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곽현서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대구 기자회견' 후폭풍이 지속되고 있다. 보수의 텃밭 대구에서 당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강도 높은 비판에 당내 의원들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다. 당대표에서 저격수가 된 이 전 대표를 향한 당내 시선은 싸늘한 듯 하다.
지난 5일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전 대표가 전날 대구에서 당원들과 만나 기자회견을 한 것에 대해 '자중하라'며 입을 모아 경고했다. 당이 지금의 비상 상황에 오기까지 이 전 대표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전 대표가 "박근혜 탄핵 때 보다 더 위험하다"며 초선 의원들을 향해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함) 행태를 보인다고 한 것을 두고 "정치를 하는데 너무 과한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직 당대표를 지낸 만큼 자신의 말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는 일침이다.
전날 이 전 대표는 대구 김광석 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달 26일 법원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 직무 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후 9일 만이었다. 당시 이 전 대표는 "2022년 지금, 대구는 다시 한번 죽비를 들어야 한다. 공천 한 번 받아보기 위해 불의에 귀부한다면, 대구도 그들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며 "권력자의 눈치만 보고 타성에 젖은 정치인들이 대구를 대표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핵관을 '졸렬하다'고 저격하는가 윤 대통령을 향해선 "지적할 자유가 있다"고 분개했다.
이와 관련 당내에선 부글부글한 비판 여론이 싹튼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전 대표의 기자회견을 어떻게 보셨나'는 질문에 "국민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원이 어떻게 생각할지 심사숙고해서 자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공격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결국 부메랑이 되어서 이 전 대표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기현 의원도 이 전 대표를 행태를 두고 "딱하다"고 훈수를 뒀다. 김 의원은 "편향된 시각으로 자신은 항상 옳고, 항상 정의라고 여기며 세상을 재단(裁斷)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적"이라며 "편향된 인식체계로 세상을 보면, 자신이 가장 똑똑하고 자신은 절대 오류가 없으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전부 잘못된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북 칠곡에서 책을 집필하며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 이 전 대표는, 자신을 향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과 당을 겨냥해 장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제 종헌관으로 칠곡 석담종택에서 불천위 제사에 참여했습니다. 에헴"이라는 글을 올렸다. 사진 속 이 전 대표는 노란색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채 제사를 올리는 모습이다. 그가 입은 제례복은 대선 기간이었던 지난해 12월 29일 경북 안동 도산서원을 찾은 윤 대통령이 착용한 노란색 삼베 두루마기에 갓을 쓴 것과 같은 차림이다. 이에, 의도적으로 동일한 색상의 제례복을 입어 윤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또 당이 새 비대위 전환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이 전 대표는 권 원내대표가 이날 신임 비대위원장을 발표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언론 기사를 공유하며 "가처분 맞을 것이 두려워서 비대위원장이 누군지도 못 밝히는 비대위를 이제 추진하나"라며 "가처분이 아니라 민심을 두려워하면 안 되느냐"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은 이날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를 연달아 개최해 새로운 비대위 출범을 위한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당이 비대위 출범을 위한 '비상 상황'임을 명확히 규정한 것이다. 개정한 당헌에는 '비대위 구성과 동시에 기존 최고위는 해산, 당 대표와 최고위원 지위·권한도 자동 상실', '비대위원장의 사고나 궐위로 직무 수행을 못 할 때 원내대표, 최다선 의원 가운데 연장자순으로 직무대행' 등 최고위 및 비대위 운영에 관한 세부적인 규정도 담았다. 이 전 대표의 직분을 '전(前) 당대표'로 못 박겠다는 의도다.
당이 '이준석 지우기'에 본격화한 상황에서 이 전 대표의 반격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 전 대표가 일찌감치 법적 투쟁을 예고한 상태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오는 8일 새 비대위가 출범하는 즉시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 전원의 직무 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새 비대위 또한 무산될 가능성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비대위 체제를 밀어붙이고, 이 전 대표 역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여권 지도체제를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관계자는 <더팩트>와 만나 "이 전 대표와의 갈등이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모양인데 당과 윤 대통령에게 모두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몇몇 의원들은 화를 내다 포기한 모습도 보인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도 "이 전 대표가 초선 의원을 저격했는데, 당내 여론이 좋지 않은 것 같다"며 "앞으로 당과 이 전 대표를 향한 갈등 관련 후폭풍이 더 거세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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