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안산시=박숙현 기자] "글로벌시대 역사적인 新인물이 탄생!! 김만의 안산시장 예비후보." 4호선 중앙역 4번 출구 앞. 건물 한 층 벽면을 장식한 현수막이 눈에 띈다.
1158명. 오는 6·1 지방선거 광역·기초지자체장, 광역·기초의원에 출마하는 무소속 후보의 숫자다. 경기도 안산시장에 출마하는 김 후보도 이들 중 하나다. 1000여 명이 넘는 후보들 중 유독 눈길을 끄는 건 그의 특이한 이력이다. 김 후보는 중국에서 태어난 이른바 '조선족' 출신이다. 귀화한 지 5년이 넘은, 이제는 온전한 한국인이다.
지난 23일.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김 후보의 선거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김 후보 혼자 반겼다. 공식 선거운동이 한창이지만 책상과 의자 등 사무용가구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양쪽 벽에 붙은 홍보 현수막만이 다소 휑한 사무실 공기를 덮어주는 듯했다.
"커피 뭐 드실래요?"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낯익은 경상도 억양이 귀에 꽂혔다.
"제가 2002년도 월드컵 때 처음 한국으로 출장을 왔어요. 27~28살 때쯤이었던가. 당시에 일본, 한국과 무역을 하면서 한국을 왔다 갔다 했어요. 그러면서 사업상으로도 그렇고 한국에 다 가족 데리고 와서 살아야겠다고 결단을 했어요. 출신까지 다 얘기해 드릴게요. 저희 할아버지는 경북 의성 사람이에요. 할머니는 충청도 사람입니다. (말투가 경상도라) 제가 어디 가서 '조선족'이라고 얘기 안 하면 누구도 모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가 중국말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저는 18살 때까지 중국말을 잘 못했어요. 어렸을 때만 해도 조선족 학교, 한족 학교가 떠로 있어서 한족 학교 애들하고 대화할 게 없었어요. 제가 하는 말은 100년 전 경상도 말이에요. 말투를 고치려고도 했는데 언어유산이라 일부러 안 고쳤어요."
김 후보가 출마한 경기도 안산시는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가 있어 수도권 공업의 핵심지역으로 꼽힌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 내 격전지 중 한 곳이다. 12년간 민주당 소속이 당선된 진보진영 강세 지역이지만 최근 판세가 달라졌다. 윤화섭 현 시장이 민주당 경선 컷오프로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얼마 전까지 한 식구였던 제종길 민주당 후보와 경쟁하게 됐다. 안산시의장 출신의 이민근 국민의힘 후보까지 치열한 3파전이 전개되고 있다. 반면 김 후보는 당선권 관심에서 떨어져 있다.
"당도 없는 사람이 당선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제가 남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기적이 안 일어나는 이상"
낙선을 예상하면서도 1000만 원의 기탁금을 내면서 출마한 이유는 뭘까.
"인생을 살면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소상공인 개인사업자인데 소상공인의 어려움,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아이들 공부시키고 생활하기 쉽지 않다' 이런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또 이런 노력하는 모습을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비례대표는 하라고 해도 안 해요. 국민의당 의원들을 옆에서 봤는데 비례대표가 힘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정치 안 하면 안 했지, 한 자리를 위해서 비례대표는 안 해요."
김 후보는 입문 6개월 차 정치 신인이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국민의당 선대위 조직특보 겸 대외협력지원단장까지 맡았다. 하지만 윤석열·안철수 단일화에 반발해 이재명 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관심을 모았다.
"저를 발견하고 키워줬다"며 국민의당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김 후보는 국민의힘과의 합당을 두고 진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당이 사라지고 국민의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몇 명이 살아남아 있나. 다 죽고 없다. 뻔히 보이는데 왜 죽으면서까지 (단일화를 했는지)...(이재명 지지선언은) 거기에 대한 반발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김 후보는 정치 입문 초기 민주당에도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출신이 이렇다 보니 그때 당시만 해도 국민의힘에는 겁이 나서 이력서를 못 보냈어요. 제 출신으로 따지면 솔직히 민주당으로 가는 게 맞아요. 그래서 민주당에도 이력서를 보냈어요. 그런데 민주당은 너무 거대 정당이다 보니까 좀 오만해요. '이래서 민주당은 안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이번에도 제가 안산시장 출마한다고 하니까 민주당 측에서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이렇게까지 씨를 밟아버리네' 그걸 철저히 느꼈어요. 절대로 자기들 밥그릇 다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더라고요. 어차피 누구나 이익과 충돌하면 경쟁하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대선 때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지, 민주당을 지지한 적은 없어요. 또 안철수 후보를 반대했지, 국민의힘을 반대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김 후보는 2009년 무렵 가족을 모두 데리고 한국에 정착, 2017년 귀화 허가를 받았다.
