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제20대 대선 열기가 한창 가열되던 지난해 12월 26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본인의 '허위 학력·경력 의혹'에 "일과 학업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이켜 보니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사과하면서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다.
김 여사 기자회견 5일 전 윤 후보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의 가족에 불과하다. 대통령 부인에 대해 법 바깥의 지위를 관행화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집권하면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김 여사에 대해 "남편 정치하는 데 따라다니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약자와의 동행' 활동에 함께하는 것도 썩 내켜 하지 않았다"고 역대 영부인과 달리 조용한 내조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 여사를 향한 의혹이 한창 불거졌을 당시 윤 대통령 내외가 한 말은 당면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말에 불과했을까. 지난달 10일 윤 대통령 취임식에 함께 참석하면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김 여사는 이후 팬클럽에 자신의 공식·비공식 활동사진을 직접 보내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더니, 최근에는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펼치고 있다.
특히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김 여사는 6건의 외부 일정을 소화하면서 광폭 행보에 나섰다. 13일 자신이 사적으로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 출신 인사 3명 등과 함께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고, 14일에는 국민의힘 4선 이상 중진 의원 부인들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16일에는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를 예방했고, 17일에는 윤 대통령과 함께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찾은 보훈 가족 및 국가 유공자 130명을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한 후 서울 모처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비공개 차담을 갖기도 했다.
이어 18일에는 조종사 고 심정민 소령의 추모 음악회에 참석했다. 쿠키뉴스에 따르면 김 여사는 추모 음악회에서 윤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방명록을 남겼다. 방명록에는 '당신의 고귀한 희생 대한민국을 지키는 정신이 되었습니다'라고 적었다.
또한 김 여사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심 소령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지 다들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아 제가 그 당시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을 해봤다"라며 "쉽지 않은 선택이고, 너무 찬란한 젊음이 있고, 사랑하는 부인이 있고, 존경하는 부모가 계시고 가족이 있는데 그렇게 한순간에 젊은 친구가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결심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슴 깊이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이 군인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하루하루 고통스럽지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희생이고 대단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심 소령은 어려서부터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또 국민을 사랑했고, 나아가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지켰다고 생각한다. 비록 젊은 인생을 우리를 대신해서 먼저 일찍 갔지만 우리의 마음과 정신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이런 친구가 우리한테 하루하루를 선물했구나' 생각을 하면 '더더욱 많은 고통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하는 저한테 어떤 큰 메시지를 준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하다"며 "매년 이렇게 심 소령의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하고 이런 날들이 매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김 여사가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공개 연설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주간 활발한 활동을 펼친 김 여사는 19일 대통령실 이전을 기념해 어린이와 용산 주민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 초청한 행사에는 불참하면서 잠시 쉬어갔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측은 "당초 참석하기로 한 김 여사는 따로 챙겨야 할 일이 있어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당일 오전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0일 '김 여사가 따로 챙겨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조용한 내조' 약속과 다른 활발한 대외 활동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 이날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48%로 전주와 같았는데, 부정 평가는 45.4%로 1.2%포인트 상승했다(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529명 대상 13~17일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1.9%p,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누리집 참조).
이와 관련 리얼미터 측은 "윤석열 정부가 새 정부 경제 정책 방향 제시, 물가 급등 선제 조치 등 경제 이슈에 주력했지만, 김건희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 관련 논란(지인 동행 및 코바나컨텐츠 출신 대통령실 채용)과 문재인 정부 인사 문제 등으로 지지율이 오르지 못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김 여사의 대외 행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다음 주로 예정된 '나토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참석하는 윤 대통령의 스페인 마드리드 방문 일정에 김 여사도 동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김 여사는 지난 13일 공개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를 확장하는 작업과 함께 소외 계층에도 꾸준히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대통령이 되기 전과 후 확연히 달라진 김 여사의 행보에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측은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출근길 기자들과의 약식 회견에서 '대선 때 약속하셨던 조용한 내조는 끝난 건가요?'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집무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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