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정치부는 여의도 정가, 대통령실을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주간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방담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로 정리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허주열 기자]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국회 상임위원회 곳곳에서 여야가 극한 대립을 이어갔다. 이 가운데 '부적절한 문자'가 또다시 노출돼 여야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감사원 실세가 대통령실 '왕수석'에게 보낸 문자,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이 국감 중 '골프 약속'을 잡는 문자가 논란이 됐다.
-한 고교생이 그린 정치풍자 카툰 '윤석열차' 국감 핵심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당초 쟁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한 '자유'였지만, 국감장에서 여당은 '표절 논란'으로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가처분 신청으로 정치적 재기를 모색했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3~5차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된 데 이어 당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1년' 추가 징계를 받았다. "앞으로 더 외롭고 고독하게 제 길을 가겠다"고 밝혔지만, 그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문자 파문'…이번엔 대통령실 '왕수석'과 감사원 실세 문자 노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조사 요구로 여야가 충돌하는 가운데 감사원의 실세라 불리는 유병호 사무총장이 대통령실 '왕수석'인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에게 보낸 수상한 문자가 카메라에 포착돼 갈등이 더 심화하고 있네?
-맞아. 또 문자가 화근이야. 유 사무총장이 5일 오전 8시 20분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내용으로 이 수석에게 보낸 문자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어. 이 사진은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 개최 전에 촬영된 거야.
-이날 오전 한겨레신문은 문 전 대통령까지 조사 대상으로 삼은 감사원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가 감사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내부에서도 "절차를 무시한 위법"이라는 의견이 나온다고 보도했는데, 유 사무총장이 이 수석에게 보고한 문자 메시지 내용은 이 보도와 관련된 거야.
-유 사무총장이 보낸 문자 시간과 내용을 고려하면 두 사람이 연락을 주고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감사원 업무에 대한 보고가 이전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돼. "또"와 "무식한 소리 말라"는 표현은 상식적으로 처음 연락하는 고위 공직자 간 주고받는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지. 여기에 문자를 보낸 시각, "감사원은 대통령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 생각한다"는 최재해 감사원장의 지난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발언까지 감안해 감사원과 대통령실이 이전에도 업무와 관련한 내용을 주고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와.
-당장 더불어민주당 측은 해당 사안을 감사원 실세 사무총장과 대통령실 '왕수석' 간의 '권권유착'으로 규정하고, 감사원이 최근 전 정부를 겨냥해 벌이는 감사를 '정치 감사', 대통령실발 '하명 감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다음 주에는 공무상 비밀누설과 직권남용 혐의로 유 사무총장과 최 원장을 고발한다는 방침이야. 나아가 최 원장 사퇴와 유 사무총장 해임까지 촉구하고 있어.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6일 출근길 문답에서 "무슨 문자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지만, 감사원 소속은 대통령 소속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업무는 대통령실에서 관여할 수 없도록 헌법과 법률에 돼 있고 무슨 문자가 나왔다는 건 정확히 파악을 해 보겠지만, 제가 어제 기사를 얼핏 보기에는 역시 그것도 하나의 정부의 구성이기 때문에 아마 보도에 드러난, 언론 기사에 나온 이런 업무와 관련해서 어떤 문의가 있지 않았나 싶다. 하여튼 감사원 업무에 대해서는 관여하는 것이 법에도 안 맞고 그리고 그런 무리를 할 필요가 저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어. 처음에는 문자 자체를 모른다고 했다가, 곧바로 '얼핏 보기에'라는 말로 아는 것처럼 말하면서 감사원 업무에 대통령실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다소 이상하게 해명을 했는데, 의심의 눈초리는 가시지 않고 있어.
-이를 두고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윤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서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 당무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게 체리) 따봉을 보내고, 의원총회 전에 초·재선 의원들에게 전화를 하는가 하면 문 전 대통령의 감사원 조사에 대해서도 (감사원은)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유 사무총장이 이 수석에게 저렇게 보고한 것은 대통령실에 (감사원이) 다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과 똑같다"고 꼬집기도 했어. '왕수석'이 알아보는 건 대통령 보고용이고, 그것을 감사원 사무총장도 모를 리가 없다는 거지.
-물론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측은 "감사원이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기사에 대한 사실 여부를 단순 문의한 것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할 만한 그 어떤 대목도 없다"며 확대 해석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어. 다만 여권 일각에선 이미 윤 대통령과 권 전 원내대표의 '문자 파문'으로 수개월간 곤욕을 치르고도 또다시 헌법상 독립기관인 감사원 사무총장과 대통령실 왕수석이 오해를 살만한 문자를 주고받은 게 또 언론에 노출된 거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와.