"90년대 초반에 제 고모부가 한국에 와서 경북 의성 군사무소에 갔는데 그때만 해도 할아버지 출생 기록과 호적이 다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 와서 귀화하려고 갔더니 자료가 다 없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전산화하면서 알바생을 썼는데 실종자 자료가 어마어마하게 날아갔다고 해요. 자료가 있으면 금방 귀화가 되는데 없어져서 일반 귀화했어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외국인 선거권자는 12만7623명이다. 외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선거권 규정은 지난 2005년 도입됐다. 재외거주 한인동포들이 해당 국가의 선거에서 선거권을 보장받도록 촉진하고, 국내 장기체류 외국인에 대한 인권을 높인다는 취지에서였다. 논의 당시 국회에선 외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선거권을 인정할 때 상호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달 출마 선언에서 "경기도 내 외국인 부동산 소유와 투표권에 있어 국가 간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겠다"며 "어떤 나라에서 우리 국민이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고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우리 역시 (해당 국적인에 대해) 이를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조선족 출신' 김 후보의 시장 출마가 재조명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분이 그 얘기를 안 했다면 귀화 출신이 정치한다고 누가 관심 갖겠나. 정치인은 누구나 본인 목소리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말자는 주장에 대해선 "반대하거나 찬성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법이라는 건 항상 존중해야 한다. 그게 만약 대한민국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국회에서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 그럴 문제이지 개개인이 반대할 건 아닌 것 같다"고 덤덤하게 답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 후보들은 유권자 한 사람이라도 마주하기 위해 시장, 거리를 누빈다. 하지만 김 후보는 유세 현장에 나가지 않고 온라인 위주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유세 해도 제가 보기엔 그것 때문에 표를 더 얻고 그런 건 절대 아니더라. 선거 방식도 고쳐야지 10년 20년 아날로그 방식으로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제 생각과 목소리를 내는 게 더 중요하다. 또 솔직히 무소속이다 보니 자금 압박도 심하다. 반년 동안 정치하면서 수입이 1원 짜리 하나도 없으니까 힘들더라. 비용도 아끼면서 선거방식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가져오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설명했다.
주요 공약은 어떨까. 김후보는 △글로벌 대기업 유치 △문화산업도시 건설 △반월공단 청년창업단지로 탈바꿈 및 구조조정 △대부도 디즈니랜드급 대형 랜드마크 조성 △우리 동네 주차난 해결 등 5가지를 내걸었다.
김 후보는 "안산 반월공단이 다 죽어가고 있다. 누적 체납 세수가 2조2000억 원이다. 구조조정을 안 하면 안 된다. 그러려면 글로벌 대기업이 필요하다. 또 민주당이 10년 간 집권하면서 인구유출이 거의 10%다. 대기업이 유치돼야 인구유출을 막고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화산업단지 역시 마찬가지다. 틱톡이나 쇼츠처럼 짧은 동영상 아이디어 하나가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안산은 다른 지역보다 문화가 다양해서 문화를 발전시키면 상업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거다. 그래서 문화도시를 꼭 건설해야 한다. 미국은 각 나라의 인종과 문화를 존중해서 발전했다. 안산은 대한민국에서 타고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걸 잘 활용하면 안산도 충분히 (다문화 도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산시는 지리적으로 굉장히 좋은 도시다. 인천공항과 가깝고 바다를 끼고 있다. 경기도는 유입이 제일 많은 도시인데 안산만 폐허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공약 실현이 가능하겠느냐'는 물음에는 "남들은 자신 없으니까 이런 공약을 못 낸다. 저는 자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 후보는 다른 세 후보와 자신의 차별점으로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치인들 중에는 이공계 출신이 거의 없다. 문과 비하는 아니지만 이공계 출신은 뭘 해도 수학적으로 치밀하게 한다. 저는 수학·물리·화학을 전공했고 반도체 전자쪽 출신이다. 직접 일해본 사람과 들어만 본 사람의 생각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여권을 손에 쥘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느낀다는 김 후보. 하지만 여전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방인'에 머물러 있다.
"제가 그 선입견을 깨고 싶어요. 대한민국은 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태어난 곳이에요. 이 땅을 떠난 지도 그래봤자 얼마 안 돼요.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들었는데 6·25 때인가 제 아버지를 등에 업고 한국에 들어오려다 길이 막혀서 못 넘어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분들의 손자가 대한민국 안산시를 더 잘 이끌고 누구보다 더 사랑한다는 걸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 굉장히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대한민국에 많은 빚을 졌어요. 그 빚을 갚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