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4선' 우상호 위원장이 이끄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와 선거 연패를 분석·평가하는 동시에 전당대회 준비를 어떻게 할지 등 난제가 놓여 있다. 선거 패배 후 등장한 비대위는 사실상 정신없이 수습만 하다 떠나는 '독배' 자리다. 당이 위기 상황인 만큼 '우상호 비대위'도 출범하자마자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당내 총의를 모아 추대됐기에 임무를 무난하게 완수할 것이란 기대도 높은 분위기다.
6·1 지방선거 패배 후 새로운 야당 지도부가 탄생했다. 민주당은 10일 중앙위원회에서 우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 구성 인준안을 최종 의결했다. 안은 419명(92.7%)의 찬성으로 통과했다. 새 비대위는 우 위원장과 비대위원으로 당연직 위원인 박홍근 원내대표, 한정애(3선)·박재호(재선)·이용우(초선) 의원, 원외 인사인 김현정 원외 위원장협의회장 등으로 구성됐다. 나머지 3명의 비대위원도 조만간 선임할 예정이다.
'우상호 비대위'는 중앙위 의결에 앞서 국회의원-당무위원 연석회의, 시도당 위원장과 선수별 간담회는 물론 지난 7일 의원총회에서 당내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비대위원장' 추인만 받으면 되는 당헌·당규에서 더 나아가 비대위원도 추인 대상에 포함했다. 직전 '윤호중 비대위' 구성 당시 전임 지도부가 윤호중 비대위원장을 선임하고 향후 추인한 게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반성하고 '선 의견수렴 후 추인' 과정을 거친 것이다. 박홍근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비대위는 철저하게 민주적 과정을 통해 합법성과 대표성을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권한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선 당원 총의가 모여야 정당성이 갖춰진다고 본 것이다.
이번에 출범하는 비대위는 8월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끌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비대위 내에 대선평가위원회와 혁신위원회, 전당대회준비위원회를 설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대선·지방선거 패배 평가를 통해 차기 지도부가 향후 노선을 정하는 데 참고할 혁신 토대 작업을 맡을 예정이다. 우 위원장은 '선거 평가' 작업과 관련해 "비대위원들과 상의해봐야 할 문제다. 평가 관련 기구를 구성하게 될 텐데 어떤 분들로 구성하면 좋을지,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면 좋을지도 지혜가 필요한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당이 어떤 문제를 고쳐야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지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적임자를 찾아보겠다"라고 했다.
비대위가 출범하면 전준위 구성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 규칙 논의가 본격화하면 첨예한 격론도 예상된다. 이미 '룰의 전쟁'은 시작됐다. 친명계 의원들은 지도부 선출시 권리당원 반영 비율을 높이고 투표권 부여 기준을 '6개월 당비 납부'에서 '3개월 당비 납부'로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의원은 1만6000여명이고 권리당원은 약 80만 명인데 대의원의 투표 반영 비율이 현저히 높아 '표 등가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일각에선 '강성' 권리당원의 영향력이 과다대표 되면 '팬덤 정치'의 병폐가 심화하고 특정 계파에 유리해지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반 국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권리당원 5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48명(전체의 16%)의 재선 의원들은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한꺼번에 투표해 1위 득표자가 당대표를 하는 집단제도체제 선출로 바꾸자는 의견을 비대위에 전달하겠다는 입장이다. 친문계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에 혼선을 줄 수 있기에 당헌·당규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우 위원장은 "당 규칙은 그때그때 시대 정신이나 당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며 "건강한 문제 제기는 조금 반영하고 당이 갖고 온 역사성 속에서 불가피한 부분은 설명해드리며 정리해나가는 수순을 밟겠다"라고 했다. 당헌·당규를 손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우상호 비대위'가 아쉬움이 남는 역대 비대위의 전철을 밟을지, 성공적인 비대위로 마무리할지 주목된다.
민주당은 최근 9년 사이 6번째 비대위를 맞이하게 됐다. 민주통합당 시절 18대 대선 패배로 지도부가 총사퇴하면서 2013년 출범한 문희상 비대위는 4개월간 운영됐다. 이 과정에서 외부 인사가 참여한 대선 평가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친노 핵심인사들의 책임론을 실명으로 거론해 계파 갈등만 증폭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권리당원 배가운동'으로 위장 당원명부를 정리하는 등 긍정적인 모습도 있어 실점 없이 바통 터치했다는 평도 있다.
'문희상 비대위'는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인 2014년 9월 다시 등장한다. 7·30 재보선 패배 후 지도부가 사퇴하면서다. 2기 문희상 비대위에서는 당내 분열을 상당 부분 해소하고 세월호특별법 합의 등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대위는 아니지만 비슷한 성격의 '혁신위원회'도 있었다. 2015년 4·29 재보선에서 패배하면서 당시 문재인 당대표가 물러나는 대신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당시 혁신위에는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등이 참여해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선출직 공직자평가위 구성,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공천 배제 등 공천 혁신 방안을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2016년에는 20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김종인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됐다. 거듭된 연패에 문재인-안철수 내홍에 빠져 있던 민주당에 중도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당을 '친노패권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위원장이 비대위에서 절대적인 공천권을 쥐면서 셀프 공천 등 논란도 있었지만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원내 1당의 승리를 안겼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 사태로 민주당은 19대 대선과 21대 총선에서 연승하다 지난해부터 다시 고난의 시절을 겪고 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 후 약 한 달간 도종환 비대위, 대선 패배 후 3개월간 윤호중·박지현 공동체제 비대위를 거쳤지만 두 비대위 모두 쇄신도 관리도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통상 역대 비대위는 선거 패배 등 당 위기 상황에서 출범하기 때문에 혁신 작업이 쉽지 않다. 비대위가 성공하려면 20대 총선 승리를 이끈 김종인 비대위 때처럼 비대위에 '전권'을 줘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강력한 리더십과 선거를 앞둔 위기적 환경도 당 쇄신 동력을 키울 수 있는 요소로 지목된다. 선거가 멀리 있으면 정치인으로서의 생존 위기감보다는 당내 투쟁에서 밀려 비주류로 몰락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앞서 계파 투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오히려 코앞 선거가 없어 무난하게 비대위를 이끌 것이란 관측도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김종인 비대위 때는 총선을 앞두고 전권을 실어줬지만 이번에는 성격이 다르다. 총선이 2년 남아서 당장 자기 목이 날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전당대회를 무난하게 잡음 없이 잘 치르면 될 것"이라고 했다.
비대위가 선수별로 추천을 받아 구성된 만큼 어느 때보다 의원들의 입장이 잘 반영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왔다. 고영인 민주당 의원은 "이번 비대위는 밑에서부터 비대위원을 추천했다. 그래서 전체 의원들의 (의제에 대한) 공통분모 방향이 반영되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 5년에 대한 평가, 지방선거 등 공천 문제 등이 잘 반영돼서 국민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개혁들도 결합하는 방향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또 전당대회에 생산적이면서 새로운 것들이 반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이어 "(비대위는) 개인기에 의존하기보다 각 기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종식 의원은 "우 위원장이 욕심이 없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것이다. 공정하게 국민이나 당원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라고 기대했다.
unon89@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