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친누이가 질병청장"...백경란 남동생, 가족 지위 이용 '논란'


디엔에이링크 사외이사 직무수행계획서에 '친누이' 명시
백 씨 "제3자가 썼다"…질병청장 "전혀 알지 못했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 남동생 백 모 씨가 코로나19 진단 키트 사업을 영위하는 상장 바이오사 디엔에이링크의 사외이사에 지원하면서 마침 친누이가 2대 질병청장 임무를 맡은 백경란 청장이라는 직무수행계획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김정수·송다영 기자] 직무관련 주식 보유 논란이 있는 백경란 질병관리청장 남동생이 코로나19 진단 키트 사업을 영위하는 상장 바이오사 '디엔에이링크'의 사외이사에 지원하면서 "마침 친누이가 2대 질병청장 임무를 맡은 백경란 청장"이라는 직무수행계획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 청장의 남동생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제3자가 썼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백 씨가 질병관리청과 업무 관련성이 높은 회사에 임원으로 지원하면서 누나의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려했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6일 <더팩트>가 확인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백 청장 남동생 백 모 씨는 지난 8월 8일 디엔에이링크 사외이사에 지원하며 직무수행계획서를 제출했다. 직무수행계획서는 담당 업무에 대한 계획 등을 적시하는 일종의 자기소개서다.

백 씨는 계획서에 "작금 상황의 사외이사로서 가장 중요한 관점은 시장 융화를 기반으로 하는 이사회의 의사 결정이 상식과 합리성에 근거해 균형감을 갖게 하는 일"이라며 "성실히 능력을 발휘하고 공격적인 경영으로 시장의 평가를 만들어나가는 역량과 지혜를 모으는 일원으로 부족하나마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논란의 대목은 그다음에 나왔다. 백 씨는 "본인은 전공이 화학이지만 가족 형제자매들이 현재도 의료 및 제약업계에 종사하며 저와 업무적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어 본 사외이사직을 수용하고 열정을 다 하고자 한다"며 "마침 친 누이는 2대 질병청장의 임무를 맡은 백경란 청장이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백 씨의 직무수행계획서. 디엔에이링크는 유전체 분석 기업으로 코로나19 진단 키트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 씨가 코로나 컨트롤 타워 수장인 백 청장을 자신의 누나라고 부각한 점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갈무리

백 씨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은 지난 8월 26일 디엔에이링크 주주총회에 상정됐지만, 당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심의되지 못했다. 그러나 사외이사 선임 여부를 떠나 백 씨가 질병관리청과 업무 관련성이 높은 회사에 임원으로 지원하면서 자신의 누나를 질병관리청장이라고 언급한 건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런데 백 씨는 해당 직무수행계획서를 자신이 작성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제3자가 작성했다는 것이다. 백 씨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사전에 협의도 없이 그 내용을 기재했던 사람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한 사람에게 전화해 항의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사외이사로 와줬으면 좋겠다는 소개를 받아 취임승낙서는 작성해 줬지만, 직무수행계획서를 작성한 적 없다"며 "만약 제가 작성했다면 그런 내용을 왜 적겠느냐. (대리로 작성한 사람에게) 기사로 나오거나 문제가 생기면 사문서 위조로 고소하겠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백 씨는 부인했지만, 문제의 직무수행계획서에는 백 씨의 이름과 함께 '저는' '본인은'이라는 표현이 적시돼 있다. 또 백 씨가 디엔에이링크 사외이사에 지원하면서 제출한 확인서를 살펴보면, 백 씨는 '직무수행계획이 사실과 일치함을 확인한다'는 내용에 서명까지 했다.

이에 대해 백 씨는 "확인서에 사인한 건 맞다"면서도 "직무수행계획서는 원래 제가 작성하는 게 맞을 텐데 확인서 내용을 자세히 못 본 건 제 불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 씨는 "(대리작성한 사람으로부터) 직무수행계획서를 대신 작성했다는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서'를 받아뒀다"고 강조했다.

백 씨가 사외이사로 지원한 회사 공시에 직무수행계획서와 확인서가 게재된 건 지난 8월이다. 이미 3개월 가까운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가, <더팩트>의 취재가 시작되자 제3자가 썼다고 해명한 것이다. 백 씨의 이런 해명에도 제3자의 보증을 받았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 씨가 직접 서명한 확인서를 살펴보면 후보자의 직무수행계획에 대한 사실 여부를 묻고 있다. /디엔에이링크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갈무리

백 씨의 직무수행계획서를 대리 작성했다는 A 씨는 <더팩트>에 "당시 디엔에이링크 측에서 공시 마감 직전 전화가 와서 사외이사 직무수행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했다"며 "급하게 해야 하다 보니 백 씨 직무수행계획서를 대신 작성했다"고 인정했다.

A 씨는 '대리 작성한 직무수행계획서를 백 씨에게 알려줬는지'에 대해 "백 씨를 사외이사로 추천했던 사람에게는 알려줬지만, 백 씨에게 따로 연락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백 씨를 추천한 사람이 문제의 직무수행계획서를 백 씨에게 전달했는지 여부가 핵심인 상황이었지만, A 씨는 "그 사람이 기자와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백 씨의 직무수행계획서에 '누나가 질병관리청장'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점에 대해 "공직에 있는 가족의 지위를 이용해 본인이 취업에 활용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이해관계 상충"이라며 "사적 이득을 취하려 한 것이 명백해 청장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계획서가 대리작성됐다는 백 씨의 주장에 관련해선 "최종적으로 백 씨가 (확인서에) 서명을 하고 제출을 했다면 그 내용에 대해서도 백 씨가 책임지고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재진은 백 씨의 이런 상황을 누나인 질병청장이 알고 있었는지도 확인했다. 질병관리청은 <더팩트>에 "백경란 청장이 해당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청장은 관련 질의가 들어온 뒤 동생과 이 사안에 대해 처음 대화했다"며 "그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디엔에이링크 측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적시된 내용에 대한 질의에 "그쪽에 관심 없다. 바빠서 끊는다"고 말했다. 디엔에이링크 입장에서는 제출받은 백 씨의 직무수행계획서를 그대로 공시한 만큼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백 씨의 주장대로 직무수행계획서가 대리 작성된 허위라 할지라도, 시세조종 등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가 입증될 때 적용되는 허위공시에 해당하지 않아 디엔에이링크는 이를 정정신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는 오는 7일 전체회의에서 백 청장 고발건을 논의할 전망이다. 앞서 민주당은 백 청장이 국회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을 어겼다며 백 청장 고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백 청장은 취임 당시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팜, 바디텍메드, 알테오젠, 신테카바이오 등 바이오 관련 주식을 보유해 이해충돌 지적을 받았다. 백 청장은 해당 주식을 모두 매각했지만 신테카바이오가 보건복지부의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플랫폼 구축 사업'에 참여했던 것으로 드러나 이해충돌 논란이 커졌다.

이에 민주당 소속 위원들은 백 청장에게 10년치 주식거래 내역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백 청장은 기존에 냈던 자료를 그대로 제출하며 사실상 공개를 거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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