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이 정치권을 강타하면서 논쟁이 뜨겁다. 여권이 "대통령실은 원래 비공개 채용"이라며 반박하자, 야권은 "문제의 본질은 특혜 채용"이라며 맞받아쳤다. 문재인 정부 출신 의원과 여당 청년 정치인도 비슷한 논지로 온라인 설전을 벌였다. 대통령실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측근 중심 인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어 관련 제도를 손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는 내다봤다.
정치권의 '사적 채용' 논란은 김건희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 출신 직원 2명이 대통령실에 채용된 것이 알려지며 불거졌다. 이후 대통령 부부의 해외 순방에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아내 신 모 씨가 민간인 신분으로 동행, 사전답사까지 다녀온 사실이 드러나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외가 6촌, 윤 대통령의 40년지기 사업가 아들 황 모 씨, 또 다른 지인이자 통신설비업체 대표인 우 모 씨 아들까지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대해 '국정조사'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며 공세를 퍼붓는 중이다.
수세에 몰린 여권도 반격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20일 대통령실 관계자로는 첫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실은 공개 채용 제도가 아니고 비공개 채용 제도, 소위 말하는 엽관제"라고 강조했다. 야당이 프레임을 씌워 정치공세를 하는 것이며, 논란이 된 9급 행정요원 우 모 씨 등에 대해 철저한 검증 등 공적인 채용 절차를 거쳤다고도 했다. 강 수석은 또 "사적 채용이라는 건 능력도 없는 측근이나 지인 등을 대통령실 등 중요한 국가기관에 채용했다는 것"이라며 능력이 인정된 이들을 철저한 검증으로 채용한 점에서 '사적 채용'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왜 공채를 하지 않았냐는 문제를 제기한 적 없다. 왜 가까운 지인 자녀를 공정하지 않게 채용했느냐고 물은 것"이라며 "애초 대응차원에서 제안했지만 최근 대통령실 사적 채용 건수가 확대되고 있어서 당 차원에서 국정조사를 진짜 추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강 수석이 언급한 '엽관제'에 대해 "엽관제가 언제부터 대통령 인사의 원칙으로 통용됐나. 억지도 정도껏 부리라"라며 "문제의 본질은 특혜채용, 정실인사"라고 지적했다.
엽관제는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선거 운동원 및 적극 지지자들에게 기여도에 따라 관직에 임명하거나 혜택을 주는 인사제도를 뜻한다. 오 원내대변인은 또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상피제가 있었다. 정실인사는 권력의 사유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면서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상피제는 권력의 집중 전횡을 막기 위해 친족간 같은 관청에 근무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 윤 대통령 외가 6촌의 대통령실 근무를 겨냥한 것이다.
여권은 문재인 정부를 소환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지인 디자이너의 딸이 청와대 제2부속실에 근무했던 점을 대표적으로 내세웠다. 실제로 당시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전문성을 요하는 계약직은 당연히 공모와 그에 준하는 절차에 따라서 (채용)한다. 그렇지 않은 계약직 채용은 추천에 의해 (채용)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뿐만 아니라 어느 청와대도 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현 정치권에서 관행이 된 '엽관제'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논란은 고민정 민주당 의원의 1인 시위로 더 번지는 모양새다. 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그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책임을 물어 인사권자를 경질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두고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누가 보면 고민정 의원께서 공채로 청와대 대변인 되신 줄 알겠다"고 힐난했다. 고 의원 역시 대선 당시 대통령과의 사적 친분으로 청와대에서 채용된 것이라고 비꼰 것이다.
고 의원이 "'사적 채용'에 대한 핵심 이슈는 민간인 수행원과 친인척 채용"이라고 반박하자, 박 대변인은 "언제부터 사적 채용의 기준이 친인척 여부였나. 지금까지 '누군가의 추천과 압력이 있었다면 불공정한 사적 채용'이라고 비판하시더니, 왜 말이 바뀌느냐"고 맞받아쳤다.
야권은 '사적 채용'의 범위를 친인척으로 한정해 전선을 좁히는 모양새다. 문 정부를 포함해 역대 어느 정부도 이 같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추천 등을 통해 계약직 공무원(별정직)을 채용하는 사례는 대통령실의 특수성상 관행처럼 빈번하다. 대선 과정에서 패배의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어 승리에 기여한 이들을 '지인'이라는 이유로 멀리할 수 없다는 논리가 '엽관제'에 깔려 있다.
미국 백악관은 인사 문제에서 더 자유로운 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장녀 이방카 트럼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보좌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우 위원장은 문 정부 청와대의 디자이너 딸 채용 문제 제기에 대해 "공개 채용이냐, 비공개 채용이냐가 쟁점이 아니고 친인척이냐, 특수 관계 지인의 어떤 관련자이냐를 따지는 것"이라면서 반박했지만, 허용 가능한 '특수 관계'를 어떤 기준으로 할지 자의적 판단이 작용될 수밖에 없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최근 민주당은 대통령을 포함해 공공기관장이 친족을 채용할 때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토록 하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개정안(김영배 의원 대표발의)를 냈는데, 측근이나 추천을 통한 채용인 경우에는 걸러낼 기준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다만 위법 소지 등 사전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노력은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에 근무했다가 사퇴한 극우 유튜버의 누나 안 모 씨는 동생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회사 이사로 등재돼 있었고, 우 모 씨는 아버지 회사 감사로 등재돼 국가공무원법상 '겸직근무 의무'에 저촉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른바 '사적 채용'은 과거 어느 정부에나 있었다. 절반은 일종의 공무원들로 공적 채용 비슷하게 하고 나머지는 대통령과 집권 실세, 당 소속 의원이나 외곽에서 도왔던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추천 받는다"며 "박근혜,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도 캠프 맨들이 대부분 들어갔다. 대통령실 구조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마치 사적 채용은 나쁘고 공적 채용이 좋다는 식의 논리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요한 건 그 정도의 실력과 전문성을 갖추었느냐인데 최근 들어 윤 대통령 지지도가 낮고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아 참모 논란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면서 "다만 대통령과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인사들이 너무 많이 배치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앞으로 장관이나 대통령직 인사를 할 때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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