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패싱 '명단 공개' 후폭풍…민주당 '입꾹닫'


與 "매체-민주당 서로 명단 공개 동의한 것" 배후설 제기
野에서도 쓴소리 "유족 동의가 기본"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한 인터넷매체와 유튜브 채널이 공개해 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희생자 명단 공개를 요구하다 이번 파문이 일자 침묵하고 있다. 지난 11일 여의도역 일대에서 진행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검추진 범국민 서명운동에 참석하는 이재명 대표. /남용희 기자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한 인터넷매체와 유튜브 채널이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정치권도 일제히 해당 매체를 향해 강한 비판이 나왔고, 명단 공개에 호의적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도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만, 앞서 희생자 명단 공개를 촉구했던 당 지도부는 명단 공개에 대한 민주당 공식 입장문이나 논평, 당 대표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14일 신생 온라인 매체 '민들레'는 '이태원 희생자, 당신들의 이름을 이제야 부릅니다'라는 제목의 포스터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유튜브 채널 '더탐사' 또한 같은 내용의 포스터를 게시판에 게재했다. 이 포스터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이름이 적혔다. 15일 오후 2시 기준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인원은 총 158명이다.

민들레는 명단 공개 배경에 대해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부 당국과 언론은 사망자들의 기본적 신상이 담긴 명단을 국민들에게 공개해 왔으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해서는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다"면서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매체가 유족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명단을 공개한 탓에 명단 일부가 익명 처리되기도 했다. 일부 유족들이 항의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15일 오전 10시 기준 민들레 홈페이지에는 수정본이란 제목과 함께 명단 중 13명의 이름이 가려져 있었다. /민들레 홈페이지 갈무리

이후 민들레가 유족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명단을 공개한 탓에 명단 일부가 익명 처리되기도 했다. 일부 유족들이 항의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15일 오전 10시 기준 민들레 홈페이지에는 '수정본'이란 제목과 함께 명단 중 13명의 이름이 가려져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같은 날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추모 미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기도 했다. 앞서 더탐사 측은 SNS에 "입수한 명단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도 모두 넘겨드렸다"고 남겼다.

유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민주당을 제외한 여야 지도부 사이에서는 명단을 공개한 매체를 향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권은 명단 공개에 강한 반발 의사를 보이며 민주당과 해당 매체와의 연관성을 제기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명단 발표에 관여된 분들이 친민주당 성향 인사들이 많고 민주당에 몸담은 사람도 있고 하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민주당과 매체 사이) 서로 명단 공개에 동의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페이스북에 "참담하다"며 일방적 명단 공개에 강한 유감을 보였다. 그는 페이스북에 "희생자 명단 공개는 정치권이나 언론이 먼저 나설 것이 아니라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라고 몇 차례 말한 바 있다. 과연 공공을 위한 저널리즘 본연의 책임은 어디까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라고 비판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도 SNS에 "이재명 대표님, 희생자 명단공개 이제야 직성이 풀리시나?"라며 "죽음의 정치 이제 그만 하시라"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친야 성향 매체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에 정치권 비판이 거세지만, 앞서 희생자 명단공개를 요구했던 민주당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매체의 일방적 명단 공개이므로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나 해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를 필두로 한 민주당 일각에서 명단 공개를 촉구한 바 있고, 여야를 막론하고 해당 매체의 일방적 명단 공개에 비판을 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침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을 하고 애도를 하는가.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당연히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남용희 기자

앞서 유족 동의를 전제로 한 희생자 명단 공개를 촉구한 이 대표도 해당 문제에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박홍근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모든 것을 민주당과 연계하나. 민주당은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결코 반대한다고 얘기했다"며 국민의힘의 주장을 반박했다.

민주당 내에서 희생자 명단 공개가 처음 화두에 오른 것은 지난 7일 문진석 민주당 의원이 이연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가 공개되면서다. 이 부원장은 문 의원에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전체 희생자 명단과 사진 등을 확보해 당 차원으로 발표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모습이 국회 기자단 카메라에 포착됐다. 논란이 불거지자 당은 "그런 논의는 전혀 이뤄진 바 없고 만에 하나 그런 제안을 누군가 했다면 부적절한 의견"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지난 9일 최고위 회의에서 유가족 동의를 전제로 희생자 명단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한규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일부 참사 희생자들의 사연과 사진이 나온 워싱턴포스트(WP) 기사를 공유하며 "외신에 나온 희생자 얼굴을 보니 이제서야 현실감이 생기고 내가 아는 사람의 죽음처럼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며 희생자들의 사연이 더 알려져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문제가 불거지자 민주당 일각에서도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노웅래 의원은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명단 공개는 당사자인 유족 입장이 우선돼야 되는 것 아닌가. 유족 입장과 다르게 맘대로 공개하는 건 법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애도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또 한 편으론 억울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다는 기억의 공간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조응천 의원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명단 공개에 관해 "여기에 대해선 그 무엇보다 유족들의 명시적 의사가 중요하다. 유족 동의를 왜 받지 않았는지 안타깝다"며 "유족들은 지금 이렇게 공개된 것에 대해 아마 또 한 번 참담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며 법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조 의원은 명단 공개를 민주당과 연결 짓는 주장에 대해선 "민주당 차원에서 이걸 공개하는 게 맞다고 논의된 바는 전혀 없다. 이재명 대표라 해도 그건 개인 차원에서 한 얘기지, 당 차원에서 얘기한 건 아니다"고 일축했다.

당내에서는 진보매체의 명단 공개에 민주당을 엮는 것은 황당한 음모론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반면 민주당이 빠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남용희 기자

당내에서는 진보매체의 명단 공개에 민주당을 엮는 것은 황당한 음모론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한 초선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유족 동의 없이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건 상식적인 일은 아니지만 (명단을 공개한 매체가) 진보적이라고해서 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여당에서 모든 사안을 '이재명 방탄'으로 몰아가기 위해 프레임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명단이 공개됐을 당시 당에서 빠르게 선 긋기를 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명단 공개 전에는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책임을 추궁하면서 전선을 잘 잡고 있었다. 명단 공개 이후 '유가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부적절하다'는 공식 입장문을 빨리 내고 민주당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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