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집권여당의 책임은 무한입니다. 국민의힘이 지금의 대한민국 위기 속에 민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못했습니다. 당내 갈등으로 심려만 더 끼쳐드렸습니다.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선택해 주신 절절한 마음을 잘 알기에 사죄드리고 철저히 반성합니다.'(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결의문 내용 중)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지난달 26일 연찬회에서 당 내홍에 사과하고 민생정당,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지향하며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 민생을 책임지는 정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러한 여당 의원들의 선언이 꼭 현실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결의문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국민의힘 내분은 격화하는 모양새다. 물론 연찬회가 끝난 날 법원이 이준석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는 돌발 변수가 있었다. 법원은 국민의힘이 비대위를 설치할 정도로 '비상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했다. 충격과 혼돈에 휩싸인 당 지도부는 서둘러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격론 끝에 국민의힘은 지난달 30일 의원총회를 열고 추석 연휴 전 새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당헌 개정안을 추인했다. 이는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일부 중진 의원들은 새 비대위 출범에 반대하고 나섰다. 서병수 의원은 전국위원장직을 내려놨고, 조경태 의원은 KBS라디오에서 "비대위에 꿀을 발라놨나"라는 격한 표현까지 쓰며 반발했다.
초·재선 의원들은 당내 중진의원들을 향해 개별 의견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당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에 새 비대위 출범을 지지한다고도 했다. 당이 둘로 쪼개지는 상황까지 간 것이다. 지난해 말 이준석 전 대표의 성 비위 의혹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해를 넘기고 계절이 바뀌도록 지속되는 내홍에 당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 듯한 인상까지 준다.
국민의힘 내홍 사태는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가 비대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추가로 가처분 신청을 낸 사건의 심문기일이 오는 14일로 잡혔다. 국민의힘도 강제집행정지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향후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 전 대표가 다시 이긴다면 국민의힘의 내홍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2일 새 비대위 구성의 첫 관문인 상임전국위원회를 소집해 당헌 개정안을 심의하고 5일 전국위에서 의결한다는 계획이다. 이르면 9일 새 비대위가 출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 속전속결로 새 비대위를 띄우겠다는 계산이다. 법원이 또다시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는데도 국민의힘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이 쏟아진다.
새 비대위가 출범하면 권성동 원내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 유력하다. 장제원 의원도 "계파활동으로 비칠 수 있는 모임이나 활동 또한 일절 하지 않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이자 당 내홍의 중심에 있는 두 사람이 2선으로 후퇴하더라도 당내 반발이 잦아들지는 모를 일이다. 권력을 향한 또 다른 당내 갈등의 불씨도 남아 있다. 과연 국민의힘의 정상화는 언제쯤일까. '정치 없는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