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신당역 사건' 5일 만 침묵 깨고 '재발 방지책' 지시...왜?


李의 '신당역 살인사건' 공개 언급 자제...박지현 "침묵 이해 안 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5일 만에 당에 재발 방지책 추진을 지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관련 공개 발언이나 메시지는 삼가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면서 상대적으로 젠더 의제에는 소홀해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5일 만에 당에 재발 방지책 추진을 지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관련 공개 발언이나 메시지는 삼가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면서 상대적으로 젠더 의제에는 소홀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민주당 최고위 회의에서는 이재명 대표 공개 메시지에 특히 관심이 쏠렸다. 민주당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관련 당 차원의 조치를 논의한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통상 당대표가 모두발언 첫 순서인 것과 달리 이날 이 대표가 마지막 발언자로 나서면서 이목은 더 집중됐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 초부자 감세 저지, 민영화 금지, 쌀값 관련 입법 등 민생 문제만 언급했다.

이 대표는 사건 발생 이후 공개적인 자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에서 관련 언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이날도 '신당역 살인사건 관련 한말씀 해달라' '피해자 빈소가 마련됐는데 방문할 예정인가' 등 취재진 물음에도 침묵을 지켰다. 비공개 회의 자리에서도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을 뿐, 발언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의 신당역 추모공간이나 피해자 빈소 방문 계획에 대해 "아직 관련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신당역 살인 사건'은 스토킹 범죄에 대한 안일한 대처가 피해자의 사망 후 밝혀지며 국민 공분을 사고 있다. 수사에 따르면,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과 직장동료였던 피해자는 지난 3년간 전주환의 스토킹에 시달려왔다. 피해자는 작년 10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 첫 신고 당시 경찰은 범행을 저지른 전주환을 불법 촬영 영상 유포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두 번째 신고에는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당역 추모 공간에는 현재까지도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권인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위원들이 16일 오후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사건이 공론화될수록 지난해 국회 문턱을 넘긴 '스토킹 처벌법'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를 애도하고, 스토킹 범죄에 대한 여성가족부의 미흡한 대처를 지적했다. 회의에서는 스토킹 범죄 피해자 보호 소관 부서를 여가부로 지정하고, 경찰의 피해자 신변보호조치를 비롯해 취업·법률상담·주거·의료·생계안정 등 지원 절차를 규정하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뒷북 상정하기도 했다. 주말 사이 여야는 모두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기로 나서겠다 알렸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신당동 스토킹 살해사건'에 관해 이 대표가 침묵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 공약' 등을 내세우며 '2030세대 여성' 표심 몰이에 나선 바 있다. 민주당은 대선 직후 이 대표를 지지하는 2030 여성들이 대거 입당했다며 '성 평등 정당'을 적극 홍보하기도 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오후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중구 신당역을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이동률 기자

박 전 비대위원장은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의 적극적 대처를 촉구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 문제에 이재명 대표가 침묵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사건 현장도 방문하고 피해자 유족을 위로하는 일정도 없고, 강력한 입법을 주문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대선 때의 이재명 후보라면 누구보다 먼저 이 사건에 대해 얘기했을 것이다. 지금은 왜 그러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앞서 여당 당권주자인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7일 "이 대표가 (신당동 사건에 대해) 아무런 입장이 없는 것이라면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건지 궁금하다"며 "국빈을 모시기 위해 꼭 필요한 영빈관 신축 예산엔 그리고 신속하게 깜짝 놀랐다더니 신당역 역무원 살인사건은 그저 무덤덤하신 것이라면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꼬집은 바 있다. 그러면서 과거 조카의 데이트 폭력 살인사건 변호가 재조명될 것을 이 대표가 우려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았다.

이 대표의 침묵은 최근 연이은 검찰 기소와 수사로 당내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쟁점이 되는 젠더 이슈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보다 조용히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게 적합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사건 관련해서 계속 특별히 말씀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라는 물음에 "당에서 잘 하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 이날 최고위 비공개 회의에선 국회 여가위원장인 권인숙 의원의 '스토킹 처벌법' 법안 관련 보고를 받는 등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최고위 모두발언에서는 고민정 최고위원이 해당 사건과 최근 발생한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을 언급하며 법적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대신 메시지를 냈다.

이날 최고위 비공개 회의에선 국회 여가위원장인 권인숙 의원의 스토킹 처벌법 법안 관련 보고를 받는 등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최고위 모두발언에서는 고민정 최고위원이 해당 사건과 최근 발생한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을 언급하며 법적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대신 메시지를 냈다. /이새롬 기자

회의 이후 당 차원의 '스토킹 처벌법' 관련 움직임도 있었다. 안 대변인은 "신당역에서 발생한 역무원 살해사건으로 희생된 피해자의 영전 앞에 제1야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 대표가 스토킹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 관련법 제정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을 적극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상훈 시의원의 엄중 문책도 지시했다. 앞서 지난 16일 이 시의원은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여러 가지 폭력적인 대응을 남자 직원이 한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당 안팎에서 '2차 가해 막말'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은 향후 입법 보완책 마련과 막말 의원 신속 징계 등 '투 트랙'을 병행하며 '스토킹 처벌법' 대책에 힘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제까지는 '스토킹 처벌법'이 '피해자 보호 중심'에 의존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전혀 효과를 발생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돼서 이제는 '가해자 행위 제한'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여가위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상정됐으니 새로운 법을 내기보다는 계류된 법안들을 빠르게 통과시키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many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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