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위기의 당을 구하겠다며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도리어 '계양의 덫'에 갇혔다. 전국에 '이재명 바람'을 일으키기는커녕 주요 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처지에 놓였다. 위원장직을 맡은 이후 19일간 이 위원장이 온전히 전국 유세를 지원한 날은 사실상 4일에 불과했다. 이 위원장의 '명분 없는 출마'가 역풍으로 작용해 전체 선거 판세를 흔들었다는 자성이 나온다.
제8회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30일 이 위원장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선거사무소에 윤호중·박지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참석했다. 지난주 당 안팎을 떠들썩하게 했던 '쇄신 갈등'을 매듭짓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지역 유세로 바쁜 이 위원장을 위해 두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이 위원장도 "총괄선대위원장이 1인 2역을 하다 보니 두 분 상임선대위원장이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이곳으로 와줬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회견 후 윤 위원장과 박 위원장은 각각 강원도 원주, 부산으로 다른 후보 유세 지원을 위해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이 위원장이 서울을 직접 다녀갈 여유가 없을 정도로 인천 계양을 판세가 녹록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 8일 "정치인의 숙명인 무한책임을 철저히 이행하겠다"며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이 위원장이 여러 차례 밝힌 대로 출마 명분은 "지방 선거 승리"였다. 17개 광역단체 중 9곳 이상의 당선을 끌어내겠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석패한 '당의 간판'을 내세워 전국 유세로 지지층을 결집, 선거 흥행을 기대했다.
이 위원장은 '무명' 윤형선 국민의힘 인천 계양을 후보에 초반 10%포인트 이상 격차를 보이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천 계양을은 선거구가 재편된 제16대 총선 이후 내리 민주당계 의원이 당선될 정도로 야권 성향이 강한 곳이다. 이 위원장도 지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보다 이곳에서 12%포인트를 더 얻을 정도였다. 그러나 격차가 좁혀지더니 현재 예상 밖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위원장이 뒤처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 위원장은 전국 순회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인천 지역에 발이 묶였다.
실제로 이 위원장은 11일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이래 대체로 인천 지역에만 머무르며 '후보' 역할에 최우선으로 집중했다. 하루 일정만 아침 인사부터 밤 인사까지 7~8개를 소화했다.
인천 지역을 벗어난 일정은 지난 12일(양승조 충남지사 후보 선거사무실 방문)과 13일(김동연 경기지사 후보 선거사무실 방문) 현장 중앙선대위를 개최해 해당 지역 후보 지지 호소 발언을 하거나, 17일(5.18 민주화운동기념일 계기 전북·광주지역 후보 지원유세)과 23일(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 계기 경남·부산 지역 지원유세) 특정 행사 참석차 유세를 지원하는 식이었다. 현장 지원 대신 페이스북이나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서 이광재 강원지사 후보 등 민주당 후보 '밭갈기'를 지지자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21일~22일 주말에야 처음으로 온전히 '전국 유세 지원' 목적으로 인천을 떠나 서울 강남역과 야탑역, 청주와 세종·대전·울산 지역 등을 돌아다녔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승리에 대한 기대를 거둔 상황이다. 김민석 민주당 통합선거대책위원회 공동총괄본부장은 현 판세에 대해 "(우세 전망) 네 곳 조차 흔들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며 "4곳에 1곳을 더해 총 5곳에서만 승리해도 선전한 것이라 본다"고 했다. 지난 11일 호남과 제주 등을 포함해 6~7곳 승리할 것이란 전망에서 기준을 대폭 낮춘 것이다.
지선 결과를 낙관할 수 없게 되자 당 일각에선 이 위원장의 출마와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 위원장이 '지선 승리'라는 약한 명분으로 출마하면서 응징 여론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전국 유세 지원이 뜸한데다 최근에 발표한 '김포공항 이전' 공약으로 당내 엇박자까지 표출되자 오히려 이 위원장이 전체 판세에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충청권 한 민주당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재명 효과가) 증발된 걸 넘어서 오히려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출마)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도 (이 위원장은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가 여러 번 있었다"라며 "오히려 지역마다 이 후보가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각 후보들이 자력으로 최선을 다해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이재명 효과'가 증발하고 민주당이 고전하는 이유에 대해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평론가는 "민주당이 대선 후 혁신 비대위를 꾸려 박지현 위원장이 문제 제기하고 있는 것들을 비롯해서 완전히 당을 전면 쇄신하는 작업에 들어가고 그 연장선에서 지방선거 혁신 공천을 했더라면 달랐을 것"이라며 "대선 득표율을 잘 활용하면 선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이재명에 묻어가자'는 관리형 비대위의 선거 전략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대선 패배 책임 있는 사람이 나오면 안 됐다. 정말 재승부할 생각이었으면 험지인 성남 분당갑으로 갔어야 했다. 이재명 효과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역효과가 나는 공약까지 막판에 내던졌다. 당도 이 후보도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 패착"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석 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위원장의 선거 영향'에 대해 "선거가 끝나면 다양한 평가와 분석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한편 이 위원장은 31일에도 오전 7시 출근인사부터 오후 10시 마무리 인사까지 계양을 집중 유세로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날을 마무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