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이렇다 할 일탈 한번 없이 '범생이'이자 '우등생'으로 제주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서울대 학사, 하버드 로스쿨 석사와 대형 로펌 근무까지 그야말로 '요망진('야무지다'의 제주도 방언)' 삶을 살았다.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지만, 제주도를 배경으로 소시민의 삶을 다룬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인물들에 가깝다. 고생 한번 안 해봤을 금수저 이미지와 달리 자신은 '뼛속까지 민주당'이라며 더불어민주당에 자진 입당했다. 김한규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이야기다.
21대 총선에선 민주당 험지인 '서울 강남병'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고, 지난해 6월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파격 발탁됐다. 약 1년의 청와대 생활을 마치고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하는 제주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다. 3일에는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 2일 국회 소통관에서 만난 김 전 비서관은 "짐을 싸거나 책상을 정리하면서도 이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우리가 마지막이겠구나 싶었다"라며 청와대를 떠나는 진한 아쉬움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정무비서관인 그는 지난 5년을 돌아보며 "문재인 정부의 성과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음에도 그런 부분이 부각되지 않는 게 아쉽다"고 평가했다. 오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선 "과연 다른 이들과 잘 협의해서 조화로운 해결 방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라고 우려했다.
6월 1일 재보궐 선거는 '고향' 제주에서 정치하기를 꿈꿨던 그에게 절실한 기회다. 김 전 비서관은 "고향을 생각하면 그 유권자가 눈에 보인다. 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고 아는 사람들이거나 건너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향에서 정치를 하면 덜 외롭고 해야 될 의지와 욕구, 보람도 더 생기겠구나 하는 걸 요즘 느낀다"라며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 고향에서 정치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文정부 성과 부각되지 않아 아쉬워...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기록"
김 전 비서관은 지난해 6월 정무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정무비서관은 국회의원 출신이 맡는 게 관례다. 정치 신인에 가까운 그의 임명은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문 정부 마지막 정무비서관이 돌이켜본 지난 5년은 어떨까.
"아쉬운 점들이 있어요. 문재인 정부 성과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음에도 부각되지 않는 게 좀 아쉬워요. 저희가 볼 때는 '위기 극복 정부'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북핵 위기가 상당했었어요. 중간에 일본과의 소부장(소비·부품·장비) 이슈도 있었고, 코로나19 문제도 있었죠. 지금은 많이 해결됐기 때문에 '그때가 그렇게 위험했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 정부가 초기에 기민하게 대응해온 시스템들이 잘 준비돼서 다른 나라에 비해 큰 혼란없이 잘 넘어갔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은 정부의 실력일 수 있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잘 된 것들은 기억 못하고 부동산이나 국민이 불만을 가진 정책들만 강조되다 보니 문재인 정부에서 함께했던 마지막 정무 비서관으로는 좀 아쉬움이 있어요."
윤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추진하면서 청와대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게 됐다. 인수인계로 북적여야 할 청와대 풍경이 이번에는 조용하다.
"청와대가 되게 오래된 건물이에요. 그래서 나름대로 새로운 정부를 위해서 일부 시설도 새롭게 만들고 했어요.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부분도 있어요. 새 정부가 들어서 (갑자기 하려면) 어려울 것 같으니까 우리가 쓸 것도 아닌데 도움을 드리려고 그런 준비를 했던 거죠."
임기 종료를 며칠 앞둔 청와대는 집무실 이전 외에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은 모습이다. 최근 청와대가 문재인 정부의 5년 국정운영 결과를 담은 온라인 백서 '문재인 정부 국민보고'를 발간해 청와대 누리집에 공개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고 김 전 비서관은 전했다.
"정권 재창출을 못 했다는 건 대통령 지지율이 높지만 우리 대통령의 업무 성과에 대해 불만 있는 분들도 많았다는 것이니 그런 부분에 대해 (청와대 사람들은) 되게 아쉬워요. 특히 여기(청와대)에 이제 새로운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짐을 싸거나 책상을 정리하면서도 이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우리가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면에서도요.
