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8월 전당대회 최대 쟁점이었던 '룰(Rule·규칙)이 확정되면서 대진표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유력 당권 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의원 측은 당권 도전에 대해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지만, 당내에선 "지방선거 출마 때 이미 달리는 자전거에 올라탄 것"이라며 출마 초읽기에 돌입했다는 분위기다. 다만 당 안팎에서 비토 여론이 높은 만큼 최대한 등판 시기를 늦춰 장고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8일 민주당은 지도체제, 선거인단 구성, 본경선 후보자 수 등 8·28 전당대회의 주요 규칙을 마무리했다.
우선 지도체제와 선거권 및 피선거권, 본경선 후보자 수는 현행 방식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 선출하고, 선거권 및 피선거권도 권리행사 시행일((2022년 7월 1일) 기준으로 12개월 이내에 6회 이상 당비 납부 및 6개월 이전 입당한 권리당원에게 부여하기로 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일각에선 지난 대선 이후 대거 입당한 지지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투표권 기준을 낮춰달라고 요구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본경선 후보자 수도 현실성을 고려해 현행(당 대표 후보 3명, 최고위원 후보 8명)을 유지하기로 했다.
주요 쟁점이었던 선거인단 구성 비율은 대의원 비중을 줄이고 국민 여론조사 비중을 늘려 '대의원 30%, 권리당원 40%, 국민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로 결정했다. 비대위는 당초 전준위가 제안한 '예비경선 국민여론 30%반영안'을 수용하지 않았으나, 일부 의원과 지지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당대표의 경우 국민여론 30%를 반영하고 최고위원은 현행처럼 중앙위원 100% 투표로 하기로 절충안을 마련했다. 또 지역 균형의 차원에서 신설하려 했던 '최고위원 권역별 투표제'도 철회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 또 다른 관심사였던 '최고위원 권한 강화' 방안은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전용기 의원은 이날 전준위 회의 후 "가장 관심이 쏠렸던 공관위(공천관리위원회) 구성 절차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전준위는 차기 지도부가 공천관리위원회를 구성할 때 최고위의 '심의'가 아닌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을 검토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 당 대표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이재명 의원에 대한 '총선 공천권 분산 시도'라며 강한 반발이 나오자 결론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 전 의원은 "추후 당헌·당규 개정을 위한 기구가 만들어지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전당대회 규칙이 확정되면서 후보 대진표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홍영표·전해철·이인영 의원 등 친문과 86세력이 이 의원에게 "동반 불출마"를 제안하며 물러난 가운데 3선 중진 김민석 의원, '97세대((70년대생·90년대 학번)'에선 '양강강박(강병원· 강훈식·박용진·박주민)'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출마 결심을 굳힌 박주민 의원은 지난 8일 당대표 출마 선언에서 "당의 개혁이라든지 혁신 부분에 있어서는 이 의원보다 조금 더 길게 고민해왔고, 최고위원 등을 거쳐 실무적으로도 더 충실할 수 있다"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들 주자들은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 분위기에 맞서 단일화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다만 '신(新)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박주민 의원은 전대 과정에서 이 의원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의원 측은 현재까지 출마와 관련해 침묵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내에선 이 의원의 출마가 기정사실 분위기다. 앞서 지난 7일 '중진' 우원식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후보 경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입장에서 이재명 의원과 전당대회에서 경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당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권 도전을 밝혔던 정청래 의원도 최고위원으로 선회했다. 친명계 의원들의 연이은 불출마는 이 의원이 자연스럽게 출마할 환경을 마련해준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 의원 역시 연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경제 현안 메시지를 내고, 당내 환경 토론회 등에 참석하는 행보로 출마 몸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의 출마 공식화가 미뤄지는 배경에는 선거 패배론과 책임론에 대한 부담이 큰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문재인 정부 첫 대통령 비서실장인 임종석 전 실장은 이 의원의 6·1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겨냥해 "염치없는 행동을 보면 화가 난다. 기본과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보면 창피함을 느낀다"면서 "그런데도 정작 본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돌보느라 반성도 성찰도 없다"고 공개 저격한 바 있다.
수사망을 좁히고 있는 '사법 리스크'도 부담이다. 경찰은 대선 직후 이 의원 배우자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성남FC후원금 의혹', '백현동 아파트 개발사업 의혹', 'GH 합숙소 논란',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이 의원을 겨냥해 잇달아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당내 일각에선 이 의원의 출마 선언이 뒤로 미뤄질수록 전당대회 관심이 이 의원에게만 집중된다며 조속히 출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의원에게 동반 불출마를 제안했던 설훈 의원은 지난 8일 "민주당의 미래와 새로운 비전으로 채워져야 할 전당대회 이슈가 지금, 한 사람의 입만 바라보며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이 의원이 계산하는 출마 선언 타이밍까지 우리 당은 얼마나 더 분열하고 아파해야 하나"라면서 "더 이상 호위병들 뒤에 숨어 눈치 보는 '간보기 정치'는 그만하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압박에도 이 의원의 공식 등판 시점은 후보 등록 기간인 오는 17~18일 즈음이 될 것이란 관측이 높다. 이 의원 측 민주당 관계자는 "(지선 때 인천 계양을 출마로) 이미 달리고 있는 자전거 위에 올라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멈출 수가 없다"면서 "출마는 아무래도 (후보 등록 기간) 마지막에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이어 "출마하게 되면 어대명' 분위기라고 하지만 (대선 이후 입당한 지지자들이) 투표권이 없어서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왜 출마를 하느냐, 비토 여론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편 이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최고위원에 도전하는 친명계 의원은 정 의원 외에 김의겸, 문진석, 박찬대, 양이원영, 이수진(서울 동작을), 장경태 의원 등이 거론된다. 이에 맞서는 비명계 최고위원 후보로는 고민정, 고영인, 송갑석, 최인호 의원 등이 언급되고 있다. 전준위가 공천관리위원회 구성 권한을 당대표에서 최고위원으로 넘기는 방안을 추후 논의하기로 하면서 향후 당 지도부 구성에 따라 친명계와 비명계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