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8명 후보가 참여하는 더불어민주당 8월 당권 레이스의 총성이 울렸다. 이재명 의원이 선두 주자로 앞서는 상황에서 '비이재명계'의 견제도 한층 날카로워졌다. 민주당 내에서 금기시된 '분당 위기론'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비토 여론을 정면 돌파하고 출마한 이 의원에게 '당 계파 갈등 수습'과 '통합'이 최대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18일 민주당 8·28 전당대회 예비경선 후보 등록이 마감하면서 차기 당권 주자도 확정됐다. '1강'인 이 의원과 5선 설훈 의원, 86세대 김민석 의원, 97세대 강병원·강훈식·박용진·박주민 의원, 원외인 이동학 전 최고위원 등 총 8명이다.
후보 확정으로 당권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이 의원을 향한 비이재명계의 견제구도 강해졌다. 특히 이 의원이 당대표가 될 경우 당이 친이재명계와 비이재명계로 쪼개질 수 있다는 '분당 위기론'이 다시 떠올랐다.
'동교동계 막내'이자 '이낙연계'로 분류되는 설 의원은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분열이 일어난다는 건 일반적인 시각"이라며 "친명, 반명으로 나뉘는데 (의원들 중에) 반명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보기 때문에 이걸 그냥 두면 당이 심각한 혼란에 빠진다"고 주장했다. 당내에 반이재명계 의원들이 많아 이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계파 갈등이 심화, 분당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또 "본인이 나서서 '당대표가 돼서 당을 쇄신하고 혁신해내겠다' 이렇게 주장하는데 쇄신하고 혁신하기 이전에 당의 분열이 올 가능성이 있다"면서 "'내가 나가서 해야 당이 쇄신되고 혁신된다' 이 얘기는 지나친 판단"이라고 저격했다.
'정세균계'인 이원욱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이날 'BBS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지금 당장 분당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 의원을 향한 사법 리스크 우려와 당 지지도 하락, 정치훌리건 문제 심화 등의 상황을 전제로 "분당론이 현실화될 수도 있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재명 의원은 지난 17일 출마선언에서 "계파정치를 배격하고 '통합정치'를 하겠다. '계파공천', '사천' '공천 학살'이란 단어는 사라질 것"이라며 공정한 공천 시스템 구축을 약속했지만 당내 분열 우려는 여전한 분위기다.
'분당 위기론'은 지방선거 패배 직후에도 수면 위로 올라온 바 있다. 당권주자인 김민석 의원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원 워크숍 후 고민이 깊었다"며 "이대로 가면 (당이) 깨지지 않나"라고 논쟁에 불을 붙였다. 지난달 23~24일 열린 의원 워크숍에서 이 의원 출마 여부를 두고 드러난 계파 갈등이 분당론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었다. 박영선 전 장관도 지난달 27일 한 포럼에서 "분당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라며 이 의원 불출마를 우회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이 의원 출마로 당 분열에 대한 우려가 커진 분위기다.
다만 '분당설'은 현재 당내에서 소수에게만 언급되고 있다. 분당은 정치생명을 거는 중대한 일인 만큼 탈당을 주도할 거물급 인사의 존재가 필요하고, '총선 패배론' 등 지지자들을 설득할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 같은 환경 조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 의원과 경쟁했던 이낙연 전 대표도 분당설과 연계된 자신의 조기 귀국 가능성에 대해 "(누군가) 조기 등판을 물어보길래 '조기가 도마에 올라갔느냐'고 반문했다"며 일축한 바 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 계열 정당의 정통성을 내세울 수 없다는 점이 창당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정치권은 보고 있다.
분당 위기론이 전당대회 국면에선 당장 가시화하지 않더라도 22대 총선을 앞두고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친명계가 비명계에 대해 이른바 '공천 학살'을 단행할 경우 낙천자들을 중심으로 신당 창당을 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5년 국민의당 사태 등 과거를 보면 분당은 대부분 선거 공천 과정이 정계개편의 발화점이 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그동안의 역사를 봤을 때 리더(주도자)가 확 끌고 나가든지, 아니면 공천 과정에서 30명쯤이 불복해 공천 학살 분위기라면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도 분당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금은 이 의원에 대해 (비명계가)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데 당 대표가 되는 순간 이 의원은 (이들을) 아우르고 갈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사정당국이 '전 정권 죽이기'로 나가니 민주당은 결합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이 된다. 분당 얘기가 나올 틈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분당론은 '이재명 불가론'의 다른 표현이다. 분열의 언어이기 때문에 쓰면 안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내 갈등과 분열은 안에서 해결 가능하지만, 외부에서 제기되는 '사법 리스크'는 이 의원에게 예측불가한 위험 요인이다. 경찰은 대선 직후 이 의원 배우자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을 비롯해 '성남FC후원금 의혹', '백현동 아파트 개발사업 의혹', 'GH 합숙소 논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며 이 의원에 대한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저한테 먼지만큼의 흠결이라도 있었으면 이미 난리 났을 것"이라며 무혐의에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내부에선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설 의원은 "당대표가 사법 리스크 상황에 빠지면 당 전체가 사법 리스크에 휩싸이는 거나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다"며 대장동 의혹과 성남 FC 후원금 문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이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어 "집권 여당 입장에선 이 의원이 당대표가 되는 게 꽃놀이패다. 우리 당 입장에선 계속 끌려가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조응천 의원도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 (SNS)를 통해 "이 의원은 검경이 벌이고 있는 여러 건의 수사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솔직히 강제수사와 기소 여부는 검경의 맘에 달려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 의원이) 당 대표가 본격적으로 수사대상이 되면 당이 민생에 전념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치부될 것이다. 이 의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대표직이 '인계철선'이 되어 당 전체가 전면적 대여투쟁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기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힌 이 의원은 이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당권 레이스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 고문은 참배 후 SNS를 통해 "당 대표로 출마하며 가장 먼저 김대중 대통령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앞에 닥친 더 큰 위기는 민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정치의 위기"라며 "김대중 대통령께서 열어주신 길 따라 거침없이 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당대표가 되면 IMF 사태를 극복한 DJ 리더십으로 현재의 민생 위기에 대처하겠다는 의미다. 이 의원은 참배 후 연세대에서 학교 청소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현장 애로사항도 청취했다. 그는 "이렇게 더운 날씨에 하루 9시간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변변한 샤워실이 없어 점거 농성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참 서글프다"며 "당 대표가 되어서도 민생 현장에 집중하면서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