한편으로는 정권 재창출을 못했지만 우리 정부의 성과에 대해서는 좀 제대로 알려서 사후로라도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있어요. 백서도 내고 각종 자료를 내는 게 외부에서는 자화자찬이라고 얘기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개인이 잘했다고 기록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민주당 정부 내지는 진보 정권이 나름 성과를 냈고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언젠가는 국민에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 제대로 알려놓고 기록으로 만들어 놔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야 국민이 나중에 비교하고 평가하면서 다시 우리에게 기회가 올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들이 좀 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상당수의 정부 인사들이 '폐족(廢族))'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나름 시대를 앞서가는 선택들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라든지 이런 것들은 진보 진영 반대가 상당히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영 간의 논리로 보지 않고 국익을 위해서 결정했잖아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정부 성과) 얘기를 하기 되게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다시 그런 시도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객관적으로 국민 평가를 받기 위해서 임기 말이지만 최대한 다들 시간을 내고 열정으로 그런 성과를 정리하는 작업을 최근에 했고 그런 차원에서 백서 같은 게 나왔어요."
청와대에서 정무 수석실은 여야와 협의해 법안 처리나 예산안, 기타 정무적인 현안을 같이 풀어나가는 일을 주 업무로 한다. 부수적으로는 이른바 '난돌이' '꽃돌이'라는 부수적인 역할도 맡겨진다. 국회에서 누군가 취임하면 대통령 명의의 축하 난을 들고 덕담을 주고받는 일을 하는 것이다. 김 전 비서관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을 당시 면담이 기억에 남는다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비공식적으로 한 40분, 되게 길게 면담을 했었어요. 통상적으로는 '잘 됐으면 좋겠다'라면서 서로 덕담을 하는데 윤석열 당선인(당시 후보)은 거침없어서 '나는 우리 민주당 때문에 대통령 후보가 됐다'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분위기가 싸해졌어요. 그때 느꼈습니다. '윤 당선인이 통상적인 정치인하고는 다르구나, 그냥 거침없이 속마음을 다 드러내는 스타일이구나' 하고... 장점일 수도 있지만 과연 다른 사람들과 잘 협의해서 조화로운 해결 방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되게 궁금해요."
김 전 비서관은 '곧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를 묻자 "윤 당선인의 업무 방식에 우려되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윤 당선인 측이 '국민과의 소통'을 이유로 집무실 이전을 밀어붙이는 이유에 대해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청와대는) 아직 업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히 쓸 수 있는 공간이고 예전과 달리 청와대 주변도 많이 개방했고 방문 행사도 많아서 국민 입장에서 청와대에 대한 접근성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청와대를 오랫동안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했기 때문에 업무에 도움 되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공간 배치도 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대통령이 비서들과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도록 아예 집무실을 이전해서 대통령과 참모 간 거리도 되게 좁혀졌다고 생각한다"며 "청와대는 대통령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건물이다. 그래서 (집무실을 이전하면) 특별히 청와대를 보려고 관광객이 더 많이 오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어 "(당선인 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어서 국민과 제대로 소통을 못 했다고 얘기하는데 과연 그게 장소의 문제일까. 저도 국방부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국방부 특성상 국민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는 공간이다. 그러면 과연 지금보다 더 국민과 소통할 수 있을까. 소요되는 비용이나 업무 이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의 공백을 생각하면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앞으로도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 국민이 수긍하기 어려운 결정을 하면 국민에 피해가 되지 않을까,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검수완박' 반대, '경찰 무능' 전제에서 비롯...인식 바뀌어야"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분리)' 법안인 검찰청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날 오후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를 신속하게 공포했다. 국민의힘과 검찰 등은 이번 법안 통과로 공직자나 정치인 수사를 무마하고, 국민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관련법안에 대해 본회의 상정 가처분 신청 및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와 현안을 주고받아온 정무 비서관이자 법률인으로서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수사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데 대해선 사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던 부분이에요. 이번 법안으로 완벽하게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야 간에 일단 합의가 일단 됐었던 것이고 정의당이 요구하는 사항까지도 추가적으로 반영돼서 협치를 통한 성과였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정도의 법안이면 급격하지 않은 방식으로 검찰의 수사 기소 권한을 조금씩 분리해내는 단계적 과정으로서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원래 여당에서 추구하려고 했던 거에서는 나름 많이 후퇴한 법안일 수 있어요. 하지만 결국 권력기관, 그중에서도 수사기관의 권한을 계속 축소해가고 견제와 균형을 통해서 국민에게 부당한 권력이 행사되지 않도록 막아온 긴 역사적 흐름으로 보면 한 단계 진전했다고 생각해요. 이 흐름은 바뀔 수가 없어요."
