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과제 안긴 박지현…"아쉬움 남는다" 향후 행보는?


대선·지선 평가 따라 향후 역할론 나올 듯

20대 지도부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대위 총사퇴를 발표한 후 국회를 나서고 있는 박 전 위원장.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정치 신예'가 167석의 거대 야당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대 대선 전후 당에 2030 여성 표심을 몰고 왔고, 지도부에 합류한 뒤에는 온정주의 타파를 외치며 당의 대표 '청년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내홍 야기 등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떠안으며 혁신 주체로 활동할 동력을 상실했다. 민주당이 내부 권력 투쟁과 쇄신 작업에 돌입한 가운데, 박 전 위원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박 전 위원장이 대선 캠프에 합류하며 당 전면에 나선 지 126일 만에 뒤로 물러났다. 그는 지방선거 참패 결과를 받아든 2일 "출범 30일도 안된 정부를 견제하게 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을 바꿨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며 비대위 사퇴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변화와 혁신의 롤모델로 "능력 없는 기득권 정치인이 지배하는 정당이 아니라 서민과 약자를 위한 서민정당을, 소수 강성 당원들의 언어폭력에 굴복하는 정당이 아니라 말 없는 국민 다수의 소리에 응답하는 대중정당"을 제시했다.

그는 또 디지털 성범죄 근절, 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 추진하지 못한 과제들을 언급하며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고도 했다.

텔레그램 N번방을 세상에 알렸지만 베일에 싸여 있던 '추적단 불꽃' 중 활동명 '불'은 지난 1월 27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선대위에 합류하면서 '박지현'이라는 실명으로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활동가로서의 말과 정치인의 말은 힘이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며 정계 입문 계기를 밝혔다. 박 전 위원장의 선대위 합류는 2030 여성들의 지지를 이끌면서 막판 지지율 상승세의 주역으로 평가됐다. 대선 지분을 챙긴 박 전 위원장은 당내 투톱 자리에까지 올랐다.

지도부에 합류한 이후에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실정과 조국 전 법무장관 자녀 입시 특혜 논란에 대한 사과를 요청하고, 최강욱·박완주 의원 등 연이은 당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을 고수했다. 당내 강경파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꼼수로 밀어붙일 때는 제동을 걸기도 했다. 지선을 20여 일 앞두고는 5대 혁신안을 내걸었으나 시기와 절차상 부적절했다는 당 안팎의 비판 여론에 한발 물러서야 했다. 이후 광역단체장 17곳 중 5곳 확보라는 지선 참패 결과에 2개월여 만에 지도부에서 사퇴했다.

그의 그동안의 비대위 행보를 두고는 성숙하지 못한 메시지 전달이나 정무적 판단으로 지선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평가와, 강경 지지층에 억눌려 있던 내부에 그나마 거침없는 목소리로 쇄신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의견으로 갈린다.

양이원영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특정인을 겨냥해서 책임을 지우는 평가는 제대로 된 평가가 아니라 책임 회피"라며 "당찬 젊은이 박지현이 새로이 발굴된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쇄신안을 둘러싼 지도부 간 내홍이 분출되고 봉합되는 과정을 비춰봤을 때, 박 전 위원장이 민주당의 '청년 정치' 이미지로 소비됐을 뿐, 혁신을 추진할 실질적 권한은 없고 책임만 부여받았다는 분석도 있다.

박 전 위원장이 재등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6·1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힌 뒤 퇴장하고 있는 지도부. /남윤호 기자

박 전 위원장은 물러났지만 그가 지선 전 공감대를 이끌어 낸 5대 혁신 과제(△시도당 교육국 신설과 정치학교 등 인재 양성 △당내 비리 무관용 원칙 적용 △대국민 약속 추진 및 공약입법추진단 운영 △폭력적 팬덤정치와의 결별 △미래 어젠다 연구 및 입법 활동 추진)는 차기 지도부가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이날 지도부에 긴급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용우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박 전 위원장의 쇄신안 후속 조치 전망에 대해 "박 전 위원장이 제기한 문제 자체도 충분히 의미 있는 문제제기"라며 "철저하게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성희롱 발언' 논란 관련 최강욱 의원의 당 윤리심판원 징계 건도 박 전 위원장이 관심을 집중시킨 사안이라 이달 20일 예정대로 징계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위원장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모종의 역할을 하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대선과 지선 종합 분석 과정에서 박 전 위원장의 '2030여성 지지층 티켓파워'가 높이 평가 받을 경우 혁신위원회 구성이나 22대 총선 과정에서 재등판할 가능성이 있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박 전 위원장 향후 행보에 대해 "(과도기 비대위 구성과 관련해) 특정인을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이번 지도부 사퇴는) 선거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고, 그렇다고 (박 전 위원장이) '여기서 끝' 이런 건 아닌 것 같다"며 "서로 평가가 다를 수는 있지만 나중에 박 전 위원장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청년 정치인들이 권한 없이 이미지만 소비되다가 책임지고 물러나는 행태를 근절하고, 당내 쇄신의 주체로 나설 때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봉한나 민주당 청년출마자연대 그린벨트 공동위원장은 "박 전 위원장 개인은 사퇴했지만, 그가 상징했던 당 쇄신의 역할과 자리는 여전하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기존 지도부에 있던 청년 정치인 그룹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민주당 내 레드팀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며 "박 전 위원장이 했던 역할을 그간 당 쇄신 역할에서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지방의원 청년 초선그룹, 신인 정치인 그룹 등이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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