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대표직에서 내쫓기 위해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을 중심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이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지난 26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51민사부는 이 대표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국민의힘 주호영 비대위 체제'는 출범(8월 18일) 열흘도 안 돼 좌초했다.
법원의 결정으로 국민의힘은 대표도 없고(이 대표 당원권 정지 상태), 비대위원장(주호영 의원)도 직무가 정지된 진짜 '비상상황'을 맞게 됐다. 국민의힘 측은 판결에 불복해 이의신청서를 제출했고,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항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비대위 전환에 대한 내용·절차적 문제를 모두 지적한 재판부가 이의신청을 받아들일 확률은 매우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항고에는 수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이 대표가 법적 대응을 이어갈 경우 국민의힘 내홍 장기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27일 오후 4시부터 5시간가량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향후 대책을 논의한 결과 당헌당규를 정비한 뒤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당헌당규를 개정해 비대위를 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항을 넣은 뒤 다시 새 비대위를 출범시킨다는 구상이다. 또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안을 중앙당 윤리위원회가 조속히 처리해줄 것을 촉구했다.
특히 이 사태를 권성동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수습하고, 권 원내대표의 거취는 사태 수습 후 의원총회를 통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법원의 제동에도 전당대회를 통해 국민과 당원이 선출한 이 대표를 반드시 내쫓겠다는 방침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이 방침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헌법 제13조 2항)는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사후에 당헌·당규를 고쳐 다른 비대위를 구성하려는 시도는 이 대표가 다시 가처분 신청을 낼 경우 또다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집권여당의 내홍이 지속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도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초 집권여당이 새 정부 출범 초기 이례적으로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기로 한 것은 '대통령의 문자'에서 시작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대표의 '성 상납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윤리위가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7월 7일)를 내린 직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당 대표의 '사고'로 보고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아 당을 운영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윤 대통령이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보낸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텔레그램 메시지가 공개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다음 날(27일) 당시 최영범 홍보수석(현 대통령 대외협력특보)은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연한 기회에 노출된 문자 메시지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거나 거기에 정치적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건 조금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말과 달리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내부 총질하는 당 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속도전을 펼쳤다.
29일 배현진 최고위원의 갑자스러운 사퇴를 시작으로 조수진·윤영석 최고위원 등이 잇달아 사퇴하면서 의도적으로 최고위원회의 기능을 상실시켰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당 비상상황이라고 의총, 최고위(사퇴한다던 최고위원들이 의결에 참석), 상임전국위에서 규정했다. 나아가 전국위를 열어 당헌까지 바꿔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당초 이 대표의 징계에 대해 "국민의힘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다"면서도 "대통령으로서 늘 제가 말씀드렸지만, 당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고 그게 이 당의 그 당을 수습하고 또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당으로 이렇게 해 나가는 데 대통령이 거기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윤 대통령은 권 원내대표에게 '내부 총질 당 대표' 메시지를 보내 우회적으로 당무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나아가 윤 대통령은 25일 현직 여당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주호영 비대위 체제 국민의힘이 개최한 집권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지금부터 당정이 하나가 돼서 오로지 국민, 오로지 민생만을 생각할 때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다 해소가 되고 우리 정부와 당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사상 최초 현직 대통령 직접 참석 외에 대통령비서실에서 김대기 비서실장을 비롯해 6수석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정부 측에서 장·차관 39명과 외청장 24명 등도 참석해 주호영 비대위에 힘을 실어줬다.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이 뒤에서 이 대표를 비판하고, 그를 내쫓은 뒤에 출범한 비대위에 확실히 힘을 실어준 만큼 법원의 결정에 따른 충격파는 윤 대통령에게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대통령실은 여전히 이 대표를 쫓아내려는 국민의힘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8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 혼란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을 묻는 말에 "당 의원들은 개별적 독립 주체이자 헌법기관"이라며 "중지를 모아 내린 결론에 대해 일이 잘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당헌당규를 다시 고쳐서 새 비대위 출범시키겠다는 국민의힘 의총 결정을 사실상 지지한 셈이다.
이런 대응에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인 최재형 의원은 이날 SNS를 통해 "가처분을 둘러싼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양두구육이 아니라 징계 이후 조용히 지내던 당 대표를 무리하게 비대위를 구성해 사실상 해임했기 때문"이라며 "그래도 모든 것이 빈대 때문이라고 하면서 초가삼간 다 타는 줄 모르고 빈대만 잡으려는 당"이라고 꼬집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27일) 민주당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집권당이 권력 싸움에 날을 지새우면서 제대로 정비하기는커녕 권력 싸움으로 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며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윤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이 선거 때 이 대표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 대표가 계속 본인을 괴롭혔던 그 장면만 기억하며 내부 총질하던 당 대표를 몰아내려고 했던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 비대위원장은 "그런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윤핵관들이 이 대표를 윤리위 징계를 하도록 그렇게 유도한 것 아닌가"라며 "오늘날 저 집권당의 혼란과 그 집권당의 혼란으로 온 대한민국 혼란의 책임은 윤 대통령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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