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헌정사 최초' 국정감사 기간 도중 검찰의 중앙당사를 압수수색에 더불어민주당은 '헌정사 최초' 대통령 시정연설 불참으로 맞대응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 내용을 두고 민주당은 민생 예산이 삭감됐다며 '무성의하다' '비정하다' 등 혹평도 아끼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 대 야당의 관계가 더 쪼개지며 앞으로 남은 예산안 심사, 민생 법안 통과 등에 있어서도 '협치는 물 건너갔다'는 반응이 나온다.
민주당은 당초 '보이콧' 의사를 밝혔던 대로 윤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는 국회 본회의장에 169명 의원 전원이 불참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입장 시간과 동선에 맞춰 '규탄 대회'와 '침묵시위'를 벌였다. 25일 오전 9시 30분께부터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들어가는 로텐더홀 계단 앞에서 "민생외면 야당탄압 윤석열 정권 규탄한다" "국회모욕 막말욕설 대통령은 사과하라"를 선·후창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약 10분 후 윤 대통령이 국회에 들어서자 민주당 의원들은 '침묵'하며 대통령의 입장을 '응시'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애초 하기로 했던 '대통령 침묵 응대법'을 잊은듯 "사과하세요" 등의 고성이 터지기도 했다. 민주당은 이후 시정연설이 진행되는 본회의장의 '옆방'인 예결위회의장에서 비공개 의원총회를 가졌다. 예결위회의장 문은 윤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퇴장한 이후에야 열렸다.
민주당은 유례없는 시정 연설 불참에 대해 헌정사를 먼저 어긴 윤석열 정부를 향해 맞대응했다는 명분을 들고 있다. '검찰' 출신 윤 대통령이 '기획사정'해 검찰 수사를 지시했고, 검찰이 국감 기간 도중 중앙당사 압수수색 시도를 한 것이 전례없는 일이니 '야당 침탈·폭거'에 '투쟁'했다는 것이다. 또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 도중 야당을 향해 '이XX'라는 비속어를 사용했음에도 사과하지 않았는데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듣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다. 이재명 대표는 오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부와 여당이 야당을 말살하고, 폭력적 지배를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면 이제 우리는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시정연설을 두고도 혹평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이 소개한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민생과 미래는 없고 권력기관 강화만 (예산안에 집중돼)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무성의"하다거나, 민생 예산 삭감을 두고 "비정하다" 등 시정연설에 대한 힐난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시정연설 보이콧에 일제히 '헌정사 상 없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시정연설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국회의 법상 책무마저 버리는 행태"라고 했고,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십수년 정치하면서 대통령 새해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을 이렇게 무성의하게 야당이 대하는 건 난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시정연설 거부'를 두고 정치권에선 '야당 탄압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는 반응과 '야당이 과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헌정사 처음으로 검찰이 국감 도중 야당 당사를 압수수색했는데, 이후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야당 대표가 본회의장에 앉아있었다면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라고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았을 것이고, 총체적인 걸 다 감안해서 한 결정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들어가서 피케팅을 하든 항의·야유를 하든 중간에 퇴장하더라도 일단 본회의장에 입장은 했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국회의 오랜 관례를 깨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며 "야당 압수수색 문제라면 이 대표에게 날아온 소환장이 아닌 측근 수사라는 점을 봤을 때도 (야당의 대응이) 좀 과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손피켓으로 항의하되, 본회의 참석을 결정한 정의당 측에서는 "여야가 민생을 뒤로 팽겨치고 있는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희서 정의당 대변인은 "민주당은 본인들이 항의하는 명분으로 시정연설을 불참했다지만, 저희는 시정연설에 참여하는 건 민생을 챙기고 예산을 짜야하는 입장이니 '당연한'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정쟁의 분위기가 만들어짐에 따라 민주당과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부딪혔지만, '노란봉투법'도 쌀값 문제도 이번 회기에서 정기국회에서 해야할 일이 태산인데 민생 국회를 위해 일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양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여야가 '시정연설 보이콧' 문제를 두고 다시 얼굴을 붉히면서 남은 정기국회 동안 '여야 협치' 가능성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예산안 심사에서 여야 간 정쟁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비관적 예측이 높다.
김성한 정책위의장은 "노인·청년 일자리 예산, 지역화폐 등 민생예산을 10조 원 가까이 삭감하고 겨우 몇 푼 편성하는 것을 약자 복지라고 하는 것을 보며 비정하다 느낀다"며 "(민주당은) 지금 시기에 꼭 필요한 민생경제 예산을 최대한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원내에서 강력하게 예산과 법안을 가지고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향후 여야 간 분위기는 한층 더 냉랭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 평론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헌정 사상 국감 도중 야당 압수수색' 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대통령 시정연설 거부' 등 현재 벌어지는 여야 간 정치 구도는 더 극한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이대로라면) 야당이 예산안을 협조하지 않을 거고, 정부는 '검찰 기획사정'에 이어 (예산 문제까지 겹쳐) 지지도는 더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여야가 대치를 하다가도 '영수회담' 등 서로 일종의 '빅딜'이 있다면 협치할 수 있겠지만, 윤 대통령 성격상 지금으로서는 '강 대 강' 대결 구도가 계속되지 않겠나"라고 예측했다.
당내에서도 협치는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 반응이 나왔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지금은 야당이 (정치보복에) 하나로 뭉치자는 게 주된 분위기다. 그런 입장이다 보니(향후) 여야 입법과 관련해 대치 상황은 계속될 것 같고 당분간 따뜻한 분위기는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