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 이틀째인 5일, 정치권이 '윤석열차' 블랙홀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의 만화 수상작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엄중조치를 취하자 '여야'가 달려들었다. 여당이 제기한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방문' 의혹도 빛을 보지 못했다. 온라인상에선 '고등학생 그림에 (국감의) 모든 사안을 잡아먹을 셈인가'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문체부는 앞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칼을 찬 검사들을 풍자한 만화 '윤석열차'의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수상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 '명예를 훼손했다'며 엄중 경고했다. 고등학생이 그린 이 작품은 한국문화박물관에 전시됐으며 지난 7∼8월 진행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경기도지사상) 수상작이다. 문체부는 엄중 경고 의사를 밝히며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부천시 소속 재단법인이지만, 정부 예산 102억 원이 지원되고 있다"며 공모전의 심사 기준과 선정 과정을 엄중히 살펴보고 후속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문체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고, 문체위 국감에서도 해당 사건이 도마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윤덕 의원은 질의에 앞선 의사진행발언에서 "웹툰 강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 작품을 두고 문체부가 긴급하게 두 차례 협박성 보도자료를 낸다는 작금의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며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가 떠오른다고 비판했다. 이에 국민의힘 간사인 이용호 의원은 "질의에서 장관, 문체부의 입장을 들으면 될 것인데 마치 문체부가 뭔가 잘못한 것처럼 예단하고 말한다"며 유감을 표명하며 맞섰다.
유정주 민주당 의원도 문체위의 엄중 경고를 두고 "정치적 주제는 행사 취지에 어긋나느냐, 이건 누구의 기준이냐, 여기부터가 코미디"라며 "문체부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 안에서 정치적 주제를 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유 의원은 "이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다른 게 침해가 아니다. 문화예술의 창작에 검열을 만드는 것이 옳다고 문체부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병훈 민주당 의원도 과거 사례를 꼬집으며 문체부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박보균 문체부 장관에게 "2013년 9월 국립국단 개구리라는 작품이 정치적 편향성이 있다며 당시 '시나리오를 고쳐라'라고 수정시켰고, 창작지원대상에서도 배제시켰다. 예술인이 이때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시작이라고 본 것이다"라며 "예술인을 배제시키면서 블랙리스트 사건 일으켰던 몸통이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아시죠?"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30일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 출연한 코미디 프로그램 'SNL코리아'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영상 속 진행자는 윤 대통령에게 "후보님이 만약 대통령이 되신다면 SNL이 자유롭게 정치풍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건가요?"라고 물었고, 윤 대통령은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SNL의 권리입니다"라고 답변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도 정치풍자는 당연한 권리라고 했다. 이 사건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관련 있는 문제인데다가 대통령 뜻과도 배치된다. 또 과거 블랙리스트 사례를 보면 관련자들이 직권남용죄로 처벌했던 것과도 연관돼 있다"고 했다.
임종성 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으로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이 MBC를 제물 삼아 언론의 자유를 옥죄고 있다"며 "언론 탄압에 이어 문화 탄압이 시작됐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당시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를 꺼내 반박했다.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외신이 2019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보도하자 당시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이 기자 이름과 이력을 공개했다. (또) 2019년 4월 신 전대협이 전국 대학가에 '소득주도성장' (비판) 대자보를 붙였다. 당시 대통령 풍자 대자보에 대해 사법기관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내사를 진행했다. 2015년에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을 한 고영주 변호사를 상대로는 민형사상 소송까지 갔다"고 따졌다.
또, 여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배우자 김정숙 여사가 2018년 11월 인도 순방 당시 예비비 배정 과정에서 '타지마할' 방문 결과가 빠졌다며 '전 정부 리스크' 공세를 시도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박 장관에게 당시 김 여사와 동행한 정부대표단 일정 자료를 언급했다. 이어 그는 "이 보고서 어디에도 영부인이 타지마할에 방문한 결과가 안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배 의원은 "문체부 장관에게 보고된 일정 최종보고서에도 타지마할 방문이 없다. 예비비 배정에 일정을 허위보고해 예산을 배정받았다는 증거"라고 꼬집으며 "긴급히 타지마할에 갔다고 해명했지만 귀국 후 순방보고서에서 김 여사가 다녀온 타지마할 일정 보고가 어느 것도 없었다"며 문체부 자체 감사를 요구했다.
실시간으로 국감 유튜브 중계를 보고있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특히 문체위에 산적한 쟁점 사안들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차' 관련 논란 공방만 벌이는 여야가 답답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먼저 문체부의 엄중 경고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민주당 의원들이 질의하는 동안 채팅창에는 '학생에게도 표현의 자유를 줘라' '문체부 장관이 편파적이다' '윤 대통령이 방송에 나와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겠다'며 풍자도 괜찮다고 정부가 뭐라 할 건 아니라고 확답한 바 있지 않나' '고등학생이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걸 그림으로 그렸을 뿐인데, (기관에서)상까지 줘놓고 이제와서 이슈화되니 문체부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말이 안 된다' '정치적 의도랑 정치적 견해는 다른데 학생 그린 그림에 무슨 정치적 의도(문체부의 엄중 경고 사유)가 있다는 거냐'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윤석열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댓글도 있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질의 시간 채팅창에는 '대통령도 해외에 나가서 비속어를 뱉는데, 풍자를 경고하겠다는 게 코미디'라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지나가면 될 걸 고등학생 그림에 딴지를 걸고 있나. 장관이 문제를 더 키우는 격' '미술을 전공한 김건희 여사에게 도슨트를 부탁해야 할 판이다' 등의 비판도 이어졌다.
지나친 여야 정쟁으로 문체위 국감의 주요 사안들이 묻힌다는 비판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고등학생의 풍자 그림을 역 이용해 김건희 여사 관련 국감 이슈를 가리려는 것 아닌가'라며 '음모설'을 제기하는가 하면, '만화로 국감의 모든 사안을 잡아먹고 있다'며 자조적인 반응을 남긴 댓글도 있었다.
한편 박 장관은 '윤석열차' 관련 논란에 관해 해당 작품을 그린 사람이 아닌 수상작을 선정한 주최 측을 문제 삼은 것이라는 해명을 이어갔다. 그는 "심사 선정 기준에서 정치적 색채를 빼겠다고 했는데 그 조항을 삭제하고 공모했기 때문에 문제를 삼는 것"이라고 반박하는가 하면, "윤석열 정부는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 저희가 문제 삼은 것은 작품이 아니다. 순수한 미술적 감수성으로 명성을 쌓은 중고생 만화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만든 만화진흥원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