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사적 이해관계의 등록·공개 대상 및 범위 측면에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보다 확대된 것으로, 다른 선진국 의회와 비교해 보아도 유례없이 강력한 의원 이해충돌 방지 방안을 담고 있다. 국회의원 스스로 일반 공직자보다 강화된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적용받음으로써 공정하고 청렴한 공직문화 조성에 기여하겠다. (2021년 4월 22일, '국회법 개정안' 운영위 의결 당시 김태년 국회운영위 위원장)"
국회의원 대상 '이해충돌방지법'이 시행된 지 2개월이 넘었지만, 국회에선 후속 조치 논의를 손 놓고 있다. '사적 이해관계 정보' 등록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고, 국회에 등록된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어 사각지대 발생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광범위한 정보 공개보다 업무 효율성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법안이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조속한 공론화가 필요해 보인다.
'국회의원 이해충돌방지법'인 국회법 개정안은 지난해 4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지난 5월 30일부터 시행됐다. 2013년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제정법이 첫 발의된 후 8년만의 일이다. 지난해 정치권을 강타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직자 부동산 투기 파문이 입법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국회의원은 그 지위를 남용해 자신과 타인의 재산상의 권리·이익을 취하거나 알선할 수 없다'고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 충돌' 문제는 국회에서 매번 반복돼왔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토교통위원회 야당 간사를 지낸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은 국토위원으로 6년간 활동하면서 친인척 명의 건설사에 400억 원가량 공사 수주에 영향일 끼쳤다는 의혹을 받았고, 20대 국회 후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를 지낸 손혜원 전 민주당 의원도 전남 목포시 도시재생 사업 계획을 미리 파악해 차명으로 부동산을 매입한 혐의로 논란이 된 바 있다.
개정법은 통과 당시 '이해충돌'에 대한 국민 불신이 팽배해진 상황에서 상임위 직무관련 이해충돌 상황을 인지한 경우 사전에 신고하도록 하고, 회피 의무를 부과했다며 환영을 받았다.
법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회의원 선출 후 30일 이내에 사적 이해관계 정보를 국회에 등록하고, 이해충돌 여부를 심사해 위원회를 선임하도록 하며, 위원 선임 후에도 이해충돌 상황을 인지한 경우 의장이나 여야 원내대표에게 스스로 신고하고 상임위를 회피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개정안에서 규정한 사적 이해관계 정보 등록 대상은 △본인·배우자·직계존비속이 임원 등으로 재직 중이거나 자문 등을 제공하는 법인·단체의 명단과 그 업무내용 △의원 당선 전 3년 이내에 본인이 재직 중이거나 자문 등을 제공하는 법인·단체의 명단과 그 업무내용 △본인·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의 주식 및 부동산(소유권 및 전세권) 보유 현황 △의원 본인의 민간 부문 사업 또는 영리행위 등이다. 입법 논의 과정에서 당초 여야는 국회의원 사적 이해관계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국회의원 특혜' 논란이 일자 등록 내용 중 의원 본인 관련 내용만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국회에서 아직 후속조치가 논의되지 않아 정보 공개, 심사 등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 공개' 조항은 행정부나 사법부 고위 공직자와 달리 국회의원의 특수성을 고려해 유권자 알 권리 보장 측면에서 사적이해관계 정보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입법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법 시행 2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정보 공개는 막혀 있다.
<더팩트>는 국회사무처에 '21대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등록한 사적 이해관계 정보를 정보공개청구시 요청할 경우 확보할 수 있나'라고 문의했으나, '불가' 답변을 받았다. 국회사무처는 "국회법(32조2의 1항)에서는 의원 본인에 관한 사항은 공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만 (32조2의5항) '공개 등에 필요한 사항은 국회 규칙으로 정한다'고 위임이 돼 있다. 그런데 (국회 운영위에서)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운영위에 위임된 공개 절차와 범위 등에 대한 세부 지침을 정하지 않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 의원실도 국회 규칙이 미비한 상태에서 개별적인 정보 공개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21대 국회 후반기 18개 상임위원장실에 '국회에 등록한 사적 이해관계 정보를 언론에 공개할 의향이 있나'라고 문의한 결과, 답변을 보류하거나 공개가 어렵다는 입장이 다수였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정청래 의원실 관계자는 "저희로선 의원실에 공식적으로 요청이 들어온다면 검토할 수 있다. 저희는 거리낄 게 없어서 공개를 하든 안 하든 상관이 없다. 다만 (공개) 안 한 분들이 '뭐 있는 거 아냐'라는 오해를 받으실 수 있는 상황이라 그런 부분이 우려된다"고 했다.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전해철 의원실 관계자도 "세부 규칙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적인 자료를 (공개)하는 것은 논의해야 할 문제다. 또 저희가 공개하겠다고 해버리면 '여기는 공개했는데 다른 의원실은 왜 못하겠다는 거냐' 하는 문제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회 등록 정보 대상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국회 윤리심사자문위 심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 국회법상 본인·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의 주식 및 부동산 보유 현황을 공개하게 돼 있는데, 등록해야 할 주식·지분·자본금의 '비율 또는 금액'은 국회 규칙으로 정하도록 위임한 상태다. 그러나 국회는 관련 규칙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
실제 21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가 구성된 이후 이해충돌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야권은 조명희 의원(국민의힘·비례)이 국토위에서 제척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이 지오씨앤아이, 유앤지아이티라는 공간정보기술을 다루는 회사를 경영해왔고, 현재도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데다, 조 의원이 두 업체 주식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이에 대해 조 의원은 공직윤리법상 보유 주식 백지신탁 등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도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인지될 경우 관련 상임위를 사전에 회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개정 국회법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우려는 이어지고 있다.