김 전 비서관은 또 이번 법안 통과로 검찰의 보완수사가 어렵게 됐다는 주장에는 '경찰은 무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검찰의 주장에는 '경찰이 부패하다, 내지는 무능하다'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두 가지 다 동의하지 않아요. 요즘은 내부적으로 그렇게 특정 경찰이 사건을 없애거나 이러기에는 우리나라 경찰 시스템 자체도 되게 선진화되고 있어서 그게 불가능한 구조라고 봐요. 또 무능하지도 않아요. 만약 '법률가들이 수사하는 데 유능하다'라는 전제라고 하면 지금 변호사 출신들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많은 변호사들이 경찰에 가서 일을 하고 있나요. 현장에 가서 뛰고 심문하는 것들은 경찰의 수사 역량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결국 검찰이 요구하는 건 모든 경찰의 수사를 자기네들이 살펴보겠다는 거죠. 그러면 정말 불필요하게 수사 과정만 지연되고 경찰이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하기가 더 어렵게 됩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능력을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키고 유능한 수사관들이 경찰과 협력해서 한국형 FBI를 만들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비서관은 또 국가 권력기관의 권한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형사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는 '범죄인을 놓치면 안 된다' '수사를 정말 잘해서 나쁜 놈들을 잡아서 처벌을 잘해야 한다' 이런 논리가 되게 팽배해 있고 검찰이 그런 논리를 전제하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미국은 형사 사건이 되게 제한적이고 문제가 있으면 개인 간의 민사 사건으로 해결하는 게 원칙이다. 억울한 한 명의 그 범죄자를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되게 강하다"며 "(검수완박 논의 과정에서)근본적으로 국민의 인식이나 변화된 사회 분위기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검찰이 이만큼 수사할 수 있냐 저만큼 수사할 수 있냐(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중요한 문제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 '정치인' 꿈꿔온 제주 소년, 6·1재보궐 선거 도전
김 전 비서관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정치인을 꿈꿨다. 불평등 완화, 격차 해소에 관심을 두면서 정치가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동경했다.
"저는 정말 함께 잘 사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고등학교 때부터 되게 강해서 정치를 관심을 가졌어요. 그게 어렵게 표현하면 불평등 완화 격차 해소 이런 건데 그런 부분들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해결을 해내야지만 사회가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꿈을 실현하는 길은 멀었다.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뒤 당장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보다 전문성을 쌓고자 했다. 정치부 기자를 생각했지만 술 못하면 기자생활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4학년 때부터 사법고시를 준비해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16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며 꿈을 잊고 살다가 특별한 계기로 남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일을 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정치인이 되면)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지니까 현실적인 고민을 하면서 '참아야지, 와이프와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살아야지 돈 많이 벌어오는 아빠가 돼야지'하고 되게 오랫동안 그 고민을 했는데 결국은 꿈에 대한 욕망을 이겨내지 못해서 지금 5년째 이러고 있어요."
정치계에 입문한 지 5년 차가 됐지만 아직은 스스로 '정치인'이라고 말하기 부끄럽다는 김 전 비서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삶을 바꾸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꿈은 더 확고해졌다. 거물급 정치인이 되겠다는 야망은 없다.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국회의원이 돼 국회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그의 목표다.
"국민의 어떤 권리와 의무를 제한하거나 또는 반대로 어떤 금전적인 혜택을 주거나 복지 체계를 마련하거나 상당히 많은 일들이 국회에서 법안을 만들면 바뀌는구나 싶었어요. 법을 20년 넘게 다룬 저로서는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고요. 지금 제가 가진 경험을 토대로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고, 하고 싶은 일이에요. 권력 의지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정치에 대한 꿈이 계속되고 있어요."
과거 보수정당에서 청년정치인 영입 차원에서 제안이 왔지만 이를 거절했다. 우등생답게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모든 정당의 정강 정책과 공약을 찾아보고 공부했다.
"피상적으로는 아주 어릴 때부터 민주당을 좋아했는데 실제로 그런가 하고 봤더니 그냥 제 생각하고 민주당의 정당 정책은 거의 동일하더라고요. 고민하거나 외울 필요가 없이 그냥 내 생각을 말하면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나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 훨씬 편하겠다고 싶어서 정치를 한다면 당연히 여기(민주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민주당으로 가면 분명히 험난한 길이 있겠다 싶었는데 정치라는 게 그래도 본인의 가치와 이념, 신념이 맞지 않으면 못하는 거니까 감수해야겠다 생각하고, 미련이 생기기 전에 온라인 입당했습니다. 혼자 비장했어요.(웃음) 국회에 입성하기까지는 앞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지만, 못 되더라도 자기 뜻이 맞는 정당에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국회 입성을 꿈꿔온 그에게 흔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오영훈 의원이 6·1지방선거 민주당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후보로 선출되면서 제주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지선과 함께 치러지게 됐다. 그는 청와대 정무비서관직을 사임하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김 전 비서관은 6살 때 제주도로 내려가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집안이 23대째 제주에서 산 토박이다. 정치계에 발을 들인 후 고향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생각했지만 지역기반이 탄탄한 현역 정치인들이 버티고 있었다.
