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현 대통령실 청사)로 옮긴 윤석열 대통령이 첫 국빈을 맞이하는 만찬 장소로 '청와대 영빈관'을 택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새 정부 출범 후 첫 국빈인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5일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찬을 가졌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이날 밤 서면 브리핑에서 "오늘 저녁 푹 주석 국빈 만찬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했다"며 "윤석열 정부 첫 국빈 만찬에 청와대 영빈관을 활용하는 것은 역사와 전통의 계승과 실용적 공간의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대통령실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시대'가 시작된 이후 청와대 영빈관을 대체할 다른 장소를 물색해 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5월) 만찬 때는 국립중앙박물관을 활용했고, 다른 외빈 초청 행사에는 국방컨벤션센터, 전쟁기념관, 대통령실 청사 등을 돌아가면서 활용했다.
외빈 초청 때마다 격에 맞는 만찬 장소를 고민하던 대통령실은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고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 영빈관을 신축(예산 878억 원 책정)할 계획을 세우고, 비밀리에 추진하다가 언론보도로 해당 사실이 알려진 지난 9월 오락가락한 끝에 영빈관 신축 계획을 취소했다.
당시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존 청와대 영빈관을 활용하려면 다시 시민들에게 완전 개방되어 있는 청와대를 부분 통제할 수밖에 없는 여러 모순이 발생한다"며 "그런 점에서 용산 시대에 걸맞은 그런 (새) 영빈관이 필요하다는 필요성에 대해선 많은 국민들이 공감해 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영빈관 신축 추진 소식에 여야 모두에서 비판이 나오자 김은혜 홍보수석은 같은 날 오후 8시 51분 출입기자단 공지에서 "윤 대통령은 오늘 용산의 영빈관 신축 계획을 전면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며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린 이후 대통령실의 자산이 아닌 국가의 미래 자산으로 국격에 걸맞는 행사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이같은 취지를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즉시 예산안을 거둬들여 국민께 심려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내외빈 행사는 호텔,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등 다양한 곳에서 진행해 왔다"며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호상 문제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빈급 외빈을 맞이하기에 알맞은 장소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이에 영빈관 신축을 검토했으나 국민의 뜻에 따라 예산 반영 계획을 거둬들인 바 있다"며 "국격에 걸맞은 대규모 내외빈 행사 시 최적의 장소를 찾는 노력의 일환으로 푹 주석 국빈 만찬은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청와대 영빈관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3월 20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이전을 발표하면서 "청와대 영빈관을 국빈 만찬 행사에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에게 개방한 청와대 영빈관을 다시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에 장소를 바꿔가면서 외빈 만찬 행사를 진행하고, 영빈관 신축 계획도 세웠다가 철회한 끝에 다시 청와대 영빈관을 활용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청와대 영빈관 활용 방안과 관련해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7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영빈관은 미술품 전시에 가장 적합하다"며 "품격 있는 미술품 전시장으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당시 윤 대통령은 "본관과 영빈관 등 청와대 공간이 국민의 복합문화예술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기획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 부대변인은 청와대 영빈관을 푹 주석과의 만찬 장소로 활용한 것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는 취임 전 약속대로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 돌려드린 만큼 일반인 출입 통제 등 관람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한다"며 "이번 국빈 만찬 행사 준비 때도 영빈관 권역을 제외한 본관, 관저, 상춘재, 녹지원 등은 관람객들에게 정상적으로 개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청와대 영빈관에서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국내외 귀빈과 긴밀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통령실은 앞으로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청와대 영빈관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국격에 걸맞은 행사 진행을 위해 영빈관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외빈과의 만찬을 위한 장소로 돌고 돌아 기존 청와대 영빈관이 낙점된 가운데 이는 대통령실 이전이 철저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하나의 방증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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