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은 정치활동에 없어선 안 될 토양이다. 동시에 정치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정치인의 정치생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최근 김승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정치자금으로 개인 차량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약식기소했다. 정치자금의 대부분은 지지자들의 후원금, 선거보전비용으로 채워진다는 측면에서 '네돈내쓴(네 돈으로 내가 쓴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국민의 의혹을 사는 일이 없도록, 공명정대하게, 정치활동을 위해서만 쓴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21대 국회에서 이 조건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더팩트>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2020년 후반기, 2021년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을 집중분석했다. 나아가 공정한 정치자금 사용을 위한 개선 방향을 모색한 '네돈내쓴 정치자금' 기획 5편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박숙현·김정수 기자] #1.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임명 18일 만에 사임했다. 인사청문회 대상은 아니었지만, 야권의 검증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당시 논란 중 하나가 '정치자금 사적 사용'이다.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활동한 그는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기 직전 정치자금 5000만 원을 더불어민주당 의원 단체인 '더좋은미래'에 기부했다. 여기까지는 의원들의 통상적인 후원 행위와 다를 게 없다. 문제는 그가 '더미래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자신이 낸 후원금을 출연해 일부를 임금과 퇴직금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셀프 후원' 의혹이 제기됐고, 대법원에서 200만 원 벌금형을 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논란이 불거지고 나서야 위법으로 결론 내렸다.
#2.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2019년 인사청문회에서 '정치자금 사적 사용'으로 낙마 위기를 겪었다. 2017년 1월 '의원 간담회' 명목으로 충남 논산 주유소와 식당에서 정치자금을 약 19만 원 사용했다고 지출 내역을 보고했는데, 아들의 육군훈련소 수료식 참석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검찰은 지난 3월 추 전 장관에게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추 전 장관은 2014년 1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딸이 후원하는 이태원 식당에서 후원금으로 약 250만 원 상당을 사용한 사실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났지만, 정치자금법 위반 공소시효인 7년이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3. 김승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검증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 전 후보자는 20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2017년 2월~2020년 5월 업무용 차량(G80)에 대해 렌터카 보증금과 월 대여비를 정치자금으로 지불하고 의정활동이 끝난 뒤 928만5000만 원 사비로 인수했다. 사실상 정치자금으로 개인 차량을 헐값에 사들였다는 논란이 일었다. 선관위는 문제가 제기되고 나서야 김 전 후보자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김 전 후보자는 약식기소됐다.
위 사례에서 언급된 인사는 모두 '정치자금' 논란이 현역 국회의원 시절이 아닌 고위공직자로 임명되기 위한 인사 검증 과정에서 드러났다. 선관위가 매년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중 사적 경비나 부당한 용도로 쓴 내역은 없는지 파악하지만, '구멍'이 있었던 셈이다. 금지되는 정치자금 지출 범위가 모호하고,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취약하며, 사후 검증 절차가 미흡한 점 등 오랜 기간 제기돼 온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김승희' 논란이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다.
◆비데부터 돋보기, 손거울, 밑반찬까지...'네거티브식' 지출 규제
현행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의 핵심은 '정치활동이 아닌 목적'으로 쓰였는지다. 정치자금법 2조에는 '정치자금은 정치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경비로만 지출하여야 하며, 사적 경비로 지출하거나 부정한 용도로 지출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즉 △가계의 지원·보조 △개인적인 채무의 변제 또는 대여 △향우회·동창회·종친회, 산악회 등 동호인회, 계모임 등 개인 간의 사적 모임 회비 그 밖의 지원경비 △개인적인 여가 또는 취미활동에 소요되는 비용 등을 제외하고는 지출이 가능하다. 명확히 금지한 행위만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다.
21대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지출 내역에는 선뜻 정치활동용이라 보기 어려운 항목들이 있었다. 권명호 국민의힘(초선, 울산 동구) 의원은 2020년 8월부터 '비데 임대' 비용으로 총 35만여 원을 지출했다. 같은 당 강대식 의원(초선, 대구 동구을)은 6000원 상당의 손거울을 구입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우원식 의원(4선, 서울 노원을)이 '지역사무실 밑반찬' 명목으로 6만5000원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지역 사무실 운영비'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을 내놨다.
