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해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세계는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주목했다. 20년이 지난 2022년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K컬처'는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정치 역시 지난 20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으로 대변되던 '3김 시대' 한국 정치가 막을 내렸고, '노무현부터 윤석열'까지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며 정치팬덤, 촛불정치, 검찰개혁, 다당제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더팩트> 정치부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 20년간 국내 정치사에 기억될 만한 변곡점을 조명하고 앞으로 20년 동안 국내 정치의 방향성을 총 5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제3정당은 매번 조연이었다. 때론 주연급으로 조명 받거나 주인공 자리를 꿰찰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제 기량을 완전히 펼치기도 전에 모두 자취를 감췄다. 앞으로 20년, 한국 정치사에 기록될 만한 샛별이 떠오를 수 있을까. <더팩트>는 제3정당의 굴곡진 역사를 되돌아보며 향후 국내 정치지형을 전망해 봤다.
◆시작부터 다당제, 출발은 좋았다...'정국의 칼자루' 쥐기도
1987년 민주화 이후 제3정당이 원내교섭단체(20석) 지위를 확보한 건 모두 4차례다. 시작은 1988년 13대 총선이었다. 선거 결과 '1노3김'의 다당제 시대가 열렸다.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125석), 김대중(DJ) 총재의 평화민주당(70석), 김영삼 총재(YS)의 통일민주당(59석), 김종필(JP) 총재의 신민주공화당(59석) 순이었다. 하지만 1990년 2월 노 대통령과 YS, JP가 '3당 합당'을 단행, 218석의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남은 건 DJ의 평화민주당뿐이었다. 약 2년 만에 다당 구도가 양당 구도로 재편된 꼴이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활약으로 국회는 다당제로 돌아왔다. 정 회장의 통일국민당은 31석을 차지하며 YS의 민주자유당(149석), DJ의 민주당(97석)의 뒤를 이어 제3정당 지위를 얻어냈다. 기존 정치 세력의 대안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다만 정 회장은 같은 해 12월 열린 14대 대선에서 16.31%의 득표에 그쳤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통일국민당도 곧 간판을 내렸다.
1996년 15대 총선은 '돌아온 JP'였다. JP는 직전 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해 세력을 확보, 신한국당(139석)과 새정치국민회의(79석)에 이어 50석을 차지했다. 자민련은 캐스팅보트로 약동하며 15대 국회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일례로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 탄핵소추안 발의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정국의 칼자루를 쥐기도 했다. 하지만 자민련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17석으로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선 4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JP가 정계에서 물러나면서 자민련도 스러졌다.
◆20년 만에 '녹색 돌풍'...느슨했던 양당 구도에 긴장감
13대~15대 총선을 끝으로 한동안 원내교섭단체를 꾸린 제3정당은 없었다. 수많은 신당들이 총선뿐 아니라 대선에서도 숱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양당제의 벽은 견고했다. 그러다 약 20년 후인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38석을 차지하며 느슨했던 양당 구도에 긴장감이 조성됐다.
당시 국민의당의 성과는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JP의 자민련이 50석을 차지한 지 20년 만에 제3정당이 원내교섭단체로 등장한 일인 데다, 더불어민주당의 텃밭 중 텃밭으로 여겨졌던 호남에서 의석수를 '싹쓸이'해서다. 국민의당은 전북 10석 중 7석, 전남 10석 중 8석을 차지했고, 특히 광주에서 8석 전부를 점유했다. 2016년 2월 2일 창당 후 약 석 달 만의 일이었다. 국민의당은 총선 성과에 이어 대선에서도 크게 활약했다. 19대 대통령 선거 한 달여 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지지율 33%를 기록하며 유력 대권 주자였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38%)의 턱밑까지 따라붙기도 했다.
여타 제3정당들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적들을 써 내려갔던 국민의당이었지만, 그 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민의당은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외연 확장 등을 명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을 탈당한 의원들이 주축이 된 바른정당과 합당을 추진했다. 국민의당 내에선 '합당 갈등'이 불거졌고 찬성파는 바른미래당으로, 반대파는 민주평화당으로 갈라섰다. 이후 안철수는 바른미래당에서 활동하다 탈당을 선언하며 2020년 국민의당을 재창당했지만, 지난 20대 대선 당시 국민의힘과 합당했다.
◆"이합집산에만 골몰"...또 3당? 국민 신뢰 더는 없다
제3당의 역사는 그야말로 짧고 굵었다. 원내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넘어 대선 승리라는 기적에 가까워질 때도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오늘날 국회는 국민의힘(115석)과 더불어민주당(169석)의 견고한 양당체제다. 앞으로 20년, 원내교섭단체로 진입하며 한국 정치사에 새롭게 쓰여질 제3정당은 탄생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전문가들은 이를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제3정당을 주창한 정치인들은 이를 기득권 편입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국민적 실망감이 두텁게 형성됐다는 지적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지지를 받아 상당한 정치세력을 구축하면서도 결국 이합집산을 거쳐 거대 양당에 투항하는 식이었다"며 "자신의 정치적 성장과 출세를 위해 활용하면서 3당의 씨가 말라버렸다"고 비판했다. 3당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 당시 결국 국민의힘과의 합당을 택했다. 같은 기간 새로운물결이라는 이름으로 출마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역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과의 합당을 택했고 지난 6월 경기도지사에 출마해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물론 승자 독식 구조라는 제도적 한계를 타파하면서 다당제가 뿌리내릴 수 있는 정치 토양을 일궈야 한다는 관측도 있다. 오랜 냉전으로 국민의 인식이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대치되는 이념적 한계도 간과하기 어렵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제와 선거법 개편으로 권력을 분산해 제3정당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터줘야한다"며 "원내교섭단체도 20석 아래로 낮추면서 교부금 지급 기준을 완화해 제3정당이 큰 문제없이 정당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다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8번의 총선에서 제3정당은 모두 4차례 원내교섭단체로 진입했다. 이미 기회는 줄 만큼 줬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3당은 지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며 "어떻게 하면 저 당과 합당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저 후보와 단일화 할 것인가 하다가 이합집산 끝에 끝나버렸다"고 비판했다. 자신들을 믿고 지지해 준 지지자들의 기대와 달리 꾸준히 '배신'한 탓에 3당에 대한 신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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