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오는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야 신경전이 치열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막말' 파문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가져오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와 동시에 외교 라인 등 책임자 경질을 요구하며 압박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부정 여론이 확산하면서 민주당의 대여 공세가 동력을 얻어 한층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민주당 169명 국회의원이 정녕 XX들입니까?"
지난 23일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은 이례적인 대통령의 막말 논란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발끈했다. 앞서 윤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7차 재정공약회의 후 회의장을 나오며 한 막말이 생중계 됐는데, 대통령실이 해당 발언에 대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였다고 해명하면서다. 윤 대통령이 '이 XX들'이라고 가리킨 대상이 '미국 의회'가 아닌 '대한민국 국회'라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거짓 해명"이라며 맹비난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번 사건은 누구의 전언이 아닌 대통령 순방에 동행한 기자들이 촬영하고 목격한 것"이라며 "민주당 의원에게 화살을 돌려보자는 저급한 발상 또한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했다.
'사법 리스크' 부담으로 최근 대정부 발언을 삼가고 있는 이재명 대표도 이번에는 작심 비판했다. 그는 "참 할 말이 없다. 뭐라고 말씀드리겠습니까"라며 "국민은 망신살이고 아마 엄청난 굴욕감, 그리고 자존감의 훼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경험으로는 길을 잘못 들면 되돌아 나오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며 "또 다른 길을 찾아서 헤매본들 거짓이 거짓을 낳고 실수가 실수를 낳는 일이 반복된다"고 했다. 거짓 해명 대신 솔직하게 사과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욕설 파문' 비판에는 친명, 비명이 따로 없었다. 구주류인 '친문' 홍영표 의원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기만 가득 찬 대통령이다. 입법부에 대한 대통령의 무시와 적대감을 생생하게 보여줄 뿐"이라고 비판했고, 문재인 청와대 출신 윤건영 의원은 "변명을 하더라도 정도껏 해야지 너무 구질구질한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는 과격 대응 대신 공세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당내 일각에선 "국민 손에 끌려 내려와야 정신 차릴까(이경 전 부대변인)"라며 탄핵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온 것과 달리, 지도부는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사과와 함께 박진 외교부 장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은혜 홍보수석 경질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당 차원에서 발언 진위를 파고들 경우 자칫 국가 간 민감한 외교 문제로 비화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말 열받고 창피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지 않나. 대한민국 대통령을 깎아내리면 누워서 침뱉기다. 그래서 민주당에선 수위 조절한 셈"이라고 했다.
'욕설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 대표를 의식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와 관련, 최근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친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대표가 윤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국민이 엄청난 굴욕감과 자존감의 훼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는데, 정치권에서 언어의 품격을 논할 수 없는 단 한 사람을 뽑자면 바로 이 대표"라며 이 대표의 형수 욕설 논란을 끄집어 '욕로남불'이라고 반격했다.
민주당은 해외 순방에서 불거진 논란을 동력 삼아 정국 주도권을 쥐고 국정감사까지 적극적인 대정부 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교육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 '막말' 파문이 번진 23일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과 허위 학력 기재 의혹 관련 임홍재 국민대학교 총장 등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단독 채택했다. 통상 상임위 증인 채택은 여야 간사 간 합의로 이뤄지지만 민주당 소속 유기홍 교육위원장이 기립 표결을 강행했다. 민주당은 또 초부자 감세 저지를 당론으로 정하면서 이 대표가 강하게 주장해온 기초연금확대법, 쌀값정상화법 등 7개 민생입법 과제도 정기국회에서 단독으로라도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통령이 권위가 있고 국민으로부터 존중받고 인기가 있다면 아무래도 집권 여당이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춘다. 문재인 정부 때도 민주당에서 불만이 있었겠지만 대통령 지지가 있으니 받쳐주고 참았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지금 그런 분위기가 별로 없다"며 "말 한마디가 나비 효과처럼 국정감사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민의힘은 똘똘 뭉쳐서 수세적으로 할 태도가 줄어들 거고 민주당은 더 공격적으로, 주도권을 가져야겠다며 더 세게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세에 몰린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에 응해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대표는 취임 후 5차례 이상 윤 대통령에게 단독 영수회담을 요청하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거부하면서 윤 대통령 순방 후 여야 대표 다자 회담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도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사법리스크 방탄용"이라며 비판해왔다. 다만 이번 '욕설' 논란의 당사자인 윤 대통령이 사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질 경우 회담 방식을 통한 국면 전환을 시도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