의원 이해충돌 방지 감찰 업무를 수행하는 8명의 윤리심사자문위 위원도 각 교섭단체 원내대표이 추천해 위촉되므로 독립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적극적인 의원 재산공개를 통해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이 자율 규제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발간된 국회 입법조사처 '미국·영국 의회 이해충돌 방지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윤리위원회(Committee on Ethics)가 의원들의 재산 신고를 받고 적절성 여부를 검토한 후 의원의 퇴임 6년 후까지 일반 국민에 공개토록 하고 있다. 영국 의회도 이해관계 변화가 발생할 때마다 28일 이내에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등록 대상은 주식이나 부동산 외에도 일정 금액 이상의 국외 출장과 선물 등까지 포함하고 있다. 또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해관계 등록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의회윤리감찰관도 두고 있다. 본회의나 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할 때 자신과 관련될 수 있는 이해관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공표도 하게 돼 있다.
'이해충돌방지법' 사각지대 해소와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소관 상임위인 운영위는 21대 국회 원 구성 이후 첫 회의도 열리지 않은 실정이다. 국회의원이 이해충돌 방지에 솔선수범하겠다며 국회법을 통과시켰지만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사자인 국회의원들 사이에선 과도한 정보공개로 인한 실무적 어려움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운영위 소속 한 의원은 "딜레마가 있다. 이해충돌 방지의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면 만들수록 예외적인 상황들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것과 업무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기한다는 차원의 조화도 필요해 보이는데 기준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실무진도 곤혹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해충돌 방지 판례를 쌓아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래서 '세부 규칙을 왜 안 만드느냐' 이렇게만 이야기하기엔 조금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사적 이해관계 정보 공개'에 대해서도 "사적 이해관계라고 하는 게 개인 정보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이다. 그래서 등록하면서도 실제로 이해관계에 충돌되는 것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엉뚱한 피해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인사청문회도 (과도한 정보 공개로) 투명하다 보니 엉뚱한 가족 피해 같은 게 발생하지 않았나. 이해충돌 방지 부분는 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현재 입법 과정에서 고민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충돌 방지 세부규칙을) 공론화해서 구체화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공론화를 계속해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운영위 소속 의원도 "(사적 이해관계 등록 대상을) 과도한 범위로 지정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신뢰 회복' 차원에서 마련한 법안이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정치권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선영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회가 법을 개정한 지 1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후반기 국회 원 구성 당시 이해충돌 여부에 대해선 전혀 검토되지 않은 채로 상임위 배분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제도가 도입됐다고는 하나 국회가 국회 규칙을 제정하지 않아서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 규칙을 제정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국회 운영위도 사실상 제대로 못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의 업무 방기로 이해충돌 방지 제도가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 대해 문제의식을 스스로 느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해충돌 방지 제도의 핵심은 의원들 스스로 이해 충돌 소지가 있는지, 없는지 항상 조심하면서 의정활동 하도록 하는 게 1차적이지만 스스로 조심하지 못한 부분은 2차적으로 시민이나 언론이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적 이해관계 정보에 대해 원칙적으로 누구나 접근 가능한 상태로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간사는 "제도 시행이 처음이기도 하고 선례가 분명하지 않으니 처음에는 헤맬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해관계 충돌 문제가) 계속 터지고 있다. 국회 신뢰를 회복하고 싶으면 (의원들이) 먼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