장경태 의원(초선, 서울 동대문을)은 '지역수행용 자전거 구입'에 23만1000원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했다. 정치자금 운용 기준상 체력단련 물품 구입은 개인적인 여가·취미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이기에 원칙적으로 지출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장 의원실 관계자는 "자전거가 두 대다. 선거 때와 지역 일정 때 사용한다. 동대문은 주차 공간이 없어서 이동하기 쉽지 않고 과태료나 주차 문제도 있어서 의정활동상 그렇게 (이용)하고 있다. 취미 자전거 용도로 생기지도 않았다. 자전거 취미도 없다"고 설명했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초선, 비례)은 24만 원 상당의 돋보기를 구입했다. 정치자금 운용 규칙에선 이·미용 비용, 안경 구입 비용 등도 정치활동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는 한 지출을 지양하도록 하고 있다. 윤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회의가 있었는데 기존에 쓰던 돋보기가 깨져 당시 행정비서가 국회에서 급하게 구입했다고 한다. 의원님은 당시 행정비서로부터 의정활동에 필요한 물품은 구입 가능하다고 보고 받았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허용 가능 품목에 대한 범위가 상당히 넓을 뿐 아니라 지출 상한선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공명정대하게' 지출됐는지 여부는 목적과 지출처, 전후 경위 등을 고려해 그 지출이 필요하다고 평가하면 가능하다. 사실상 자의적 판단이 작용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김상희 의원(4선, 경기 부천병)은 국회부의장 시절인 지난해 2월 8일 한복 한 벌과 두루마기를 하루 대여한 비용으로 박술녀한복에 77만 원 지출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부의장이면 (의전) 서열 9위이고 해외에 한복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촬영할 필요가 있어서 대여했다. 알다시피 그곳은 대여를 잘 안 해주는 곳인데, 잘 부탁드려서 대여를 해줬다. 그래서 비용이 그만큼 좀 많이 들었다. 그쪽 (대여 업체)에서도 의미 있는 분이 입는 거니 협조하겠다고 해서 진행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된 대여료에 대해선 "그쪽에서 그 가격을 제시해 저희로선 드린 것이다. 사실상 두 벌이다. (다른 업체도) 몇 군데 알아봤지만 격에 맞는 한복을 하고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여러 조건상 (해당 업체) 한복이랑 가장 맞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술녀한복 측도 "요즘에는 대여를 거의 90%는 줄였다. 일반인들에게는 여기에서 촬영할 때만 (대여)해준다. (다만 김 부의장은) 특수한 분이라서 해드렸다"라며 대여료에 대해선 "중국에서 대량으로 지어오는 한복과 우리가 한땀 한땀 44년 걸어온 한복은 다르다"고 했다.
◆'뒷북 고발' 선관위, 검증 한계...정보 공개 '깜깜이' 여전
정치자금 오남용 지출이 있었더라도 사후 검증 시스템이 탄탄하다면 거를 수 있다. 각 국회의원 후원회는 회계년도 이후 다음 해 1월이나 2월까지 정치자금 회계보고를 한다. 이 과정에서 수입·지출 내역과 함께 영수증과 그 밖의 증빙서류 사본, 자체 감사기관 감사의견서, 대의기관 등의 심사・의결서를 제출하면 각 지역 선관위에서 검토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회계 보고를 받고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현지 실사나 서면 심사를 다 한다. 또 해당 회계 책임자와 심도 있게 검토한다. 자체 감사는 1차적으로 본인들이 한 번 걸려서 내는 것이고, 그걸 선관위가 다시 받아서 검토를 거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련의 '정치자금 사적 사용' 논란이 반복되고, 선관위가 '뒷북' 조치를 취하면서 검증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희 전 후보자는 임기 종료를 앞두고 렌트 차량 보증금이 감가상각으로 0원이 됐다고 설명하며 헐값에 차량을 인수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후원회가 해산된 경우 잔여재산은 당원인 경우 소속 정당에, 당원이 아닌 경우 공익법인 또는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도록 돼 있다. 김 전 후보자처럼 '감가상각'을 이유로 폐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선관위가 폐기 사유 등 증빙을 확인한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김 전 후보자 건은) 저희가 놓쳐서 그 이후로 그런 부분은 더 꼼꼼히 보고 있다. 당연히 (차량) 감가상각이 되는 상황인 줄 알았다. 이런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제 이런 부분은 이중·삼중으로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후보자 사례 외에도 선관위 검증의 사각지대는 곳곳에 있다. 현재는 국회의원의 기관 및 단체 정치자금 기부를 허용하고 있는데, 김 전 원장의 경우처럼 국회의원 임기 종료 후 단체의 대표직을 맡아 '셀프 후원'하더라도 선관위가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맹점이 있다.
