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3박 5일간의 스페인 마드리드 방문 일정을 마치고 1일 귀국했다. 다자 외교무대에 처음으로 참여한 윤 대통령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한미일, 나토의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개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이하 AP4) 정상회의 외에 10개 국가와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등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윤 대통령은 귀국길에 공군 1호기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첫 순방 소감에 대해 "딱히 소감이라고 할 것은 없다"라면서도 "이번 다자회의에서 참석한 국가 정상들과 다양한 양국 현안들도 논의하면서 유익한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정으로 한미일 정상회담을 꼽았다. 윤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담을 첫손에 꼽은 것은 2017년 9월 이후 4년 9개월 만에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고,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한미일 삼각 공조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유익한 기회…인상 깊었던 '한미일 정상회담'"
실제 한미일 정상은 이번 회동에서 당면한 지역 및 글로벌 문제 대응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주의와 같은 기본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한미일 간 협력이 긴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특히 북핵·미사일 대응을 위한 3국 간 안보 협력 수준을 높여가는 방안에 대해서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윤 대통령이 두 번째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일정은 나토 정상회의 본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의 1차 목적이었던 나토 정상회의에서 일곱 번째 연설자로 나서 "자유민주주의, 법치의 기반 위에 설립된 나토와 변화하는 국제안보 환경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오늘날 국제사회는 단일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안보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신전략 개념에 반영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나토 차원의 관심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과 나토는 2006년 글로벌 파트너 관계를 수립한 이래 정치·군사 분야에서의 안보 협력을 발전시켜 왔고, 이제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와 역량을 갖춘 국가로서 더 큰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경제안보, 보건, 사이버안보 같은 이런 신흥 기술 분야에서도 나토 동맹국들과 긴밀히 앞으로 협력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새로운 경쟁과 갈등을 구도가 형성되는 가운데 우리가 지켜온 보편적 가치가 부정되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말씀하신 것"이라며 "나토 회의 참석 국가 대부분이 현재 진행되는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책임론, 중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성 등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 이상으로 매우 강력하게 (우려를)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당면한 우리의 현안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해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은 유엔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고,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 안보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 의지보다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나토 동맹국과 파트너국의 지속적인 지지와 협력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이 세 번째로 꼽은 의미 있는 일정은 AP4 정상회동이다. 이 자리에서 4개국 정상은 나토 정상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된 계기에 이러한 아시아·태평양 4개국 정상 간 회동이 성사된 점을 평가하면서, 최근 국제 정세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공동 관심사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보편적 원칙과 규범'에 입각한 외교 철학 강조
또한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호주·네덜란드·프랑스·폴란드·유럽연합(EU)·튀르키예·덴마크·체코·캐나다·영국 등 10개국 정상과 양자회담 또는 약식 회담을 진행했다. 양자회담의 주요 의제는 원전과 방산 등 '세일즈 외교', 새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지지,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이었다.
이외에도 윤 대통령은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을 면담했고, 스페인 기업인들과 오찬 간담회도 가졌다. 또한 스페인 교포들과 만찬 간담회도 진행했다.
이번 순방을 통해 윤 대통령은 보편적 원칙과 규범에 입각한 외교 정책을 펼치겠다는 철학을 분명히 드러내는 한편 글로벌 중추 국가 중의 하나로 적극적인 외교 행보를 펼칠 것을 예고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번 순방에서 가치와 규범의 연대, 신흥 안보 협력의 강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세 목표는 기대 이상으로 충분히 충족되지 않았나 생각된다"며 "여러 일정에서 윤 대통령이 30여 개 이상 국가 정상과 환담을 나누고, 편안하게 담소를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는 것은 앞으로 5년간 정상외교를 잘 풀어갈 첫 단추가 맺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큰 경제 교역국인 중국의 강력한 반발 등은 풀어야 할 숙제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어느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내에서든 국제관계에서든 간에 우리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규범은 지켜야 된다는 정신으로 국내외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나토 동맹국·파트너국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따르지 않고 있다. 이에 이번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도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서방의 움직임에 무게를 실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국 반발', '노룩 악수', '의전 미숙'…野 "초라한 데뷔전"
이에 대해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일 서면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순방은 다자 외교무대 데뷔전이었지만 성적표는 초라하다"며 "대통령실은 '목표를 기대 이상으로 달성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내세울 만한 외교성과는 찾아볼 수 없고, 의전 미숙에 대한 지적만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이는 이번 순방 기간 사전에 조율을 마치고 예고한 정상회담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일이 종종 있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악수를 하는 이른바 '노룩 악수'를 한 것, 그리고 나토 공식 홈페이지에 윤 대통령만 눈을 감은 사진이 올라간 것 등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노룩 악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 악수와 비교되면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이번 나토 정상회담 참석은 출국 전부터 많은 우려를 샀다. 우리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후퇴시킬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라며 "미중 경쟁과 신냉전 구도 속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적 입지는 제약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외교 행보가 이를 만회하지는 못할망정 우리 외교의 입지를 더욱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상묵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중국을 통한 수출호황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정말 대 중국·러시아 교역·투자의 위축을 대비할 준비를 갖추었는지 묻는다"며 "경제는 민간이 하는 것이라고 방관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외교는 곧 안보, 경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다음 정상외교에서는 철저한 준비로 국민이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김 여사는 이번 순방에서 스페인 국왕 주최 환영 갈라만찬, 교포 간담회 일정에 윤 대통령과 동반 참석했다.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16개국 정상 배우자(바이든 여사 손녀딸 2명 포함 총 18명)를 위한 프로그램에 참석하며 외교무대 데뷔전을 치렀으며, 독자 행보로 '스페인 한국문화원', '친환경 업사이클링 업체 에콜프', '마드리드 마라비야스 시장 내 한국 식료품점'을 방문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