"처음부터 고향에서 정치를 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이미 현역 정치인들이 있어서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연이 없어도 출마할 수 있는 수도권에서 시작하려고 했어요. 수도권은 외지인이 와도 크게 개의치 않는 지역인데 반대로 얘기하면 연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래서 좀 외로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정치할 때 같이 도와주실 분을 찾기도 어렵고. 또 정치라는 게 실질적으로는 자기 지역구 내에 유권자들이 원하는 바를 구현해내야 하는데 고향을 딱 생각하면 그 유권자가 눈에 보여요. 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고, 아는 사람들이거나 건너 아는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이렇게 고향에서 정치를 하면 덜 외롭고 도와줄 사람이 있으니까 의지와 욕구 또는 보람도 더 생기겠구나 하는 걸 요즘 느낍니다. 그래서 되게 절실해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현실적으로 언제 고향에서 정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감사한 기회라서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 고향에서 정치를 해보고 싶어요."
그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험지인 '서울 강남병'에 도전해 주목을 받았다. 냉혹한 현실을 경험한 그는 과감히 강남 출마를 접었다. 김 전 비서관은 "2020년 때 제가 (강남병에서) 얻은 득표수의 거의 절반 정도를 (이번에) 민주당 대선 후보가 얻었다. (총선 이후) 강남에서 민주당 인기가 상당히 많이 떨어졌다. 현실적으로 8년이 아니라 20년 정도를 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계속 떨어지면서 도전하는 것 자체로 의미를 둘 수도 있지만, 이게 동서 화합도 아니고 지역감정 타파도 아니라 그 정도의 의미가 있는 건지...단지 민주당 험지에서 승리를 위해 도전했을 뿐이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부겸 국무총리처럼 지역 타파와 같은 상징적인 의미는 없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고 솔직한 입장을 밝혔다.
제주도를 떠나온 지 20년이 넘었다. 중앙 정치 경험만으로 제주도 민심이나 현안을 잘 알 수 있겠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김 전 비서관은 " 그런 우려가 충분히 이해된다. 거기에 오래 살았던 분들보다 당연히 그 동네의 어떤 역사적인 사건들이나 그런 맥락들을 이해하는 데 조금 더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부족한 부분들은 다른 정당이라고 할지라도 물어보고, 또 많은 분들이 도와주실 거다. 지역 문제 자체를 정치인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자신했다. 이어 "중요한 건 그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느냐인데 그런 측면에서 저는 다른 분들보다 조금 젊고, 청와대에서 다른 분들과 국정운영을 같이 경험해 봤고, 그 과정에서 여야 정치인들과 법안과 예산 통과를 위해서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하면서 쌓아놓은 네트워크를 분명히 제주도를 위해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비서관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국가균형발전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됐다. 국회에 입성하면 장기적으로 국가균형발전과 불평등 완화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악구에는 전철역이 4개 있어요. 그런데 강남구에는 전철역이 몇 개 있는지 아십니까. 33개 있어요. 같은 서울 시내에서도 지역 간 격차 소득 격차 생활 수준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납니다. 서울 수도권에서 살다 보니까 그런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가 정무수석실 안에 자치발전 지방자치 국가균형발전비서관실이 같이 있었는데 정말 왜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게 됐어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불평등 완화 격차 해소, 자산불균형 부분을 해결해내야겠다는 게 장기적인 과제에요. 제주도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까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제주 도민의 삶의 질을 더 높일 방안들이 충분히 있을 겁니다."
☞김한규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누구? 23대째 제주에서 살아온 '제주 출신'이다. 제주 대기고등학교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41회),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주로 기업인들의 준법경영, 공정거래 등을 법률 자문했다. 하버드 로스쿨 석사 수료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후 '정치인'이라는 오랜 꿈을 실현하고자 2019년 더불어민주당에 자진 입당해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 이해찬 당 대표당대표 캠프에서 일했고 민주당 법률대변인을 역임했다. 21대 총선에선 민주당의 험지 '서울 강남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21년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파격 발탁됐다가 최근 사임하고 6·1 국회의원 보궐선거(제주를제주을)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