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사이다' 별명을 가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이후 자신과 관련한 의혹이나 여야 민감한 현안에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긁어 부스럼인 '사법 리스크' 언급은 피하고, 자신의 말실수도 줄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내후년 총선까지 침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온다.
당대표 취임 두달 차를 맞이했지만 이 대표는 대부분 백브리핑(비공식 질의응답)에서 '노코멘트(대답하지 않음)'로 일관하고 있다. 취재진이 '사법 리스크' '윤석열 정부 관련 현안' '여가부 폐지를 포함한 정부조직법 개편안' 등 현안에 대해 질문할 때마다 이 대표가 침묵하며 퇴장하는 그림이 반복되고 있다. 사법 리스크를 포함해 정치권에 산적한 현안들에 대해 공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제1야당 대표'로서 민생 행보를 유지하겠다는 게 이 대표의 전략이다.
이는 직전 당 지도부였던 '우상호 비대위 체제'와는 상반된 당 운영 방식이다. 우상호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 6월 10일 공식 출범한 이후, 매 주말 간담회를 열어 현안에 대한 질의응답을 소화했다. 또 기자들의 즉석 질문에도 곧바로 답했다. 당시 우 전 위원장은 '처럼회 해체론'이나 '민형배 의원 복당' 등 당내 갈등을 유발하는 쟁점에 대해선 빠르게 입장을 밝혀 논란의 불씨를 전소시켰다.
'이재명 체제' 이후 당대표 기자간담회 일정도 미정이다. 당 지도부 내에서도 관련한 논의가 아직은 없는 걸로 보인다. 당 지도부에 소속된 한 의원은 "(지도부 내에서) 아직 그런 제안(기자 간담회)이 안 나왔다"며 "보통 당대표 취임 100일 단위로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하니 (다음이 된다면) 그때쯤 하지 않을까 싶다"며 가능성을 열어 뒀다. 지난달 4일과 12일 두 차례 민주당 사무총장 직을 맡아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던 조정식 의원도 "(두 차례 기자간담회는)필요할 때 열었던 것"이라며 기자간담회 상시화는 예정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침묵 배경에는 자신을 포함해 배우자 김혜경 씨, 아들 동호 씨 등 일가족을 향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사법 리스크'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등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른 '사법 리스크'는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닌'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이다. 때문에 수사기관 판단이 끝날 때까지 당사자가 입을 열기보다는 당내 '정치보복' 대책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당 최고위원들이 이 대표를 엄호하는 방식으로 입장 표명을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정부와 여당이 각종 논란과 내홍으로 실책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수록'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다는 판단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대선, 지선 등 '표심'을 움직여야 하는 선거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이 대표가 입을 열지 않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이 대표는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연일 자리를 떠났다. 대선 기간 '젠더 이슈'에 열을 올렸던 것과 대조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대신 사건 발생 5일 만에 안호영 수석대변인이 '이 대표가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추진하고 피해자를 '2차 가해'한 이상훈 서울시의원에 대한 엄중 문책을 지시했다'며 대신 브리핑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를 두고 "자신의 조카 살인 사건이 재조명될 것을 우려한 탓인지 몰라도 신당역 사건 발생 수일이 지나도록 납득할 수 없는 침묵으로 일관하던 이 대표의 첫 발언치고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또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도 "대선 때의 이재명 후보라면 누구보다 먼저 이 사건에 대해 얘기했을 것"이라며 "이 문제에 이 대표가 침묵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SNS에 남겼다.
'레거시(전통적) 미디어' 앞에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이 대표가 180도 변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뉴미디어(유튜브)'를 통해 '당원들과 소통'하는 순간들이다. 강성 지지자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지난 대선 때부터 이 대표는 행사 이동 시간이 나는 시간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왔다. 지지자들과의 직접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건 이 대표의 전당대회 당시 공약이기도 하다.
이 대표가 현안에 대한 '솔직한 답변'을 피하는 이유를 두고 당내에서는 '말실수를 줄이기 위한 것' 아니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가 입을 열면 열수록 실수의 횟수도 늘어나니까 (주변에서) '말은 최대한 아끼는 게 좋다'는 조언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지지자들과의 유튜브 라이브는 질문도 안 받고 이 대표를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얘기할 수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침묵이 내년 총선 국면 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선거를 앞두고는 언론 앞에서 입장을 밝혀야 했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대표 입장에서는 (지금 입을 여는 것은) 이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우 전 비대위원장의 경우, 평균 이상으로 잘한 것뿐 이해찬 전 대표나 과거에도 당대표가 입을 많이 여는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이 대표가)당장 선거를 앞두지 않은 한 굳이 입을 열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표를 얻기 위한 선거가 있는 게 아니라면 한동안은 계속 이런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