-두 사안 사이에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당 윤리위원인 유상범 의원과 이 전 대표 징계에 대해 주고받은 문자도 노출돼 논란이 되기도 했지. 한 번은 실수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비슷한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실수라 볼 수 없겠지. 게다가 문자 논란 이후 "뭐가 문제냐"는 식의 한결같은 대응을 보면, 앞으로도 비슷한 문자 파문은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
◆정부·국회 달군 고교생 만화 '윤석열차' 논란
-고교생이 그린 만화 한 컷을 두고도 이번 주 정치권이 떠들썩했네?
-맞아. 작품명은 '윤석열차'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만화야.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한 기차가 달려가고 있고, 놀란 시민들이 달아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어. 기관사 자리에는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인물이, 그 뒷자리에는 검사복을 입은 4명의 남성이 칼을 들고 있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카툰은 '주로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한 컷짜리 만화'를 뜻해. 그 의미를 생각하면 '윤석열차' 수상에 문제는 없어 보여.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엄중히 경고한다"며 엄포를 놨어.
-고교생 만화 한 컷에 정부기관이 엄중 경고한 이유가 뭐야?
-문체부는 4일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난다"고 했어. 정치적 내용을 풍자한 작품이 카툰인데, 만화 창작 욕구 고취와 어긋난다? 어폐가 있다는 지적이야. 또 얼핏 보면 문체부가 주최 측에 책임을 묻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작품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 문체부가 해당 작품에 대해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말한 점을 미뤄봤을 때 '상당히 불쾌하고 못마땅하다'는 거지.
-국정감사에서도 이 만화가 소환됐다며?
-5일 국회에서 열린 문체부 국감에서 야당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여당과 박보균 문체부 장관을 압박했어. 박 장관은 "문제 삼은 건 작품이 아니라 순수한 미술적 감수성으로 명성을 쌓은 중고생 만화 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만든 만화진흥원"이라고 밝혔어.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가 떠오른다. 고교생 작품을 두고 문체부가 협박성 보도자료를 낸다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했지. 여당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절'이 문제라고 반박했어.
-표절? 고교생이 그림을 베꼈다는 거야?
-2019년 6월 영국 일간지 '더 선'에 실린 만평이 언급됐어.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의 얼굴을 한 기차가 달리고 있고 주변 사람들이 달아나고 있는 만평이지. 당시 보리스 전 총리는 영국의 유럽연합탈퇴(브렉시트·Brexit) 강행을 위해 조기 총선을 추진했고 여론의 비판을 받았는데, 이를 풍자하기 위한 취지였어. 언뜻 보기에 '윤석열차' 작품과 상당히 유사해 보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해.
-표절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고유한 소재를 가져다 쓰면서 이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기려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하지만 '윤석열차'라는 작품의 소재는 무척 보편적이지. 열차에 사람 얼굴을 그린 작품은 오래전부터 있었거든. 멀리는 1984년 영국의 어린이 만화 '토마스와 친구들'부터, 해외 언론에서는 최근까지도 만평에 열차 소재를 즐겨 사용해. 즉, '윤석열차'라는 작품은 일반인들에게 상당히 익숙한 소재를 사용한 만큼 표절이 아닌 '소재의 차용'으로 봐야 한다는 거야.
-표절 논쟁이 한창 뜨거워지고 있을 때, 존슨 전 총리 만평을 그린 원작자 스타브 브라이트가 나타났어. 그는 "'윤석열차'는 표절이 아니다"라고 쐐기를 박았지. 브라이트는 "이 학생은 어떤 형태로든 내 작품을 표절하지 않았다. 작품에 나타난 유사성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 의도한 것이 아니며 이런 일은 시사만평계에서 비일비재하다"고 말했어. 브라이트는 "콘셉트는 유사하지만, 표절과 완전히 다르고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로 절대 표절이 아니다"라며 "만평에 재능이 있어 칭찬받아 마땅한 학생을 포함해 누구든 정부를 비판하면 비난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지.
-원작자가 표절이 아니라고 하고, 기차 소재 만화가 여러 차례 나온 만큼 표절로 보기는 어려워 보이네. '자유'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의 입장이 궁금하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약속했어.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예능프로그램 'SNL 코리아'에 출연해 '대통령이 된다면 SNL이 자유롭게 정치풍자 하도록 도와주실 건가'라는 질문에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SNL의 권리"라고 답했어. 하지만 윤 대통령은 6일 윤석열차 관련 논란에 대해 출근길 문답에서 "그런 문제는 대통령이 언급할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어.
-사실 문화예술계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고 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화예술 공약을 발표하며 "우리 국민 누구나 차별 없이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문화 예술인의 권익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말했거든. 대통령이 된 후에는 첫 여름휴가 때 대학로를 찾아 연극을 관람하기도 했지. 이때까지만 해도 '문화예술에 관심과 애정이 많은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있었어. 하지만 대통령을 풍자한 고교생 만화 한 컷에 문체부가 펄쩍 뛰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하니,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허주열 기자, 신진환 기자, 박숙현 기자, 김정수 기자, 송다영 기자
☞<하>편에 계속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