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박숙현·송다영 기자] "지옥에서 다시 온 것 같다."(2020년 7월 17일 대법원 무죄 판결 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발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이 됐다. 검찰이 이 대표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하면서 자유의 몸이 된 지 2년 만에 다시 지옥같은 고통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검찰의 기소를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부부 의혹과 관련해 '국정조사전담진상규명단' 등을 꾸려 신속 대응키로 했다. 유례없는 당대표 기소로 혼란한 정국을 맞이하게 된 민주당은 '이재명 지키기'로 당원과 의원들의 내부 결속을 다지는 한편 민생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당 전체가 리스크를 떠안게 된 만큼 정부·여당을 향한 공세는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 8일 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표 혐의로 불구속기소, 백현동 개발 의혹 관련해선 일괄 기소됐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2심에선 유죄가 인정됐지만 지난 2020년 7월 대법원에서 뒤집히면서 유력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2년 만에 다시 족쇄를 차게 됐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검찰 기소 가능성을 일찍이 감지하고 당 차원 대응의 예열을 올려놨다. 이미 이 대표뿐 아니라 배우자 김혜경 씨 등 검찰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소 결정이 난 날 오전부터 박홍근 원내대표는 "추석 명절을 하루 앞두고 검찰의 야당 당대표와 의원들의 기소가 유력하다고 한다. 실제 그렇게 된다면 이는 역사상 유례없는 정치 기소"라며 중단을 촉구했다. 기소 결정 직후 열린 긴급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반(反)협치의 폭거"라며 "야당 대표를 제물로 삼아 윤 대통령 본인의 무능한 실정을 감추려는 최악의 정치 기소를 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민주당은 이번 기소를 시작으로 앞으로 전방위로 확대될 수사기관의 압박이 '정치적 행위'라고 항변한다. 이 대표를 '포토라인'에 세워 야당 당대표를 망신주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이렇게 국민들을 무시하고 과거 정치적 문법과 신공안시대로 돌이키려고 하는 이 부분은 반드시 국민적 저항을 받게 될 것이고 (윤 대통령의) 임기가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추석민심' 기자간담회에서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것이 세상 이치다. 오죽하면 낮에는 대통령, 밤에는 검사라는 말까지 나오겠나"며 "윤 대통령은 검통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저희 당 내부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에 대한 수사·기소가 부당하고 편파적이라는 것에 호응하는 여론이 높게 나왔다"고 주장하면서 '이 대표 수사가 적합하다는 여론이 더 높다'는 지적에 대해선 답변을 피했다.
당대표 기소로 '유능한 민생 정당'을 외치던 민주당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 대표가 최종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22대 총선을 당대표가 부재한 상태에서 치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예상된다. 아울러 이 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법리적 해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공직선거법은 '당해 선거'에서의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당선무효를 규정하고 있어 이번 혐의와 무관하지만 국회법상 '의원직 퇴직' 규정 해석은 분분하다. 관련법에는 의원이 피선거권이 없을 경우 퇴직하도록 돼 있다. 공직선거법은 벌금 100만 원 이상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을 상실하게 된다. 중앙선관위로부터 보전받은 대선 선거비용 430억여 원도 반환할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이번을 계기로 전당대회 전 줄기차게 '사법 리스크'를 경고해온 비명계 인사 간 갈등이 불거져 당내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유죄가 나올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입장이다. 박범계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장은 지난 8일 긴급 최고위에서 "최근 대법원 판례는 첫째 다소간 허위의 내용, 표현상의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대선 정국에서 국민적 사후 검증에 맡겨놔야 한다는 판결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자기부죄 금지의 원칙(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에 입각해서 적어도 대장동과 백현동 공세에 이 대표로서는 자기방어를 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다"며 "과연 이것이 지난 대법원 판례에 비춰서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故 김문기 씨 관련 발언에 대해서도 "그분을 이재명 대표가 알았느냐 몰랐느냐 라는 관점은 내심의 영역이고 과연 그것을 객관적으로 알았다, 설령 어디서 사진이 찍힌 것이 있었고 거기에 같이 동행한 무언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법률적으로 의미 있는 인지로 단죄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방어 전선을 구축하는 동시에 정부·여당에 대한 공세 수위도 높이기로 했다. '김건희 특검법'을 당론으로 추진한 데 이어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향한 국정조사를 준비하는 '진상규명단' 구성,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 구성 등으로 강공 모드에 나설 예정이다. 국민 부정 여론을 키워 윤 정부에 부담을 안기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의혹진상규명단'은 현재 민주당 상임위별로 분산된 대통령실 관련 의혹들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앞서 민주당은 윤 대통령 집무실·관저 관련 의혹 및 사적채용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도 제출한 바 있다. 단장은 청와대 출신인 한병도 의원이 맡았다.
한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진상규명단 활동을 통해 국정조사 전 현재 언론에서 보도된 것 이외에 대통령실 관련 비리와 윤석열 정부 전반(김 여사 포함) 의혹들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파헤칠 것"이라며 "조사 내용은 국정감사와 (10월에 있을) 국정조사에 모두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정부의 표적·편파수사에 항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원내 기구로 법무부 장관 출신인 박범계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또 정태호 의원이 간사를, 설훈·전해철·고민정 의원이 상임고문을 맡았고, 12일 기준 26명의 현직 의원과 외부 인사로 구성됐다. 이들은 3개의 분과를 두고 △당 지도부 △전임 정부 △현직 의원과 민주당 관련 인사들에 대한 정치보복 대책을 마련한다. '야당 탄압'성 편파 수사는 규탄하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김 여사가 연루된 사건들에 대해서는 신속한 수사를 촉구할 계획이다.
박 위원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경찰에서는 김 여사에 대한 사건들은 대부분 무혐의나 불송치가 나고 있는 상황인데, 참 '소가 웃을 일'인 것"이라며 "불통·편파·불공정을 상징하는 정치 탄압 수사 행위에 대해 추석이 끝날 무렵 당 지도부와 함께 대책 마련 등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김건희 특검법'의 경우 법안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은 특검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통해서라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위해선 법사위 재적 위원 5분의 3(11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캐스팅보터인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는 "특검이 추진된다면 모든 민생 이슈를 잡아먹을 것"이라며 법안 추진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영수회담 등을 통해 당사자가 직접 결판을 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통상 선거과정에서 벌어졌던 정치적 공방은 선거가 끝나면 서로 고발을 취하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이 대표가 대선 후 제1야당 대표로 돌아와 "3無(무능력·무책임·무대책) 정권에 맞서겠다"고 외치면서 윤 정부도 견제할 수밖에 없는 극강 대치 상태에 빠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대선 경쟁자였던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만나 '여야 협치'를 논의할 경우 정쟁이 자연스레 소강상태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영수회담에서 혐의사실 퉁치자는 게 아니고 쌍특검을 하든 방법을 모색하고 경제 물가로 여야 영수가 가야 한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검찰 기소 대응과 거리를 두고 당분간 '민생 행보'에 주력할 예정이다. 민주당에 따르면 이 대표는 향후 매주 현장 최고위를 열고 민생 현장 의견을 청취한다. 이 대표는 검찰 기소 직후 윤 대통령을 향해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언제든 초당적 협력을 하겠다. 여당이 함께하는 것도 좋다"며 영수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 차원에서는 이 대표 의지가 반영된 '기초연금 40만 원' 등 입법 과제를 선정해 민생 이슈에 집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