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경질론을 들고 나왔다. 사고 당일 112 신고 녹취록 등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책임 있는 고위공직자의 부적절한 대처와 이에 따른 부정 여론을 근거로 들었다. 사고 직전 당대표 사법 리스크로 수세에 몰렸으나 국가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정국 주도권을 잡고 강공 모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고위 책임자들의 태도가 도저히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라며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전날(1일) 기자간담회에서 외신기자에게 농담을 건네 물의를 일으킨 한덕수 국무총리를 두고는 "농담할 자리냐"며 질타했다. 또 이 대표는 인사혁신처에서 △리본에 근조·애도·추모 등 글씨 기재 금지 △'참사'가 아닌 '사고' 표기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 표기 △위패 생략 △영정사진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공문을 전국 공공기관에 보낸 것을 두고는 "국민들의 분노를 줄이고 자신들의 책임을 경감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같은 날 '112 신고 녹취록'을 거론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사고 당일인 29일 오후 6시 34분부터 10시 11분 사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11건의 신고가 있었다. 첫 신고자 통화에서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라는 내용으로 신고가 들어온 사실이 알려지며 경찰이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조성됐다. 박 원내대표는 "결코 막을 수 없던 참사가 아니었는데, 대통령·총리·장관·시장·구청장·경찰서장 등 누구 하나 국가가 책임지지 못했다고 엎드려 사죄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 장관과 윤 청장을 향한 경질 목소리도 나왔다. 정청래 최고의원은 "이태원 참사의 최종 책임자는 당연 윤석열 대통령"이라며 이 장관과 윤 청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참사 이후 민주당 지도부에서 이 장관 경질 요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경태 의원·서은숙 최고위원 등도 함께 이 장관의 파면을 요구했다. 장 최고위원은 서울시도 관리 책임에 소홀했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두 사람에 대해 사임이 아닌 '파면'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 있다. 박성준 대변인은 회의 후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 여부 관련 질의에 "해임건의 보다는 '파면' 대상이라는 것이 최고위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밝혔다.
지도부는 물론 당내에서도 책임자 경질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분위기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당에서 (책임자들을) 물러나라고 요구는 하겠지만, 과연 그들이 물러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라며 "우리 당도 집권 당시 이른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하다가 나중에 정권을 잃은 것 아니겠나. 상황이 똑같은 거다. 당국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 나중에 후폭풍이 무서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에서도 경질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유력 당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이날 112 신고 녹취록과 시민단체 대응을 논의한 경찰의 '정책 참고자료' 문건을 언급하며 이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 안 의원은 "즉시 경질하지 않으면 공직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자신들이 맡은 본연의 임무보다 정치적 대응을 먼저 생각하게 할 수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국가의 불행"이라고 지적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비대위 회의에서 "네 번이나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현장 판단이 왜 잘못됐는지, 기동대와 현장 병력 충원 등 충분한 조치가 왜 안 취해졌는지 밝히고 온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와 서울대 법대 4년 후배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실세 장관으로 꼽힌다. 정부 출범 초기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문제로도 야당과 각을 세운 인물이다. 윤 대통령이 '경질론'을 받아들일 경우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후 윤석열 1기 내각에서 두 번째 '경질성 사임'이 된다. 윤 대통령은 리더십에 타격이 갈 수 있어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기세를 몰아 정부 책임론으로 향후 정국을 끌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국정조사도 거론되고 있다. 참사 직후 경찰청이 작성한 내부 문건 중 진보 진영 시민단체들의 동향을 파악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한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민주당은 이 문건에 관해서도 경찰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사찰'을 자행한 것이라고 보고 책임을 물겠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정조사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회에 주어진 모든 책무를 우리로서는 다할 수밖에 없다"며 "그건 전적으로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피해 수습 지원과 진상 규명에 대한 실무는 당내 '이태원참사 대책본부'를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최고위원인 박찬대 의원이 본부장을, 이상민 의원이 부본부장을 맡았다. 대책본부는 지난달 31일 1차 회의를 열고 사고수습단, 국민추모단, 진상조사단 세 개의 조직으로 구성을 구성했다. 1일에는 민주당 소속 행안위 위원들과 함께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행안위 위원들의 경우, 다음 주 예정된 행안위 현안질의 이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고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최고위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대책본부는 참사 수습을 지원하고 진상 규명과 국민 추모 등 실무적인 일을 책임져서 할 것이고 국정조사는 정무적 판단에서 당 지도부가 결정할 부분"이라며 "본부에서는 진상조사를 위한 자료요청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책본부는 향후 경찰청이 당일 오후 6시부터 사고가 임박했던 10시까지 4시간 동안 모두 79건의 신고가 접수됐으나 11개의 녹취록만을 공개한 것에 대해 제외된 부분에 '정치적 목표'는 없었는지, 또 사실관계가 달라진 점은 없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3일에는 '사태수습 및 진상규명 관련 보고 및 향후 계획 논의'를 위한 2차 회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