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이재명 의원 '사법 리스크' 방어에 나섰다. 이 의원이 기소되더라도 (향후) 당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당헌당규 개정 움직임이다. 특정인 '특혜' 비판과 함께 이 의원이 직접 말려야 한다는 요구에도 그는 침묵하고 있다. 이 의원의 침묵은 결국 지지자들을 향한 암묵적 동의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최근 10대 혁신 플랜 중 하나로 온라인 당원청원시스템을 도입했다. 당 지도부는 당원청원이 '동의 5만 명'일 때 응답해야 한다. 지난 1일 게시판에는 '당헌·당규 개정 요청'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골자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할 수 있다'는 민주당 당헌 제80조(다만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면 당 윤리심판원에서 징계 처분을 취소할 수 있게 함)를 개정하자는 것이다.
해당 청원인은 청원글에서 "검찰공화국을 넘어 검찰 독재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무차별한 기소가 진행될 것"이라며 "제9장 윤리심판원 제80조의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은 등록된 지 나흘 만인 4일 밤 중앙당 답변 요건인 5만 명 동의를 최초로 돌파했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들을 포함한 이 의원 지지자들은 이 의원을 향해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성 수사의 칼날이 향할 것이라고 거듭 우려해왔다. 때문에 당 대표 당선 이후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 '성남FC 후원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으로 이 의원이 기소되더라도 선출직 조건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는 '동의 5만 명'을 채운 요청인 만큼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에서부터 당헌당규 개정과 관련한 논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신현영 대변인은 5일 비상대책위원회의를 마친 후 "해당 청원이 동의 5만 건을 넘겼기 때문에 비대위에 보고됐다"며 "당헌·당규 개정 사항이기에 8월 중순에 전준위에서 관련 내용을 통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현 민주당 체제는 전준위에서 논의가 끝난 안건 사항이 비대위에 올라오면, 비대위에서 안건 상정을 결정하는 구조다.
청원 내용 중에는 '당헌당규 개정 과정에 있어 △윤리위원회가 아닌 최고위원들이 결정할 것 △최고위원과 윤리위의 의결 후 최종 결정은 당원투표로 진행할 것' 등의 요청사항이 써 있다. 신 대변인은 "당헌당규 개정에 대해 전준위가 논의를 하게 되면 어떤 방식이나 절차로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것들도 순차적으로 논의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해당 요청이 '당직 정지' 관련 당헌 개정이라는 점에서 이재명 의원의 이름이 거론된다. 유력 당권 주자인 이 의원의 '사법 리스크'와 연결되며 '방탄용' 당헌당규 개정 요청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당권주자들도 '당의 헌법'으로 여겨지는 당헌당규를 의원 한 사람의 이해관계에 따라 바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용진 의원은 5일 페이스북에 '(이 의원의) 자생당사(自生黨死) 노선을 막아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국민의힘도 부정부패 관련 혐의로 기소된 자의 직무를 정지한다. (해당 조항은)한 개인으로 인해 당 전체가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당헌당규 개정 요구에 우려를 표했다.
이어 박 의원은 "이 의원은 수 차례 팬덤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라고 자제를 요청했으니 이번에도 개딸을 향해 자제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해달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의 팬덤이 민주당의 '사당화(私黨化)'를 부추긴다는 비판이다.
또 다른 당 대표 후보군인 강훈식 의원은 특정인을 위한 당헌 개정은 우려된다면서도 '기소 시 당직 정지'보다는 '법원 1심 판결 유죄 시 당직 정지'를 당직 정지 조건으로 하자는 주장을 내놨다.
강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전당대회 직전에 특정 후보의 당선을 전제로 제기된 문제라는 점에서 '특정인을 위한 당헌 개정'으로 보일 우려가 충분히 있다"면서도 "야당으로서 예상되는 검찰의 정치 개입 우려에 대해 적절한 방지 장치를 두면서도, 부정부패 의혹에 대해 (법원) 1심 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되면 당직이 정지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개정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다만 강 의원은 "(또) 많은 국민들이 윤석열 정부와 검찰의 정치 개입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도적 표적 수사와 기소를 통한 야당 탄압, 정치 개입의 가능성도 엄연하게 존재한다"며 당헌당규 개정 취지에는 동의한다는 중립적인 입장을 밝혔다.
지지자들의 엄호를 받고 있는 이 의원은 해당 청원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4일 지지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모든 영역에서 모든 방향에서 (저를 향해) 최대치의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 "저도 인간이라 가끔 지친다"라며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의혹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고 지지자들에게 에둘러 호소한 바 있다.
당헌당규 수정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이 한창이었던 지난해 6월에도 한 차례 있었다. 당시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예비후보였던 이낙연 전 대표·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은 경선 일정을 미루자며 '대선 180일 전까지 대선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민주당 당헌당규를 수정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예비후보였던 이 후보(당시 경기지사)는 "원칙대로 하면 제일 조용하고 합당하지 않나"라며 당헌당규 원칙론을 고집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