검증 주체인 선관위가 인력 등 한계가 있는 상황에선 언론이나 시민단체도 감시자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정치자금 자료에 대한 접근성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최근 헌법재판소 판결로 정치자금 현행법상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서의 열람 기간 3개월 제한은 '상시 열람 가능'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자금 수입·지출내역서를 열람하기 위해선 지역 선관위 사무소에 직접 방문해야 하며, 자료도 이미지 파일로만 제공하고 있어 비교 분석할 데이터 작업이 쉽지 않다.
이와 관련,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3월 정치자금 수입·지출 명세서를 인터넷에 기간 제한 없이 공개하도록 하고, 영수증 등 지출증빙서류에 대한 사본 교부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난 20대 국회에도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되자 다시 발의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회계보고 주기가 국회의원 후원회의 경우 매해 1회만 보고토록 하고, 선거비용은 선거 직후 30일 이상 지나야 공개가 가능하다. 반면 미국은 1년에 4회, 각 분기 종료 후 15일 혹은 31일 이내에 정치자금 회계보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선관위 격인 연방선거위원회(FEC: Federal Election Commission)는 보고받은 정치자금 내역을 수령 후 48시간 이내에 전자파일로 공개한다. 정치자금 정보에 대해서도 우리는 '개인정보 침해' 이유로 고액 후원자 신상과 지출처의 구체적인 내역을 가리고 있지만, 미국은 200달러를 초과하는 지출 대상자의 성명과 주소도 공개한다. 지출에 대한 규제는 적은 반면 정보 공개는 투명하게 하는 방향으로 운용되고 있다.
◆정치자금 개혁 방향은? '투명성 강화·규제 완화'
정치자금은 대의민주주의하에서 활발한 정치활동에 필수적이지만, 종종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2002년 대선에서 수많은 기업이 수백억 원대 대선자금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 불법 지원한 '차떼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후 2004년 이른바 '오세훈법'을 통해 법인 및 단체의 기부 금지, 원외 지역위원장 및 정당 후원회 금지 등 돈줄을 죄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이후 정치권에선 현행 제도(후원금 한도액 선거가 없는 해에 1억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에 3억 원)로는 사무실 운영 등 비용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쓸 수 있는 정치자금이 적다 보니 당초 법 취지와 달리 탈법이나 편법 자금 조달 유혹에 취약하고, 오히려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다시 모금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의되는 추세다. 2017년 법 개정으로 정당후원회 제도가 부활했고,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정치자금법 개정안 중 본회의를 통과한 13건(대안반영 폐기 포함)도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자치의원 후보자 후원회 설치 △정당 청년추천금 지급 △여성 및 장애인 추천 보조금 배분 방식 개선 등에만 집중돼 있다.
시민사회와 학계는 '투명성 강화'가 정치자금 개혁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에 대한 투명하고 시의적절한 정보 공개는 민주정치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부정 사용을 막을 뿐만 아니라 정치자금이 어떻게 유입되고 지출되는지 아는 것 자체로 유권자들이 후보를 지지할 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바라는 정치자금 확대를 추진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기도 한 셈이다.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정치활동'이라는 게 굉장히 광범위해서 위법 상황을 잡아내기는 사실 쉽지 않다. 정치자금을 얼마를 모아서 얼마를 썼다는 정보에 대해 일반 유권자들이 쉽고 간편하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공개성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 그걸 잘 썼는지 못 썼는지는 결국 유권자가 판단할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굉장히 미약해서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보 공개 투명성을 강화하면 자율 규제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정보 공개가 투명하게 된다면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일종의 조심성을 강화시킨다. 유권자들이 볼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좋은 데 썼구나, 이상한데 썼구나'하고 대부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면 정치인들이 조금 더 조심해서 사용할 것이고 용도를 선택할 때도 조금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자금 유입과 사용 한도에 대한 규제는 풀되, 후원자 인적사항이나 지출 내역 등 정보공개를 철저히 해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 게 '정치자금 개혁' 방향으로 적절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정치자금 자료를 인터넷에 상시 공개하고 영수증 등 증빙서류도 사본을 교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우선 조치로 꼽힌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정치자금 관련해 영수증을 열람만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는 점이다. 정치자금법상 선관위에서 눈으로만 보고 가라는 식인데 막상 영수증 지출 증빙 자료를 눈으로만 열람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한 법 개정이 중요하다. 또 후원 기부 명단도 300만 원 이상 기부자 명단만 나오는데 직업 등이 제대로 기재가 안 된 경우들이 많아 검증이 잘 안되고 있다. 투명성이 전제돼야 다른 논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하 대표는 이어 "(정치인 후원금은)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일종의 공적 자금이라 당연히 공개돼야 하는데, 이를 법으로 열람만 가능토록 막아놓은 것은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 '밥그릇 챙기기'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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