 치르고 나서 그 이후까지 여전히 사퇴하지 않고 해임을 거부하고 있으면 탄핵소추로 가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의원들 다수가 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우선 해임건의안으로 윤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의 해임 건의는 '그냥 대통령 들어주십시오. 안 들어주면 말고' 이게 아니고 국회가 엄중하게 요구하는 것"이라며 "야당이 여러 차례 숙고하면서 대통령이 스스로 결단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제공하고 있는데도 그걸 계속 걷어찬단 말인가"라고 윤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외교 참사'를 이유로 단독 의결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거부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대통령실도 부담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론도 찬성이 우세한 분위기다. 이날 발표된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 여론조사(뉴시스 의뢰, 4~6일 조사,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30명 대상, 표본오차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에 따르면 이 장관 해임건의안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55.8%, 반대한다는 응답은 34.2%였다.

다만 현재까지 '윤심'(윤 대통령 의중)은 이 장관 유임 쪽에 기울어져 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지난달 30일 민주당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자 대통령실은 "국정조사 계획서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사 대상으로 사실상 명시된 장관을 갑자기 해임하라고 하면 국정조사를 할 의사가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우회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윤핵관' 장제원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은 이제 윤석열 정부를 흔들기 위한 '이상민 탄핵 정치쇼'를 종영해야 할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을 거론하면서 "어떻게 그 윗선인 경찰청장, 나아가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나. 법원이 현장 책임자마저 사실과 증거가 명백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상민 장관의 책임부터 묻고 탄핵을 운운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고 했다.

이 장관 해임건의안이 처리되면 국정조사 과정에서 여야 공방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4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계획서 채택의 건 상정 모습. /뉴시스

해임거부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정조사에서 '정부 책임' 공방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민주당이 탄핵소추안 추진 시점을 '국정조사 이후'로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조사 기간은 내년 1월 7일까지다. 설 연휴를 앞두고 민심 향배도 주목된다. 민주당으로선 국정조사 과정에서 윗선의 책임 소재를 파헤쳐 이 장관 탄핵을 거부할 수 없는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시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추진하기 위해선 본회의를 연속으로 소집해야 하는데, 여야 합의가 필요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높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도 의원들에게 적극적인 국정조사 협조를 당부했다. 그는 "이번 국정조사는 민주당 9명 특위위원뿐만 아니라 당 소속 169명 모두가 함께한다는 각오로 임해주면 좋겠다"며 "(임시국회에서) 각 상임위별로 법안심사에 더 박차를 가하면서도 국정조사에 필요한 자료나 정보, 지휘 포인트 등을 특위 위원들과 적극 공유해서 빈틈없는 국정조사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기자들과 만나서는 탄핵 추진에 대해 "국정조사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문제 제기가 있을 것이고 책임 추궁이 있을 거 아니겠나. 그런 것들을 감안해서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해임건의안을 두고 '정쟁용'이라고 반발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결국 이태원 참사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의지보다 정쟁의 판을 키워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는 계략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야당이 이 장관 파면 절차에 돌입한 것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 후 조사'라는 여야 합의를 깨트린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증인채택과 자료제출 등 사전준비 작업에도 불참하면서 당내 '이태원 참사 사고조사 및 안전대책 특별위원회'에서 자체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본격적인 국정조사 국면에 들어서면 여야 간 주도권 다툼이 한층 격렬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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